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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문화계·시민사회계 신보수 바람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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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실용·선진화 기치 제2 정권교체 이미 시작됐다

“대한민국 진영은 이제 겨우 반쪽의 승리를 거둔 것에 불과하다.”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신보수’의 우파 정권이 탄생하자, 한 보수신문의 칼럼에서는 이를 ‘절반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정치권력의 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다른 절반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칼럼니스트는 “이명박 시대의 성패도 결국은 경제 실용주의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문화 헤게모니 쟁탈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글을 마무리지었다.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이 만나 청와대 백악실로 들어가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이 만나 청와대 백악실로 들어가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중도개혁에서 신보수로의 정치 권력이동이 시민사회계·학계·문화계의 권력이동으로 옮아갈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을 쏜 셈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에서 활동했던 한 대학교수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예감했지만,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마자 바로 이렇게 쟁점으로 떠오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제2의 정권교체’가 시작됐다. 비(非) 정치권에도 신보수의 ‘파란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실용·신보수·선진화의 기치를 내세운 인사들이 권력 교체와 함께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인을 도왔거나, 정책이론을 제공하며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지식인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그동안 시민사회계·학계·문화계의 중심에 섰던 중도개혁 인사들이 무대의 한쪽으로 밀려날 운명에 처했다.

기존의 보수보다는 유연한 시각
신보수 인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서로 다른 시각을 보였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효종 교수(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는 “새로운 보수의 기본 철학을 실용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실용은 선진화·신보수·신자유주의 개념을 포괄하며, 이념 위주의 정책보다 흑묘백묘론처럼 실용 위주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계열인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선진화’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신 대표는 “신보수란 기존의 보수 우파와는 다른 새로운 우파이며, 실용은 당연히 내세우는 것이지만 민주화에 이은 선진화라는 표현이 새로운 정부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이념적으로 신우파지만 과거의 우파와 달리 국가 통제주의가 아니라 민간의 자율을 중시하는 우파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기간 중 자발적으로 이명박 당선인 지지운동을 펼쳐 참여정부의 노사모에 비유되는 선진국민연대의 이상직 공동의장(대구산업정보대학 교수)은 “이명박 당선인이 이념보다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명박 당선인의 선진화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신보수·신자유주의보다 선진화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 이 의장의 주장이다.

이들 신보수 세력은 ‘권력이동’에 대해 기존의 보수세력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수언론이 시민문화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신보수 측 인사들은 ‘좌편향’의 시민문화권력을 보수 쪽이 아닌 좌우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보수보다 유연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문화정책을 세웠던 박찬숙 의원(한나라당)은 “한쪽으로 기울었던 정책을 균형이 맞도록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2의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과 놓아야 하는 세력, 이들 양쪽의 시각은 참여정부에서 있었던 시민문화 개혁에 대한 인식부터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신보수 쪽 인사들은 참여정부에 참여한 시민문화 세력을 ‘좌편향’으로 보고 있는 반면, 개혁 쪽 인사들은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일방적으로 보수 쪽에만 있던 시민문화 권력의 한 부분을 참여정부 때 차지해 균형을 맞추었다고 보고 있다.

신보수 쪽은 특히 참여정부 내의 ‘문화권력’을 문제삼았다. 이들은 또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국립현대미술관·한국영상자료원·국립국악원 등 문화관광부 산하 기관장에 민예총·문화연대 출신이 임명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권력뿐 아니라 방송권력도 좌파 권력이 독차지했다는 것이 보수 쪽 인사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KBS 정연주 사장과 MBC 최문순 사장, 그리고 방송위원회의 일부 방송위원의 경력을 문제삼았다. 한 보수신문의 사설에서는 이를 ‘싹쓸이 문화권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문화정책을 자문했던 조희문 인하대 교수는 “사람·정책·활동에서 좌파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평가하면서 “좌파 지향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극단적이거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파시스트적인 경향이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정책연구위원인 나호열 경희대 교수는 “(저쪽이) 점령군의 완장을 차고 온 듯한 느낌과 복수로 한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너무 강했다”고 말했다.

