중국-미 프로야구는 중국을 ‘유혹’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사상 처음 열린 시범경기로 관심끌기 성공… 인기종목으로 정착할지는 의문

[친디아 리포트]중국-미 프로야구는 중국을 ‘유혹’했을까

미국 프로야구(MLB) LA 다저스 소속의 박찬호 선수가 베이징에 왔다. 3월 15일과 16일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시범경기를 연 것이다. 이번 이벤트는 MLB 100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13억 인구의 중국 대륙에 처음 진출한 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처음 사용한 야구공은 쿠퍼스타운에 위치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현장 매표소는 일찌감치 매진
미국 프로농구(NBA)는 일찌감치 중국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 TV에서 가장 많이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가 NBA이다. 여기에는 야오밍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미국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MLB는 NBA처럼 중국 시장에 대한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시범경기라는 상품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베이징 우커쑹 야구장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첫 시범경기에 중국 관객이 몰렸다.

베이징 우커쑹 야구장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첫 시범경기에 중국 관객이 몰렸다.

박찬호 선수를 보기 위해 베이징 우커쑹 야구장을 직접 찾아갔다. 베이징 서남부에 있는 우커쑹 야구장은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하비 실러 국제아마추어야구연맹회장은 “베이징 도심에 엄청난 야구장이 생겼다”며 “앞으로 모든 중국 어린이가 이 경기장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중석은 1만2000석으로, 철제 가건물로 지었다. 올림픽을 끝낸 뒤에는 철거할 계획이다. 야구 인구가 거의 없는 중국에서 야구장을 그대로 두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경기 시간은 15일 오후 1시. 낮 12시가 조금 너머 도착한 야구장에는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야구장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LA 다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로고를 담은 대형 걸개가 스탠드 밖에 걸려 있었다. 가족이나 연인끼리 찾아온 미국인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형 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람객도 있었고, 우리나라 유학생도 많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시합이 다 끝난 다음에 박찬호 선수에게 사인해달라고 몰린 팬만 1000명이 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산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현장 매표소는 ‘매진’이라는 표를 붙인 채 이미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88위안(1위안은 우리돈 130원)짜리 표 대신 100위안짜리 암표를 샀다. 중국 암표상이 500위안을 불러 잠시 망설였지만 다행히 우리나라 유학생이 갑자기 일이 생겨 표를 팔겠다고 해서 간신히 구입했다.

입장하는 데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사람이 많이 몰린데다 입장권을 확인하고 가방이나 소지품 안전 검사를 일일이 했기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 5분 전, 경기장에서 미국 국가가 울려퍼졌다. 이어 중국 주재 미국 대사가 시구를 한다는 영어 장내 방송이 들렸다. 마치 미국의 어느 야구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서둘러 안전검사장을 떠나 야구장으로 들어섰다. 1루석 방면 좌석이었다.

MLB 모자와 유니폼 고가에 판매
자리마다 좌석 번호가 종이로 붙어 있었다. 야구장은 좌익수와 우익수 방면이 98m, 중견수 방면이 122m였다. 좌석을 찾았더니 중국 초등학교 야구선수 20명이 와 있었다. 글러브를 옆에 둔 채 앉아 있는 이들은 루꺼우차오 2소학(중국의 소학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소속 야구 선수였다. 이들만이 아니라 펑타이 실험소학, 펑타이 3소학 등 중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들이 MLB가 제공한 유니폼을 입은 채 응원 막대기를 흔들고 있었다. 모자도 메이저리그 마크가 찍혀 있고, 옆에는 중국이라는 한자가 붙어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펑타이 실험소학 3학년 가오펑(9)은 학교 야구단의 3루수. 가오펑은 “그동안 탁구를 좋아했지만 앞으로 야구 연습을 열심히 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미국 MLB가 파고든 것이다. 선생님들이 수시로 감자칩, 코카콜라, 핫도그 등을 가져다주었다. MLB가 공짜로 제공해주는 선물이었다. 메이저리그는 중국 전역에서 120개 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1회 말 LA 다저스의 수비. 박찬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던졌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 타자들을 쉽게 요리했다. 중국 어린이 야구선수들은 박찬호가 한국 선수인지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대만 출신 선수가 나올 때마다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야구장 시설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2회가 지나서야 전광판에 안타와 실책 숫자가 들어왔다. 아직은 손에 익지 않은 모습이었다. 판매원이 핫도그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고 다녔으나 1회가 끝날 무렵 모든 물건이 동이 났다. 매회 공격이 끝나자마자 여자 사회자가 나와서 간단한 여흥을 했고, 여성 응원단이 나와 분위기를 돋우었다. 중국다운 분위기였다.

외야석에 조금 자리가 비었을 뿐, 거의 모든 관중석이 가득 찼다. 상당수는 초대권 손님이었지만 그래도 첫 장사치고는 흥행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박찬호는 5회까지 1실점(비자책점)으로 잘 막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MLB는 운동장 입구에 모자와 유니폼 등 매장을 열었다. 모자와 유니폼 가격은 42달러로 중국 사람들이 사기에는 아주 비싼 가격이었다. 입장료 가운데 가장 값싼 12달러도 일반인이 구입하기는 쉽지 않은 가격대다. 한창 올림픽 경기장 조경 작업을 벌이고 있는 인부들이 하루 종일 일해 봐야 20~30위안 정도를 받는 데 불과하다. 아직은 중국에서 야구가 뿌리를 내리기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MLB는 경기장 입구 매장 건너편에 간이 연습장을 만들어 관심 있는 어린이들이 타격 연습이나 투구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중국에서 야구는 비인기 종목이다. 아마야구 6개 팀이 리그전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나 중·고교에도 야구팀이 있지만 극소수다. 메이저 리그는 중국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경우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당에 중국도 언젠가는 인기를 끌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물론 당장은 야구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중국 팬들이 거의 없다.

