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요인암살 안전지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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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인 군부 장성도 테러로 사망… 팔레스타인 난민촌 연관 가능성 높아

육탄전과 소음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 국회가 앵커들의 ‘웃음’과 함께 알자지라 방송 화면을 타는 요즘, 아시아는 자고로 선거철이다. 암살과 폭탄 테러로 얼룩진 레바논과 파키스탄의 대선, 쿠데타 이후 처음 치르는 태국의 총선, 선거 일정조차 정하지 못한 채 혼란 속에 묻힌 네팔의 제헌의회 선거 등. 모두 한국 못지않게 지독한 선거 몸살을 앓고 있다. 이중 ‘중증 환자’로 꼽을 만한 레바논을 한 번 보자. 11월 24일 에밀 라후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이래 ‘차기’를 뽑아야 할 의회는 대통령을 공석으로 두고도 지독한 대립을 보여왔다.

그러던 중 12월 14일, 이 정치권이 뜻하지 않게 한 자리에 한 마음으로 모였다. 분열된 정치권에 빗대어 흔히 ‘(레바논에서) 유일하게 통일된 몸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던 군의 고위 장성인 프랑수아 엘 하지 준장의 장례식장이었다. 하지는 12월 12일, 베이루트 시내 알바브다(Al-Baabda) 지역에서 차량 이동 중 35kg의 폭탄을 장착한 또 다른 차량과 충돌하여 폭발하면서 즉사했다.

이번엔 ‘시리아 배후론’ 잠잠
2005년 2월, 당시 총리 라피크 하리리가 암살된 이래 이어진 정치인 연쇄 암살 정국에서 라피크의 아들, 사드 하리리가 주도하는 여권 동맹 ‘14 March’는 ‘시리아 배후론’을 꺼내들곤 했다. 미국 등 그들의 뒷심 ‘외세’도 마찬가지였다. 이 배후론은 암살된 이들이 시리아에 비판적이었다는 정황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암살에서는 이 시리아 배후론을 선뜻 들이밀기가 어려워졌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레바논군은 시리아가 레바논에 주둔하던 약 20년간(1976~2005) 시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그 시절 시리아와 ‘우호적’ 관계 없이는 불가능한 고위 장성을 지낸 하지를 단순히 반 시리아계 인물로 볼 수도 없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여전히 시리아 배후론을 꺼내들었지만, ‘시리아 배후론’을 입바르게 내뱉곤 하던 정치인 왈리드 줌블랏(Walid Jumblatt)과 그의 동료들조차 이번에는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은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게다가 레바논군은 분열된 두 정치 블록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야 정치권이 아주 최근에야 군 수장 미셸 술레이만을 대통령 후보로 찾아낸 것도 바로 군의 중립성 때문이다. 그런데 암살된 하지는 바로 이 ‘차기’ 대통령 술레이만의 뒤를 이어 군 수장 직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여, 그의 암살은 군과 정치권은 물론 내전과 이스라엘 헤즈볼라 분쟁 기운이 불쑥불쑥 솟고 있는 레바논 정국에 폭탄처럼 날아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의 암살 배경으로 권력투쟁설 등도 나돌고 있으나 나흐르 알 바레드 난민 캠프 분쟁을 떠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하지는 지난 여름 석 달 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분쟁 현장을 지휘한 작전 사령관이었다. 9월 2일 레바논 군이 캠프를 전면 장악하면서 ‘승리’를 선포했던 그 전쟁은 그러나 많은 의문과 후유증을 남기며 보복과 부메랑의 가능성 또한 남겨놓았다.

팔레스타인 캠프는 ‘또 다른 화약고’
우선, 분쟁이 일어나기 전 여권 인사 일부가 수니 근본주의 그룹 파타 알 이슬람을 ‘대 헤즈볼라(시아) 전선’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은 미국 뉴요커의 탐사보도는 물론 필자가 인터뷰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볼 때 상당한 신빙성을 지닌 ‘냄새’였다. 그리고 4만 명 난민들의 삶터를 파타 알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치고 들어가 35세 임산부를 포함한 수십 명의 민간인을 살상할 때부터 싸움은 불안한 ‘꼬리’를 예고했다. 당시 난민 캠프 주변에서 활동했던 뉴질랜드 출신 한 인권운동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만일 파타 알 이슬람이 ‘함라’나 ‘아슈라피에’ 같은 곳에 숨어 들었다면 레바논군이 그 지역에 폭탄을 퍼부었겠는가!”

두 지역은 쇼핑센터가 몰려 있거나 부유한 기독교 구역들이다(하지가 사망한 바브다를 비롯해 많은 암살 역시 이 기독교 구역에서 발생했다). 그의 질문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레바논이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상징적으로 꼬집은 대목이다.

시니오라 총리는 이따금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입 밖에 내곤 하지만, 실상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70여 개에 이르는 소위 말끔한 직업은 절대로 지닐 수 없고 의료시설 접근권도 없는 ‘찬밥 덩어리’다. 팔레스타인 캠프가 각종 무장조직들의 아지트로 쉽게 전락하는 이유도 이런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레바논 전역에 산재한 12개 팔레스타인 캠프가 레바논 내 또 다른 화약고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한편, 레바논의 과거 식민종국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15일 “월요일(17일)까지 제발 대통령을 뽑으라”고 정치권을 재촉했다. 그러나 여야가 별 이견을 보이지 않은 후보 술레이만조차 언제 그 대통령 공석에 앉을지는 17일 현재도 감감 무소식이다. 더 나아가 이제 군 장성까지 대상이 되는 암살 그림자로 레바논 정국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다. 다른 캠프를 떠돌다 최근 나흐르 알 바레드로 돌아간 팔레스타인 소년 웨흐비 아베드(18)의 메일에서도 불안한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헤즈볼라가 청소를 도와주고, 파타(FATA)가 한 가구당 1000달러씩 분배했어. 그리고 우린 우리 돈으로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해. 하지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

이유경〈국제분쟁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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