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연합 청파동 본부교회 당회장 문형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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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문선명 총재가 ‘불교 공부하라’ 말해줘”

[정동초대석]가정연합 청파동 본부교회 당회장 문형진목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청파동 본부교회 당회장인 문형진 목사(28)를 단 한 마디로 소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의 막내 아들’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를 직접 만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개량 한복을 입고, 댓잎차를 따르는 모습에서 통일교 목사의 이미지를 전혀 떠올릴 수 없다. 머리만 깎았다면 영락없이 스님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버드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과 불교를 공부할 때 그는 실제로 머리를 깎고 개량 한복을 입고 다녔다. 학교 시절 함께 어울려 다닌 가장 친한 동료도 조계종 소속의 스님이었다.

“사람들이 쿵푸를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스님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심지어 교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2006년까지 머리를 깎고 다녔다. 왜 그렇게 하고 다녔을까. 그는 불교의 명상, 위파사나를 비롯해 중국의 기공명상, 쿵후·소림사 무술 같은 여러 동양 무술을 좋아했다. 명상과 무술은 그에게 삶의 한 부분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명상을 했고 무술에 빠져 들었기 때문에 삭발과 개량 한복이 그에게는 더 편하고 익숙했다. 통일교 내부에서 그런 그를 이상하게 보았을 법하다.

“가정에서는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통일교 커뮤니티 안에서는 상당히 말이 많았다. 처음에는 아버지(문 총재)가 나를 쫓아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불교를 더 공부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통일교에서 말하는 초(超)종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초종교는 통일교에서 종교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보다 서로 화합하자며 내세운 교리다. 기존 종교의 틀을 뛰어넘자는 것이다.

“어릴 때는 진짜 통일교가 뭔지 몰랐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 아버지가 초종교적인 마음을 갖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그때 아버지를 믿게 됐다.” 그는 문 총재를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독특한’ 행동을 오히려 격려해준 한마디의 말로, 몸만 통일교인이었던 그는 통일교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정동초대석]가정연합 청파동 본부교회 당회장 문형진목사

어린 시절 그는 공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개구쟁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배우인 이소룡을 좋아해 동양 무술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한 큰 사건이 벌어졌다. 형제 중 가장 가깝게 지내던 형의 죽음이었다. 형은 당시 컬럼비아 대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느 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 오래 살 거라 생각했다.”

가톨릭계 대학인 페이필드 대에서 서양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교수인 위겐 신부에게서 죽음에 대한 답을 얻었다.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후 그는 형이 읽던 동양학 서적을 읽었다. 그리고 동양학을 공부하기 위해 신부님의 추천으로 하버드대로 편입했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했던 그는 동양사상에서 특히 불교의 무상(無常)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현실적이다. 우리가 보는 하나님이랑 가깝다. 아버지(문 총재)는 항상 성장하는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우리(통일교) 사상과 맞닿아 있다.”

그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다른 듯하지만 사실 같다고 말했다.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가르치는 것은 같다. 이해·사랑·동감·봉사가 그렇다. 거기에서 예를 드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가르침은 매우 비슷하다.”

그는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그가 쓴 석사논문은 천주교 다마스커스 요한 신부의 삼위일체 신학과 당나라 정관스님의 화엄불교를 비교한 것이다.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종교의 길을 택했다. 한국으로 바로 건너와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종교를 택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 나를 선택했다”고 표현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 이름을 가졌다. 목회 활동 지역으로 한국을 처음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우선 한국말을 더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전통과 느낌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은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났던 나라처럼 매우 중요한 나라다. 조계종과 인연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오게 됐다.”

그는 처음 서울 마포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신도가 늘어나 3부, 4부 예배까지 하게 됐다. 좀 더 넓은 교회를 찾아,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청파동 소재 본부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했다. 본부 교회는 문 총재가 직접 목회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당회장이란 직책에 대해 그는 “위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어떤 위치에 있어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라고 소탈하게 답변했다.

그는 매일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난다. 3시부터 30분간 명상을 하고, 100배 경배를 한다. 그리고 서울역 인근 소화아동병원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후 병원 옆 공원을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펼친다. 아침 10시 반까지는 경전을 읽는다. 아버지인 문 총재 역시 평생 동안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30분 동안 운동한 후 훈독한다고 한다.

그에게는 늘 ‘문 총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것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그것이 물론 나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해서 신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신도들에게 따라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당회장으로 온 후 본부교회의 신도가 부쩍 늘었다. 그의 신앙지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통일교가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서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종교를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종교는 카리스마가 있는 창시자를 통해 시작되고 그 다음에 시스템화한다. 통일교에서도 아버지 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없다. 2세에서도 그렇고, 앞으로 아버지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처럼 시스템이 생길 것이다. 특히 통일교에서는 여자도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초종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화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사회에 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가정연합은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온 후 통일교 지도자들 사이에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가 비행기를 탈 때 비즈니스 석을 타지 않자, 다른 지도자들도 자연스럽게 이코노미 석을 이용하게 됐다.

“스님, 신부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면 일반석을 탄다. 미국에 절을 가지고 있는 스님도 일반석을 타더라. 아이들도 함께 일반석을 타고 가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생긴다.”

그의 소탈한 이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도 그는 스님들과 친분을 이어나가고 있다. 북한산에 올라 절에 다니면서 사찰에 있는 불상이나 탱화 등을 예술적으로 감상하길 좋아한다. 또 차를 좋아해 손님을 맞으면 한국차와 중국차·일본차를 대접한다.

단순히 ‘문 총재의 아들이니까, 편하게 살아 왔겠지’라는 편견은 그 앞에서 깨지고 만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는 그에게서 간단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형의 죽음이라는 독특한 인생 경험과 동양 철학을 전공한 후 현장으로 나선 목회자라는 인생 이력이 그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달라이라마와 만남도 그러한 경우였을 것으로 미뤄 짐작한다. ‘문 총재의 아들’이라는 신분 덕분에 그에게 달라이라마와 5분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시간 걸려 인도의 달람살라를 찾아갔던 그는 달라이라마를 만난 후 5분간 대화시간을 뒤로 미룬 채 30초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매우 영광스러웠고, 30초 동안 아름다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만 그걸 즐겼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때도 좋아했지만 지금도 그 분을 존경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선불교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그가 좋아하는 선(禪) 이야기가 있다. “농부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어 절벽 쪽으로 도망을 갔다. 절벽에 있는 나무줄기에 매달렸는데, 위에도 호랑이가 있고 아래에도 호랑이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 산딸기가 있어 그걸 먹으니까 너무 맛이 있었다. 위로 올라가면 어떡할까, 아래로 내려가면 어떡할까 걱정하지 말고 바로 앞에 있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걸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니까, 아버지는 딸기를 먹는 데 그치지 말고 그걸 호랑이한테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깊은 생각에 감탄했다.”

눈앞에 보지 않아도 아버지와 막내 아들이 선문답을 하는 장면이 선하게 그려진다. 아들은 동양사상을 이야기했고, 아버지인 문 총재는 그보다 더욱 동양적인 관점에서 아들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마치 선종에서 법(法)을 전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동양사상을 공부하고, 명상을 하며, 몸으로 실천하는 문형진 목사가 2세 종교인으로서 앞으로 펼쳐나갈 길이 어떤 모습일지 더욱 더 궁금하다.

<글·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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