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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와 싸웠던 임달식’ 여자농구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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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신한은행 사령탑 맡아 정규리그 2년 연속 우승 이끌어

신한은행을 여자프로농구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임달식 감독. /이석우 기자

신한은행을 여자프로농구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임달식 감독. /이석우 기자

지난 10일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전이 열린 춘천 호반체육관. 신한은행은 우리은행을 64-53으로 물리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원정이지만 화려한 축포와 우승 축하 플래카드가 휘날리며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한 신한은행의 잔칫집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경기 후 인터뷰실에 나타난 임달식(44) 신한은행 감독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챔프전까지 우승해야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프로농구판에 뛰어든 지 불과 6개월 만에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지만 그의 눈은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초 같은 그의 농구 인생은 더 활짝 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만장 인생사
농구선수 임달식. 많은 팬은 그를 허재(현 KCC 감독)에게 주먹을 날린 선수로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역시절 꽤 잘 나가는 가드였고 슈터였다. 임 감독은 농구의 엘리트 학교인 휘문고와 고려대(83학번)를 거쳐 실업팀 현대전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정확한 외곽포와 악착 같은 수비로 화려하진 않지만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 그러나 1989년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기아 허재와 주먹다짐을 벌여 1년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면서 그의 농구인생은 커다른 오점을 남겼다. 그 사건 이후로 ‘임달식’이란 이름 석 자에는 언제나 ‘허재와 싸웠던 그…’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1993년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는 과거의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은퇴하고 말았다. 은퇴하면 그는 농구가 싫어졌다. 그래서 이민을 준비했다.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짐까지 다 쌌다. 하지만 눈물로 말린 부모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한국에 남았다. 이후 그는 농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남에서 한정식집을 경영했다. 외도하다 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식당 단골이었던 프로 골퍼 최광수·유종구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그들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게 된 것이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는 세미프로골퍼 자격으로 프로골프 2부투어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정작 상금은 한 번도 타지 못했고,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는 보증금 500만 원짜리 월셋방에서 세 가족이 함께 살기도 했다.

이런저런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그는 떠났던 농구가 다시 하고 싶어졌다. 농구에 젊음을 바쳤던 그가 다시 설 자리는 농구 코트였고, “지도자로 한 번 다시 해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한 번 코트를 떠났던 선수를 감독으로 쓰겠다는 팀은 없었다. 그러다가 2001년 선배를 통해 조선대에서 감독 제의를 해왔다. 대학 농구에서도 변방인, 2부리그에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팀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받아준 팀에서 새롭게 농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했다. 체력훈련을 선수와 같이했고,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겐 기본기도 직접 가르쳤다. 선수들과 함께 숙식하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었다. 이런 그의 노력 덕에 2부 대회에서도 입상 경험이 없던 조선대는 10개월 만에 2002 MBC배 2부경기 우승을 거머쥐었고 전력은 급상승했다.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발품을 팔아 교수와 학교 관계자들에게 농구부 지원을 호소했다. 지방대 오기를 꺼리는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30번 이상 찾아가 선수를 데려오기도 했다.

어느새 2부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어졌다. 서울의 1부리그 대학팀들도 심심찮게 꺾었다. 1부리그 승격을 반대하던 서울의 대학들도 조선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마침내 2005년 1부리그로 올라섰다.

이런 그의 성실하고 열성적인 지도력은 조금씩 농구판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2007년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의 감독 공개모집에 도전장을 던졌다. 쟁쟁한 감독들이 지원했지만 참신성과 성실성에 패기를 갖춘 그의 점수가 가장 뛰어났다. 그는 여자프로농구 감독이 됐다. 그것도 ‘천하무적’이라는 최강팀 신한은행 감독으로.

시련 딛고 성공 질주
그는 당시 “프로팀, 그것도 여자팀이 처음이라 부담은 되지만 결국 요즘은 여자농구도 와일드하고 터프해져 남자농구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새 출발의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신한은행이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의욕이 넘쳤다. ‘레알 신한은행’으로 불리는 최강의 팀을 맡은 초보 감독은 주눅들 법도 했지만 소신껏 지도했다.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원칙대로 모든 선수를 강도 높게 조련했다. 하지만 남자와 다른 여자팀의 생리에 적지않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팀의 간판이자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스타 정선민과 훈련 문제로 적지 않은 마찰을 빚은 것. 시즌 들어 이런 소문이 농구판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팀 내부도 어수선했다. 그는 정선민을 불러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서 오해를 풀었고 ‘다시 잘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시즌 초반 잠깐 주춤하던 신한은행은 이후 무섭게 질주했다. 선수들도 최고라는 자만감을 지우고 ‘코트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에 동화됐다.

2006~2007시즌 기록했던 팀 기록인 10연승을 깨고 올시즌 11연승을 달리는 등 신한은행은 단 한 번도 1등을 내주지 않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 한 달을 남겨놓고 1위를 확정했다.

이제 그의 눈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해 여자프로농구 전인미답의 2연속 통합우승을 꿈꾸고 있다. 정규리그 우승 후 여유를 보일 만도 하지만 그는 요즘 경기에도 코트에서 소리를 지르며 열성을 보이고 있다.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농구를 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잡초‘의 뜨거운 열정은 3월 챔피언 결정전을 벼르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허재를 때렸던 그 임달식’은 머지 않아 ‘여자농구 코트를 평정한 감독 임달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취재후기
임 감독은 “나중에 돌아보니 허재와의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고 참을성과 마인드 컨트롤을 배우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 감독과는 요즘은 가끔 연락도 하고 술 한잔 하는 사이라며 웃었다.

양승남 기자<스포츠칸>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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