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의 눈

이명박 정부 ‘말의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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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고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작업이 시작되면서 ‘말의 탈선’은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인데,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벌써부터 국민들이 새 정부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이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신호는 징후다. 징후란 도래할 증상을 예시한다.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이 신호를 제대로 해독하는 데 실패한다면, 앞으로 5년간의 대한민국은 피로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든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나는 ‘말의 탈선’이라는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행동과 결과가 중요하지, 말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가능성이 높은 행동주의자다. 그래서 추진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세평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버스 전용 차도’와 ‘청계천 복원’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해외 언론들조차 이명박 대통령을 ‘불도저’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섬세한 ‘말의 정치’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매우 불안한 신호로 교정해야 한다.

인수위 기간 중에도 이 대통령은 적절치 않은 발언으로 크고 작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숭례문 복원’을 ‘국민 성금’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발언이다. 국가와 지자체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책임을 전가하는 당시 당선인의 ‘말’에 대다수 국민은 경악했다. 인수위원장의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강한 신념과 ‘말잔치’ 역시 냉소를 쏟아내게 했다. 맞춤법조차 파괴한 ‘오륀지’ ‘후렌들리’라는 말은 일약 유행어로 떠올랐다. 게다가 대통령이 한글 맞춤법도 숙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국어 몰입 교육’의 필요성을 낳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작업이 시작되면서 ‘말의 탈선’은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였다. 청문회 전에 자진 사퇴한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라고 말해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이춘호 여성장관 역시 엉뚱한 말로 대응해 화를 자초했다.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그는 “배용준은 그보다 더 많지 않느냐”라고 반문해 빈축을 샀다. 이명박 정권 인사들의 ‘말잔치’가 코미디 프로보다 재미있다는 게 세간의 중론이라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근 라면 가격이 올랐다. 이 대통령은 첫 수석회의에서 민생경제를 걱정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평소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은 라면 값 100원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라면을 많이 이용하는 서민들에게는 라면 값 인상이 큰 부담을 준다.” 이 발언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응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라면 업계가 당혹해한다. 두 번째 반응은 이렇다.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에는 두 부류의 계층이 있다. 라면을 먹는 계층과 결코 먹지 않는 계층이다.” 말의 탈선이 정치의 탈선을 낳는건지, 그 역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사려 깊지 않은 말의 탈선이 정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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