“좌파 인사들이 참여정부 좌지우지”
시민사회 권력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는 “참여정부가 진보 좌파의 이념을 많이 생각한 나머지 통합의 문제를 소홀히 했다”며 “특히 인사 문제가 한쪽으로 치우쳐 자기들 사람으로 회전문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좌파’가 시민문화 권력을 차지했다는 시각에 대해 개혁 측은 정반대 의 견해다. 민예총 정책기획팀의 염신규 팀장은 “중도개혁 세력이 참여정부의 초기에 문화정책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좌’라는 개념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면서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은 ‘좌’로 간 것이 아니라 민간에 참여를 열어두었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쪽에서 보면 ‘좌편향’이겠지만 엄밀히 평가하자면 ‘좌편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연 문화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권력’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100% 보수 문화권력이 존재했다”면서 “정부의 문화계 요직에 일부 개혁적인 인사가 들어갔다면 이들이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업적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시민사회 권력의 핵심으로 지적받는 참여연대의 김민영 사무처장은 “참여정부에서 개혁 진영이 대단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모든 것을 보수와 진보의 권력게임으로 본다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의 시민문화 세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듯이, 시민문화 권력의 이동에 대해서도 양측의 기대와 전망은 서로 다르다. 신보수 측 인사는 대부분 좌편향의 시민문화 권력을 다시 중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개혁 측 인사들은 시민문화 권력의 이동을 시장 원리 또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보수 측이 권력 이동의 결과 쪽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개혁 측은 권력 이동의 방식 쪽에 더 비중을 두는 양상이다.

신보수 측 조희문 교수는 “참여정부가 문화를 통한 사회적 변혁을 과도하게 인식해 문화를 선전·선동 수단으로 변질시켰다”며 “이를 제자리로 돌려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 권력에 대한 신보수 측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한쪽에 치우쳤던 것을 가운데로 가져다놓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모든 것을 보수 위주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민연대의 이상직 공동의장은 “앞으로 지식인들을 모아 정책연구원을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좌파의 시민운동에 맞서 자발적인 우파 시민단체가 함께 경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민연대의 유선기 사무총장은 “새로운 정부를 물밑에서 돕겠지만 권력을 가진 것처럼 설치지 않고 소리 없는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개혁 진영은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권력 이동’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냈다. 참여연대의 김민영 사무처장은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야지, 진보 세력을 적출 대상으로 보는 것은 다원화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예총으로 대변되는 세력들이 권력에만 관심을 갖고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면 문화는 그만큼 후퇴한다”고 우려했다.

방송분야는 더 첨예한 갈등
개혁 진영에서는 또 시민문화 권력이 이미 대중에 넘어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정치권력이 이동한다고 해서 문화권력이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이미 문화권력은 유명한 작가와 예술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대중이 문화권력의 중심이 된 마당에 권력 이동을 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민예총의 염신규 팀장 역시 “문화의 중심이 시장으로 옮겨가 있는 상황에서, 상징적 차원에서 몇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민문화 권력의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신보수 측과 개혁 진영은 그나마 비슷한 점이 있다. 신보수 측 신지호 대표는 “시민단체·학계·문화계 같은 자율적인 영역이 그동안 정치에 종속됐다”며 “이들 영역이 내부에서 재조정될 수는 있지만 정치 권력의 영역은 아니다”고 말했다. 나호열 교수는 “예술하는 사람은 예술을 기본으로 해야 하며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며 “예총도 새정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희문 교수는 “민간이 자율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자유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정부는 단지 민간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도와주는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해야 한다”며 자율성을 강조했다.

민예총 염신규 팀장 역시 신보수 측과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염 팀장은 “참여정부와 새정부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문화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시민문화 분야보다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방송권력은 신보수와 개혁 진영 간에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특히 KBS와 MBC 사장, 방송위원회 방송위원의 임명 과정에는 법적으로 대통령과 국회 등 정치권력이 영향력을 갖게 돼 있다. 박찬숙 의원은 “정치가 방송권력에 개입하는 모양새는 옳지 않다”면서도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참여정부에서 방송이 한쪽으로 기울었으며, 불균형적인 시각으로 방송을 오도했던 그룹, 사람, 프로그램에 대한 자정 능력이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효종 교수는 “방송은 먼저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그 후에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개혁 진영의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참여정부 아래에서도 방송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쪽에 가 있었다”고 반론을 폈다. 전 소장은 “방송을 권력으로 보는 패러다임은 이미 무너졌으며, 정치권력의 교체를 미디어 권력의 교체로 단순화는 것은 과장이자 너무 기계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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