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도서출판 여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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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강목 17권 완역 14년 반 걸렸어요”

[정동초대석]김종하 도서출판 여일 회장

“원래 내가 애사(哀事)가 있더라도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닌데, 가곡이 시작되니 북받쳐 올라오는 거예요. 감회에 젖었죠. 지난 14년 동안 해왔던 것에 대한 감회였습니다.”

지난 1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한글판 본초강목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종하 도서출판 여일 회장(77)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중국 명나라 당시 이시진이 집대성한 한방서. 책의 이름으론 식물만 다룬 것 같지만 광물이나 동물, 사람까지 16부 60류로 총망라하여 분류해, 그것의 성질이나 다른 이름, 산지, 기원, 품질, 생약의 조제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의학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내놓은 한글판 본초강목의 정식이름은 ‘신주해 본초강목’(新註解 本草綱目). 번역에 토대가 된 것은 ‘금릉판 본초강목’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일본내각문고 소장 일부, 교토은사식물원대상문고 소장 일부, 네덜란드인 럼프가 중국에서 가져와 과거 동베를린 국립도서관 수장본 일부 등 4부가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나온 한글 완역판을 포함하면 현재 10개국 언어로 번역돼 있다. 그림은 ‘무림전위기간본’에 따랐고, 지명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참고했으며, 성분은 ‘일본 화학총람약명표’에 따라 주석을 별도로 처리한 것. 이번에 총 17권으로 내놓은 한글판 본초강목은 일어판을 바탕으로 번역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14년 반이 걸렸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어려움이, 둘째는 이게 중국 작품이니 중국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일본어로 하다 보니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였어요.” 김 회장은 중국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정동초대석]김종하 도서출판 여일 회장

일제강점기에 부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의 집은 중국영사관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집과 영사관 사이에 난 ‘구멍’을 통해 놀러 들어가는 것이 어린 김 회장의 습관이었고, 자연스럽게 아주 어린시절부터 중국어를 익혔다. 1950년, 전란의 기운이 감돌 때 그는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게이오 대학 문학부에 다녔다. 동란 와중에는 학도병으로 자원해 전선에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도 굉장히 혼잡했어요. 전 세계에 나가 있던 군인들이 돌아왔는데 폭격으로 집은 없어졌지, 그래서 지하철 계단에 가마니 깔고 사는 거였어요.” 6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왜정 시절 일제가 운영하던 조선은행이 전신인 한국은행의 현금출납계에서 일하다 몇 개월 만에 그만두고, 대한한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사(KNA)의 광주지점장을 맡았다.

원래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성격이라 문인협회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고 천상병 시인 등 문인들과도 가까이 지낸 그는 당시 한국에서는 드물게도 구조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국일보에 춘추란이라고 있었어요. 거기 칼럼을 썼는데, 사실 신문에 글 쓰는 것으로 먹고살기는 힘들었습니다. 6·25사변 때 김규식씨와 박기출씨 등이 예비검속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제 아버님도 끌려간 적이 있어요. 사실 아버님은 성실한 기독교신자였고, 전혀 사상 쪽과는 관련이 없었는데….” 그는 ‘역사의 증언’ ‘악마의 하수인들’ ‘마수’ ‘자유에의 탈출’ ‘북괴의 멸망’ 등의 이름이 붙은 총 5권짜리 반공실록 소설을 썼다. 다른 사람들의 ‘사상에 대한 의심’을 떨치기 위한 것이었다. 내용은 6·25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빨치산으로 북한산에 내려와 있는 젊은 인민군의 시각으로 6·25전쟁의 전 과정을 재구성한 것. 부대 명칭이나 사건 이름이 정확해 ‘어떻게 썼나’에 대한 의구심이 또 일어났다. “치안본부와 정보부 문화담당국장이 자료를 제공해줬죠. 또 일본에 있을 때 자료도 많이 봤는데….”

1970년대, 정부기관의 수석연구원으로 일할 때 본초강목 일역판을 처음으로 접했다. 발행된 지 며칠 안 됐을 때다. “보고 감탄했어요. 이건 일반 의학 서적이 아니고 유려한 문장을 담은 문학작품이었거든요. 또 하나는 동양철학의 아름다운 여백이랄까, 그런 심오한 흐름이 있었죠.” 결심을 실행에 옮긴 건 61세 때. 사표를 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노만기(35) 도서출판 여울 대표는 “그 사진을 저도 본 적 있었는데, 지금에 비하면 상당히 멋쟁이셨죠. 김 회장으로선 인생을 건 사업이었던 겁니다.”

김 회장은 번역하는 데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손대긴 어렵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자부심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없어지니, 친척들을 모았습니다. 친척 중에 그나마 넉넉한 사람도 있었거든요. 이 책을 번역할 테니 3년만 생활비를 보태라. 3년이면 끝난다고 하니까….”

