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자연과 나눈 경이로운 대화 자연에 바치는 아름다운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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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땅의 사계<br>알도 레오폴드·윤여창·이상원 옮김·푸른숲·1999

모래땅의 사계
알도 레오폴드·윤여창·이상원 옮김·푸른숲·1999

어젯밤 금광호수를 돌아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 돌연 야생짐승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껑충껑충 산속으로 뛰어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노루다. 우리 집은 산 밑이고, 바로 옆으로는 작은 둔덕을 이룬 밤나무 군락지를 끼고 있다. 눈 쌓인 겨울이면 심심찮게 노루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온다. 아마 이 녀석도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와 수확이 끝난 빈 논과 밭, 마을 주변을 뒤지고 다녔을 것이다. 밤중에 별자리를 보려고 나오면 마당 아래 묵정밭에서 인기척에 놀란 노루들이 풀숲에서 뛰어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어두워서 노루를 볼 수는 없지만 풀숲에서 움직이는 기척만으로도 노루인지 들쥐인지 가늠할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열대여섯 정도의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고 산과 하천과 호수를 끼고 야생동물이 주변에 많이 서식한다. 야생동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 환경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독서일기](48)자연과 나눈 경이로운 대화 자연에 바치는 아름다운 송가

여름에는 먹잇감을 찾아 유혈목이 따위의 뱀들이 마당까지 올라와 어슬렁거린다. 밤에는 너구리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하천에서 묵정밭으로 올라오고 가끔은 어둠 속에서 불 켜진 부엌 안쪽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한다. 여기에 살면서 관찰한 생물들은 청설모, 다람쥐, 들쥐, 두더지, 너구리, 오소리, 노루, 고라니, 담비, 꿩, 가창오리, 뱁새, 까치, 딱따구리, 새매, 산비둘기, 물까마귀, 직박구리, 뻐꾹새, 휘파람새, 학 등이다. 여름밤에 반딧불이가 초록 인광을 달고 나는 가협마을에 들어와 야생 자연보호론자로 살면서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땅의 사계’를 처음 읽었다.

알도 레오폴드는 1935년 무렵 미국 위스콘신의 강변 황폐한 모래땅에서 농장을 하여 가족과 함께 조용한 시골생활을 즐기며 자연과 나눈 경이로운 대화들을 ‘모래땅의 사계’ 속에 꼼꼼하게 적고 있다. 숲에서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뒤쫓거나 숭어 낚시를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늙은 참나무를 베어내며,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관찰하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사랑한 그 자연의 변화를 1월부터 12월까지 빼놓지 않고 기록한 것이다. 야생동물이 남긴 흔적을 따라 그 길을 뒤쫓는 레오폴드는 마치 노련한 수사관 같다. “이제는 발자국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본다. 발자국은 내 이웃의 옥수수밭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사슴들은 버려진 옥수수를 눈밭으로 끌어내 앞발로 밟고 헝클어트려놓았다. 발자국은 그 다음엔 다른 길로 해서 모래톱으로 간다. 가는 길에 사슴은 부드러운 초록빛 새순을 찾느라 코를 쑥 집어넣어 풀섶을 헤쳐놓았고, 샘에서 물도 마셨다.” 그 추적의 결과 야생동물의 활동 범위, 습성, 은신처 등이 드러나고, 야생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야생 자연에 대하여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대지의 윤리에 깊이 동화된다.

