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석유만으로 살 수 없지 않은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자원고갈 대비 제조업 육성 박차… 한국기업 ‘제2의 중동 붐’ 노려볼 만

전 세계 석유 수출량 1위,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하고 광활한 아라비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다.
오일 달러를 앞세워 이슬람 종주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는 이 나라에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석유 고갈 이후를 대비하여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도 하며 인터넷이나 위성을 통해 밀려드는 서구의 자유분방한 문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서 통제만으로 이들의 불만을 다스릴 수 없는 상태다.

또한 아라비아반도의 한 모퉁이 두바이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열풍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우디 왕정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바레인, 카타르의 변신도 위기감을 더한다. 이슬람 종주국의 위상을 지키려는 왕정과 자유로운 삶을 희망하는 국민들 간에 많은 대화와 이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현실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없겠지만 억압받는 여성인권 문제와 종파 간 갈등은 여전히 폭발성을 갖고 있다. 당분간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지만 사람이 빵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던가.

정작 의식 있는 지도자들의 고민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30%에 달하는 자국인 실업자 수가 말해주듯 일하려 하지 않고, 학비 지원에다 웃돈을 주면서까지 공부하기를 유도하지만 학교를 멀리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공백을 제3국인들로 보충하고 있지만 기업의 핵심인 중간 관리자들이 모두 3국인으로 채워져 이들이 모든 것을 진행하는 현실이 국가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이민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이들을 포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배척할 수도 없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고민이 깊어가는 것이다.

근로·학업 등한시하는 젊은 층 늘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은 없다는 격언처럼 신의 축복으로 주어졌다는 기름밭도 언젠가는 그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석유자원의 고갈 이후를 대비하자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제조업 육성정책으로 기초산업이 정착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술적인 자립도는 논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Riyadh)는 이탈리아인이 설계했고 유명한 빌딩들은 한국 건설업체가 세웠다. 유전개발은 미국계 회사가 하고 사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식수는 한국 기술로 만들어 공급하는 등 어느 한 가지 자신들의 힘으로 이룬 게 없다는 것이 지식인들을 불안하게 한다.

전국에 신도시 6곳 건설공사 한창
사우디의 전체 인구 2300만 명 중 700만 명이 외국인으로 정부기관을 제외한 여러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이슬람 국가로부터 들어온 이들은 인접 아프리카의 수단, 아시아의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다. 출신국가나 민족별 평가는 모두 다르다. 수단인은 ‘계산에 밝고 정직하다’는 평판으로 회계나 집사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파키스탄인은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 이삿짐센터나 공사장에서 힘쓰는 일에 투입된다. 필리핀인은 ‘손재주가 좋아’ 전문기술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라비아반도 남단의 예멘인은 장삿술이 뛰어나서 전문 세일즈 분야에 폭넓게 진출해 있다. 인도인은 컴퓨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프리카 최빈국인 소말리아인들은 거리 청소와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고 방글라데시인은 사무실에서 차 심부름을 한다. 사회 전 부문에 걸쳐 활약하는 3국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어 보인다. 가난한 고국을 떠나 무시당하며 인내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가족들에게 약간의 돈이라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한국 교민 1000여 명은 사우디아라비아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1970~80년대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들을 통해 본 한국인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당사자이고 한반도의 남북 대치 상황을 잘 모르는 현지인들은 북쪽의 또 다른 코리아에게서 미국에 대항하는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아랍인들의 가슴속에서 숨은 반미감정은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가끔은 특별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어차피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은 외부의 누군가가 건설하고 만들어야 한다. 향후 10년간 특별한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보면 우리 기업들도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마인드로 중동 진출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세계 기업들이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으로 몰리고 있다. 이곳 사우디만 해도 인구 70만 도시를 6개 지역에 건설한다고 하며 도로·항만 공사 등으로 전 국토가 공사장이 되고 있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중동이 세계를 먹여살릴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시장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들여다보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부문이 무엇인지 연구해 적극적인 제안과 설득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석유 고갈 이후를 대비하고자 하는 사우디 정부의 속 깊은 뜻을 이해한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대기업들이 가스플랜트 공사, 항만 공사, 화학 플랜트 공사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다시금 진출하고 있는데, 또 다른 중동 붐을 일으켜 어려운 국내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류만술〈무역컨설턴트〉

아시아 아시아인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