야구장에서 만난 회사원 옌쥔(24)은 “야구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왜 미국 사람들이 야구에 미치는지 궁금해서 경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웬만한 베이징 시민들의 반달치 월급인 880위안을 선뜻 내고 그가 야구장을 찾은 것은 미국의 열기, 미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는 미국 것이면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중국 대학생들의 가장 큰 유학 선호지가 미국인 것처럼 말이다.

“미국 것은 무엇이든 배운다” 분위기
이날 야구장에 2만2000개 응원봉을 제공한 중국 진출 미국 기업인 짐 룬드버그는 “중국에서 야구가 가까운 장래에 인기 종목이 될지는 의문”이라면서 “초등학교부터 야구 인구를 만들기 위한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시범경기 전날 베이징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간단한 야구 클리닉을 열어 야구 선수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조지프 리브즈 LA 다저스 국제부장은 “이번 경기는 미국의 플로리다나 애리조나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열기를 중국에서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 토레 다저스 감독은 “팬들은 오늘 좋은 시간을 가졌고 그들이 무엇인가를 배웠기를 바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훗날 미국 야구사는 2008년 3월 15일 베이징에서 일어났던 일을 어떻게 기록할까.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할 것인가. 야구장을 벗어나면서 떠오른 한 조각 단상이었다. 마침 그날은 우커쑹 야구장에서 지하철역으로 8개 정류장이 떨어진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주석의 제2기 집권을 선언하는 국가주석 선출이 있던 날이다.

한족이 티베트상권 장악

티베트 라싸 조캉사원 앞에 모인 티베트 사람들이 오체투지로 예불을 드리고 있다.

티베트 라싸 조캉사원 앞에 모인 티베트 사람들이 오체투지로 예불을 드리고 있다.

‘장’은 티베트를 가리키는 중국어다. 독은 독립의 준말이다. 티베트 독립이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장독을 ‘대독’(대만 독립)과 같은 반열에 둘 정도로 티베트 분리 운동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중국 서남부에 자리한 티베트가 최근 일어난 유혈폭력시위로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티베트 시위대가 티베트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이를 폭동이라고 표현한다.

평균 해발 4000m 이상의 티베트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티베트는 원래는 독립국이었다. 서기 7세기쯤 토번국 국왕으로 티베트 전역을 통일한 송잔 감포가 당나라 태종 문성공주와 결혼한 것이 중국과 맺은 첫 인연이었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집무실과 숙소인 포탈라궁은 송잔 감포가 문성공주를 맞아들이면서 지은 건물이었다. 이번 유혈시위 사태가 일어났던 라싸 도심의 조캉 사원도 문성공주가 들고 온 부처님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다.

토번국은 서기 8세기쯤 눈 수술까지 했을 정도로 뛰어난 의학 수준을 자랑했다. 탱화(불교 그림)는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나는 천연 재료를 이용해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티베트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부터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통치가 아니라 조공을 주고받는 관계일 뿐이었다. 청나라 때도 달라이 라마를 선출한 뒤 청나라 황제의 승인을 받는 정도였다.

중국이 티베트를 영토에 정식으로 편입시킨 것은 1950년. 세계가 한국전쟁에 신경을 쓰는 사이 중국 인민해방군이 평화적으로 티베트를 ‘해방’시켰다. 중국은 “티베트가 승려들의 지배를 받는 농노제 국가였다며 이를 보다 못해 해방시켰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편입 초기 달라이 라마에게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국회 부의장)을 맡기는 등 티베트 승려와 귀족들을 중국 지도부에 끌어들이면서 티베트에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1956년부터 중국 대륙에 종교 탄압 운동이 시작되면서 티베트 불교 사원이 문을 닫고 기존의 9개 계층에 대한 사회 질서가 무너지면서 티베트 사람들의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대규모 무장독립 투쟁이 일어났으나 실패로 끝났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인도로 망명해 망명정부를 세웠고 지금까지 망명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티베트를 상대로 꾸준한 중국화 정책을 펴왔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내륙의 한족들을 대거 티베트로 이주시켰다. 현재 라싸 시내에서 운행 중인 택시 1500여 대 기사 대부분이 한족이다. 2006년 7월 1일 개통한 칭짱철로는 티베트를 중국 경제권에 편입시키는 중요한 행보였다. 중국은 도박, 섹스, 마약 등 3대 범죄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지만 티베트는 이를 내버려두는 정책을 펴고 있다. 티베트 인구의 3.3%를 차지하는 한족이 티베트의 상권을 대부분 장악하는 한편 티베트 사람들은 경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 티베트 폭력시위는 티베트 사람들의 한족에 대한 불만과 티베트 불교에 대한 중국 측의 탄압에 대한 반발을 행동으로 표출시켰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홍인표<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중문학 박사>iphong@kyunghyang.com

친디아 리포트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