‘모래땅의 사계’는 드물게 아름다운 책이다. 야생 자연의 아름다움과 거기 사는 기쁨에 푹 빠져버린 자가 자연에 바치는 송가(頌歌)다. 다음 문장을 보라. “새벽 바람에 거대한 늪지가 출렁인다.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바람은 늪 저 너머로 안개를 몰고 간다. 하얀 유령과도 같은 안개가 낙엽송 숲 위를 지나 이슬을 머금은 무거운 몸을 미끄러뜨리며 물가 풀밭 위를 스친다.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온 사방은 침묵에 잠겨 있을 뿐이다.” ‘모래땅의 사계’를 읽는 즐거움은 아마도 자연을 향해 열린 마음과 시적인 통찰, 그리고 은유와 암시가 풍부한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타고난 문학적 재능의 합작에서 비롯된다. 레오폴드는 한 그루의 굴참나무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한 그루의 늙은 굴참나무를 가진 사람은 그저 나무 한 그루를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역사 도서관을, 그리고 ‘진화’라는 초대형 공연의 예약석을 가진 것이다.” 레오폴드의 장점은 해박한 생태학과 진화론적인 지식의 바탕 위에서 자연이 겪어내는 변화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직접 체험한 자의 생생한 경험들을 함께 아우른다는 점이다. 자연은 낙원이 아니다. 사람의 무지와 탐욕으로 수탈당한 끝에 쓸모없다는 판정을 받고 버려진 황무지다. 그러나 자연은 자기복원력을 타고난다. 황무지에는 멸종되었던 야생화가 자라나고 나무들이 돌아와 뿌리를 내리고 이윽고 야생동물이 찾아든다.

우리 선조는 삽을 먼저 발명했다. 그 삽으로 나무를 심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에 뭔가를 줄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난 뒤 사람들은 도끼를 발명했다. 그 도끼로 나무를 베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과 같이 자연에 뭔가를 주고 거두는 존재로 거듭난다. 본디 자연에서 심고 거두는 일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신성한 일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 심고 거두는 존재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사람이 발자국을 찍고 삽과 도끼를 들이대는 일을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면 최소한으로 그치는 게 차선책이다.

자연의 내부적 자기복원력을 최소한으로 훼손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연을 경제적 가치의 척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강바닥을 파내 대운하를 건설하는 등의 개발작업은 대체로 경제적 가치의 척도에 따라 진행된다. 자연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할 때 큰 함정과 만난다. 왜냐하면 야생 자연은 큰 시장주의의 교환가치의 맥락에서 보자면 대부분 큰 가치가 없고, 거기 사는 야생화나 수많은 새도 마찬가지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늪지나 소택지, 모래언덕, 사막 등은 인간중심적인 잣대로 보자면 아무 쓸모가 없는 땅이다.

허나 이런 땅은 생태환경의 일부이고, 지구 위에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의 중요한 터전이다. “자연보호 정책이 완전히 경제적인 동기에 기반할 경우 나타나는 기본적인 약점은 대지 공동체의 구성원 대부분이 전혀 경제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야생화와 새들은 아무런 경제적인 가치가 없다. (중략) 그렇지만 그 생명체가 모두 생태계의 구성원이고, 생태계의 안정은 전체의 구성이 유지된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내 생각이 맞다면, 그들 모두 최소한 생존은 보장받아야 한다.” 시장주의의 교환가치가 없다고 야생화들을 없애버리고 새들을 몰아낼 수는 없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보다 앞서 땅을 차지하고 살던 자연의 원주민들이다.

자연은 거대한 에너지의 순환 체계에 속해 있다. “대지는 그러므로 단순한 흙이 아니다. 이것은 흙, 식물 그리고 동물이라는 순환을 통해 흘러가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먹이사슬은 에너지를 위층으로 올리는 살아 있는 통로다. 죽거나 부패한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 순환은 닫혀 있지 않다. 에너지는 부패를 통해 흩어지기도 하고 대기로부터 흡수·보충되기도 하며 일부는 흙, 토탄, 생명력이 긴 숲 등에 저장된다.” 대지는 생명의 어미다. 무릇 삼라만상이 여기서 나고 여기로 돌아간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이 에너지의 순환 체계에 속해 있다. 문명의 옷을 입고 사는 동안 사람은 먹이고 입히는 이 자연의 어미라는 존재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 신성한 생명의 어미를 단순한 개발 대상으로 여기고, 가슴을 찢고 부수고 파헤치는 어리석은 짓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이 숭고한 존재인 것은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산처럼 생각하기’에서 레오폴드는 미국 삼림청의 신참직원일 때 늑대 가족을 사냥했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총을 맞고 죽어가는 늑대의 눈에서 사그라드는 푸른 불꽃을 보았고, 그것을 그 뒤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며 레오폴드는 늑대의 눈에서 그 파란 불꽃이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것, 늑대와 저 산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고 덧붙인다. 1949년에 초판이 나와 출간 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모래땅의 사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잃어버린 자연의 본성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과 가치를 일깨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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