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욘의 사면상은 ‘앙코르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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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앙코르 유적, 웅대한 건축물에 섬세한 조각품 가득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앙코르 와트 전경. 연못에 비치는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앙코르 와트 전경. 연못에 비치는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세 나라-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우리에게는 공통적으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고 1970년대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길을 걸은 나라로 기억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이라든가,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를 통해 그들 삶의 한켠을 엿볼 수도 있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힌 ‘반공주의’로 인해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집권기인 1970년대 후반, 전 국토가 말 그대로 죽음의 들판이 된 사건을 다룬 ‘킬링 필드(Killing Field)’라는 영화로 어두운 기억을 드리우고 있다.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학창 시절에 단체 관람을 통해, 캄보디아 전체 인구가 800만 명이었던 당시에 처형되고 학살된 사람이 무려 200만 명이라는 사실을 접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관람 인원 100만 명을 훌쩍 넘기며, 그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권은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이념의 교육적인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었겠지만….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앙코르 유적지인 씨엠립(Siem Reap)으로 가는 길은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그리 수월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직항 노선을 타고 가면 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부분의 동남아 배낭 여행자들은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입국한다. 태국에도 방콕 에어가 운행하는 방콕-씨엠립 간 항공 노선이 있긴 하지만 독점이어서 가격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배낭 여행자들은 태국의 국경 도시인 아란야쁘라텟(Aranyaprathet, 줄여서 아란)을 거쳐 캄보디아 국경 도시인 뽀이펫(Poipet)을 지나 씨엠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뽀이펫에서 씨엠립으로 이동하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엉덩이를 아프게 하는 자동차의 덜컹거림과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욱해지는 논둑길. 우리나라 1970년대 농촌의 풍경과 흡사하다.

당시의 우주관을 표현한 ‘앙코르 와트’
앙코르 유적은 크메르 제국의 사원들로,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인류가 남긴 훌륭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아주 섬세한 조각들로 가득하다. 워낙 방대한 유적이 흩어져 있어 하루에 사원을 다 둘러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원마다 별도의 입장료가 없는 대신 통합 입장권(1일권, 3일권, 7일권)을 발행하므로 일정에 맞게 계획을 짜고 관람하는 것이 좋다. 막대한 분량상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인도 고대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를 미리 읽고 가면 좀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는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개별 사원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건축물로 표현한 것으로, ‘돌로 만든 우주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원과 달리 죽음을 상징하는 서쪽으로 입구가 나 있어 건축 목적에 대해 여러 가지로 분석하기도 한다. 크게 3층으로 되어 있고 위층으로 갈수록 면적이 조금씩 좁아진다. 1층 회랑에는 한 방향에 2가지 주제로 조각해 총 8개의 주제를 표현했는데, 정교함의 극치를 이룬다. 각 층의 외부에는 회랑이 있고, 3층 중앙과 구석에는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5개의 탑이 있다. 앙코르 와트를 오르면 지옥에서 지고의 천상 세계를 다녀오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지금은 공사 중이어서 올라갈 수 없다. 현진건의 글처럼 “화식 먹는 나 같은 속인에 그런 선연이 있을 턱이 없다”.

자연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따 프롬’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앙코르 톰(Angkor Thom)은 그 안에 여러 유적이 모여 단지를 이루고 있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무지개를 의미하는 남문을 통해 입장하는데, 내부에는 바욘(Bayon)을 비롯해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 왕 테라스, 바푸온(Baphuon), 피미아나까스(Phimeanakas) 등이 있다. 특히 앙코르의 미소로 일컫는 바욘의 사면상은 관세음보살의 얼굴이자, 그의 화신인 자야바르만 7세(Jayavvarman Ⅶ)의 얼굴이라고 여겨지는데, 현재는 54개의 탑 중 36개만 남아 있다.

앙코르 유적 중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은 따 프롬(Ta Prohm)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 레이더(Tomb Rader)’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이곳-그 덕분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안젤리나 졸리가 스태프들과 자주 들렀다는 프싸 짜(Psah Chas)의 카페 ‘레드 피아노’도 유명하며, 졸리가 캄보디아 아이를 입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은 마치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는 인상적인 사원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글처럼 거대한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사원의 기둥과 지붕을 감싸 안거나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며, 파괴와 창조라는 자연의 이중성을 볼 수 있다. 자신의 가슴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곡의 방’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이 밖에도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프놈 바켕(Phnom Bakeng),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많이 복원한 반띠아이 쌈레(Banteay Samre),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등도 놓치면 아까운 유적들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승우<한샘학원 국어·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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