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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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탁신 추종세력 총선 승리… ‘전 경제총리’로 국내복귀 수순 밟아

치에 복귀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만일 ‘인민의 힘 정당’(PPP)이 요청하면 공짜로 조언해줄 순 있다.”
역시 탁신다웠다. 탁신 태국 전 총리는 2006년 9월 군부의 무혈 쿠데타로 쫓겨났다. 태국 총선 직후인 지난 12월 25일, 그는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공짜 발언’을 했다. 쿠데타 이후 1년여 만에 치른 이번 태국 총선은 신생정당인 ‘인민의 힘’에게 전체 480석 중 233석이 돌아갔다. 중산지식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60여 년 전통의 민주당은 16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의석을 확보한 인민의 힘은 탁신이 이끌던 ‘타이락 타이’(TRT)당이 헌법재판소의 명령으로 지난해 5월 해산된 후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다시 꾸린 탁신 충성파 정당이다. 이 당은 경제에 밝은 탁신이 돌아와 나라 경제 살리기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과반석을 얻지 못해 정부를 구성하기가 어려웠던 인민의 힘은 그러나 1월 1일 현재까지 군소 정당 3개가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친 탁신 신정부’를 무리 없이 출범시킬 듯하다. 당수, 사막 순다라베즈는 선거 직후부터 이미 “내가 다음 총리”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탁신은 기자회견을 열었던 홍콩을 태국 귀환 베이스로 잡았다는 후문이다.

한국사회와 태국사회의 닮은 점
태국 전 총리 탁신 시나왓. 그는 부패 스캔들로 지난 몇 년간 태국 사회의 분열과 불안을 야기해 주범이지만 말은 항상 청산유수였다. 인심 한번 크게 쓰는, 마치 물욕 없는 정치인처럼 굴었다. 동시에 솔솔찮게 드러나는 자신의 부패 혐의 증거 앞에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딱 잡아떼는 것 또한 탁신의 얼굴이다. 그는 여전히 “귀국하면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부패 혐의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2006년 1월, 자신의 신(Shin) 주식회사의 주식 약 49.6%(통신회사의 외국인 소유제한을 25%에서 49%로 올린 새 통신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거래)를 싱가포르의 테마섹홀딩에 팔아 730억 바트(18억 8000달러, 약 2조 원)의 이익을 챙기면서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던 그는 사기와 부패 혐의 등으로 고발된 후 2007년 6월 법원 출두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이에 선거 며칠 후 태국 법무국은 탁신이 돌아오면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될 거라고 다시 한 번 공표했다. 친 탁신 정당이 승리해도 ‘또 다른 쿠데타는 없을 거라고 공언한 군부도 이번 선거 결과가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탁신이 ‘인민의 힘’ 정부를 통해 군 고위 장성들이 ‘친탁’으로 바뀌길 기다린 후 귀국할 거라는 소문이 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이명박 당선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그와 탁신 전 총리가 은근히 닮았기 때문인데, 두 인물뿐 아니라 한국의 대선과 타이의 총선도, 더 나아가 한국 사회와 태국 사회도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첫째, 이명박과 탁신 모두 재벌 기업의 경영자 혹은 소유주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경제 (예비) 대통령’ ‘경제 (전) 총리’ 등 ‘경제’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둘 다 부패 혐의를 받아왔고, ‘아직’ 기소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조사받을 예정이다. 단, 이 대통령 당선인은 특검에 달렸고, 탁신 전 총리는 귀국에 달렸다.

셋째, 기막힌 우연이다. 둘 다 ‘1999년 4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차린 혐의까지 닮았다. 회사 이름만 다르다. ‘BBK’와 ‘엠플리치’.

넷째, 이 모든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일단’ 정치적 대승을 거두었다. 전자가 기존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반사이익을 보았다면, 후자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군 쿠데타에 대한 반감이 낳은 반사이익을 보았다.

그럼 한국과 태국 두 사회는 무엇이 닮았을까? 필자의 경험과 관찰이라는 ‘한계’를 전제하고 말하자면 두 사회는 ‘외모’와 ‘돈’에 관심이 참 많다. 최근 언론이 즐겨 쓰는 그 문구 즉 ‘이념보다는 실용’ 같은 거다. 아시아권에서 하얀 피부를 열망하는 ‘화이트 해바라기’ 현상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바로 한국과 태국이다.

결국 그런 두 나라의 국민 다수가 ‘그들의’ 부패 혐의를 개의치 않고 ‘경제 살리기’에 표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리는’ 경제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물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태국 당국 “귀국해도 안전할 것”
한편 ‘오기만 해봐라’ 하는 태도가 역력했던 태국 당국은 파키스탄 야당 지도자 부토의 암살 직후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쫓겨난 탁신 돌아와도 ‘안전할 것’(고로 ‘암살당하지 않는다’)”
대중적 지지와 망명이라는 코드 면에서 보면 이번에는 탁신과 부토가 유사하기 때문이다(두 정당의 영문 약칭도 ‘PPP’로 같다). 임시 정부 수라윳 총리는 “파키스탄의 폭력 사태가 태국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린 천성적으로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무혈 쿠데타 군부의 뒷심을 얻은 정부이니 꼭 맞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다.

아무튼 부토는 갔지만 태국의 이명박과 한국의 탁신은 아직까진 매우 건재하다. 그러나 그들의 부패 혐의에 대한 검찰 조사, 더 나아가 그들이 이끄는 (혹은 ‘조언’하는) 양국 정부의 향후 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떤 경제를 어떻게 살리는지도.

방콕(태국)┃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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