그러나 3년 뒤에 나온 결과물은 4권 분량. 작업은 생각 외로 더뎠다. “이시진이 편저한 것이지만 그 바탕이 되는 문장자료는 2000년, 3000년 전의 것들입니다. 본초강목 이야기는 많이 언급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걸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거예요. 일본 사람들이 원본을 갖고 번역하고 설명했는데, 성분도 분석하고 퍼센티지나 라틴어 학명도 거론되고 있어요. 보통 의학서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게다가 발음도 모르고, 2만5000자가 고작인 한자 옥편의 한계는 뚜렷했다. 게다가 본초강목에서 언급한 풀 중 많은 수가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천불초(千佛草)라는 게 있어요. 이름만 나오지 어느 과라는 설명도 안 나옵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냥 번역만 해놓고 넘어갔습니다. ‘이거는 알아내야 한다’ 그거 하나 때문에…. 일본에 건너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고,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대만에 가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답변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한제국 시기의 옥편에 있는 거예요. 천불초가 떡쑥이라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거 하나 찾는 데 9개월이 걸렸거든요.”

그렇다고 담고 있는 모든 내용이 다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기자가 살펴본 본초강목엔 이런 대목이 있다. ‘동행마제하의 토(東行馬蹄下의 土): ‘홍경’ 왈, 이것을 사용하면 부정한 부인의 치정관계를 알 수 있다… (중략) …시진 왈 이것과 삼호(三戶)의 가정중니(家井中泥)를 합하여 사람의 제하(蹄下)에 넣어두면 자리에서 못 일어난다.’ 풀이하자면, 동쪽으로 간 말발굽 아래의 흙을 사용하면 부인의 간음을 알 수 있다든가, 집안의 우물 진흙과 합하여 하반신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비약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게 정말 가능할까.

얼마 전엔 주사(朱砂)가 주재료인 환약을 먹은 어린이가 급성수은중독에 걸린 사건도 있지 않은가. “비판에 동의합니다. 실제 중국의 황제 100여 명 중 80여 명이 코가 깨져서 죽었는데,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일종의 공해병이거든요. 좋은 약만 먹다 보니 중독된 것이죠. 본초강목에는 그런 무리한 것은 안 들어 있습니다. 사실 걱정되는 게 책이 나오면 이상한 사람들이 책을 악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동쪽의 햇볕을 많이 받은 붉은 벽돌담의 흙을 떼어, 어떻게 해서 먹으면 어떤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걸 ‘돌팔이’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고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마치 요즘 이야기인 것처럼 착각이 들 만큼 그럴듯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 개고기 항목을 보면, 개의 용도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전견(田犬)과 폐견(吠犬)을 나누는 기준은 훼(喙:주둥이)의 길이. 전자는 수렵용이고, 후자는 집 지키는 개다. ‘체구가 비대하여 식료로 사용하는 개’가 식견(食犬)이다. 도가(道家)는 ‘지염’이라고 해서 개를 먹지 않았는데, 식견 중에서도 황견이 상품이고, 그 다음이 흑견, 백견 순이다. 즉 ‘누렁 똥개의 맛이 최고’라는, 개고기를 즐기는 식도락 치들의 속설을 고래의 문헌이 보증하는 셈이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는 정보도 있다. 마찬가지로 ‘개’의 항목엔 “호랑이가 개를 잡아먹으면 취한다” “시(豺: 승냥이)가 개를 보면 무릎을 꿇는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호랑이와 승냥이가 한반도에서 멸종된 지금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김 회장은 부연한다. “이를테면 빈대가 천장에 올라가 낙하해서 떨어지고 돌아갈 때는 옆으로 걷는 법이 없고, 나란히 일렬종대로 항상 남쪽을 향해 간다는 설명이 있는데, 아마도 오늘날 생물학자는 그런 걸 모를 거예요. 그런 것은 앞으로 연구 과제로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수비결 같은 것도 있을까. 있다. 본초강목엔 새벽 4시부터 6시 사이엔 반드시 자고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김 회장은 늦은 새벽까지 깨어 있더라도 반드시 이걸 실천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잖아요. 새벽 3시 30분터 일어나 산에 올라가 야호~야호~ 하는데, 저더러 운동하라고 권하던 사람들, 다 먼저 죽었습니다. ‘아침형 인간’ 같은 이야기, 다 쓸데없는 소립니다.” 그의 기호는 남다르다. 커피·담배가 없인 하루도 못 산다. 그 대신 더러운 것은 안 보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야 한다. 눈도 즐거워야 하고, 귀도 좋은 이야기, 미담만 들어야 한다. 음식은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한다. 책은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 14년이 넘는 세월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데.

“욕심 같으면 많이 팔리면 좋겠습니다. 일단 한의대·의과대나 학생, 교수, 약국, 약종상 등 우리나라 의학계 종사자가 28만 명이에요. 10분의 1, 약 3만 질 판매는 자신 있어요. 본초강목은 단지 의학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삶, 우주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이해하면 세상사의 이치를 알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만기 대표가 부연했다. “출판을 추진하면서 관련된 사람을 여럿 만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본초강목 내용을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었습니다. 한의학·본초학을 전공한 교수님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한 걸 포함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책을 완역했다는 것, 그것이 어르신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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