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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 대통합신당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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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 이후 전열 정비 실패… 당 대표 선출 놓고 추대·경선 팽팽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도대체 답이 없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신당은 향후 진로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141명의 의원을 거느린 거대 정당인 신당이 이렇게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은 데는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데 신당 의원 대부분이 동의한다. 신당의 지도부는 지난해 12월 19일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전열을 정비하는 데 실패했다. 신당 지도부는 12월 24일 김호진(전 노동부 장관) 상임고문을 위원장으로 ‘당의 반성과 전진을 위한 쇄신위원회(이하 쇄신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쇄신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쇄신’할 수 없는 인물들로 구성됐다는 것이 의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쇄신위는 정동영계(민병두), 김근태계(이목희·이인영), 손학규계(임종석), 김한길 그룹(노현송), 중진모임(오영식), 민주당 입당파(심재권 전 의원) 등으로 구성됐다. 신당을 출범시켰던 6개 계파가 골고루 나눠먹기를 한 것이다. 이렇게 계파 안배 형식으로 구성한 쇄신위로는 당 최고위원회-상임고문단 연석회의의 종속기구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의원들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정성호·문병호 의원 등 신당의 초선의원 19명은 당 지도부의 즉각 사퇴, 쇄신위 재구성 등을 요구하는 ‘당의 전면적 쇄신을 바라는 초선의원 성명’을 발표했다. 문병호 의원은 백의종군 대상으로 참여정부 총리 및 장관(이해찬·한명숙·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장과 원내대표 출신(정동영·김원기·임채정·문희상·신기남·유재건·천정배·김한길·정세균·김근태)을 지목했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총선 불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위 구성 계파별 ‘나눠먹기’
이는 2001년 당시 민주당에서 초선의원들과 재선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당 쇄신을 요구하며 정풍운동을 벌였던 대목을 연상시킨다. 2001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측근인 권노갑씨의 인사 개입 등 전횡으로 국민적 지지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앞장서서 당 지도부와 동교동계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건이 민주당 정풍운동이다. 민주당은 정풍운동을 계기로 당 대표(한화갑 대표)와 대선 후보(노무현 후보)를 분리하고, 국민참여형 경선제를 도입하는 등 개혁에 성공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신당의 초선의원들은 제2의 정풍운동을 한다는 각오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당의 진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다.

또한 신당 의원들은 2월 3일 개최되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추대할 것인지, 대의원들의 경선을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할 것인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신당 내의 손학규계, 친노계, 중진모임 등은 대표 추대론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정동영계인 김한길 그룹은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추대론과 경선론 둘 다 논리적으로는 맞다. 김한길 그룹의 의원들은 당헌·당규대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경선을 통해 대표를 뽑아야 그 대표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당을 재건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손학규계 등 다른 계파의 입장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경선을 치른다면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력이 앞서는 정동영계가 승리할 것은 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전당대회의 의미만 퇴색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반대의 주장 속에서 쇄신위에서 어떤 대안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현재 당 대표로 거론되는 원내 인사로는 손학규 전 지사,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강금실 전 법무장관, 정세균·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원외에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도 거론되고 있다. 손학규 전 지사를 선호하는 그룹은 경선 때 손학규 전 지사를 지지한 수도권의 초·재선의원과 386의원들이며, 이광재·김형주·이화영 의원 등 친노그룹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선호하고 있고, 제2의 정풍운동을 선언한 초선의원들은 백낙청 명예교수나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적임자로 보고 있다. 뚜렷한 대표를 정하지 못한 김한길 그룹은 손학규 전 지사가 대표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김한길 그룹의 한 의원은 “만약 손학규 전 지사가 대표가 돼서 총선을 치르면 총선 구도는 박근혜(한나라당)와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이회창이 치르는 한나라당만의 선거가 될 것”이라며 “손 전 지사가 신당에 뿌리내리려면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친노배제론’도 뜨거운 감자
이와 함께 총선에서 친노배제론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이며, 친노그룹 의원들을 신당 공천에서 배제해야 ‘노무현당’의 이미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분위기 탓인지 친노그룹들은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친노세력을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이라는 극한적인 용어를 쓰면서 자숙하고 있다. 신당의 한 재선의원은 “친노세력들이 강하게 나오면 그들에게 침을 뱉겠는데, 오히려 바짝 엎드려 있으니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인터뷰 | 제2의 정풍운동 주도 정성호 의원
“정동영 후보는 총선에 출마하지 말아야”

[정치]총체적 위기 대통합신당 ‘갈팡질팡’

초선의원들이 성명을 발표한 계기는.
“이번 대선에서 신당뿐 아니라 우리당과 가치, 노선 이념을 함께해온 민주평화개혁 진영 전체가 실패했다. 당 지도부가 과거처럼 도식적이고 고식적인 방법으로 당을 수습하려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2월 24일 의원총회가 끝나고 나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했다.”

당 해산까지 요구했는데.
“재보궐 선거부터 지난 총선까지 한나라당에 전패했다. 국민들이 여러 차례 우리당에 경고했다. 우리당에 대한 파산선고와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정당으로서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당이 해산까지 해서 새 출발을 해야 하는 각오로 당 개혁에 임하라는 것이다. 당의 해산이란 정당의 특권, 즉 보조금, 비례대표 추천권 등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 쇄신위를 다시 구성하자고 주장했는데.
“쇄신위는 당의 전직 전략기획위원장들이 모두 들어갔다. 전략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읽어야 하는 것인데, 모두 실패했다. 선거전략, 대야당 전략을 했던 사람들이 쇄신위에 계파별로 안배해서 다 들어갔다. 실패한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했어야 했다.”

신당을 대표할 만한 인물은 누가 되어야 하나.
“찾으러 다녀야 한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아온 명망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상징적인 인물을 모시고 그 분에 공천 심사권도 줘야 한다. 백낙청 교수, 한승헌 변호사 등을 모셨으면 좋겠다.”

정동영 후보의 최근 행보에 대한 생각은.
“몹시 안타깝다. 정 후보의 승리를 위해 모두 당 안팎에서 뛰었다. 정 후보는 국민들과 우리 세력들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재도 대선에서 지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다. 정 후보는 총선에도 나와서는 안 된다. 측근들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면 안 된다. 민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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