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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 로고송, 내 손안에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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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빠라빠빠’ ‘곤드레만드레’ 등 3곡 채택

[문화]“올 대선 로고송, 내 손안에 있소이다“

“명박 한 번 믿어봐~ 서민경제 살릴 게~ 실천하는 2번, 명박뿐야!”(‘오빠만 믿어’ 개사)
“정동영! 정동영! 승리의 나팔을 울려라~ 다같이 소리 높여~ 정동영!”(‘빠라빠빠’ 개사)
“권영길~ 권영길~ 나는 찍어줄 거야, 민주노동당 권영길 3번 찍어줘!”(‘곤드레 만드레’ 개사)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리마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로고송이다. 경쾌하면서도 가사가 쉬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로고송을 저마다 질세라 틀어대고, 율동까지 곁들이면서 민심을 잡는 데 활용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트로트 가수 박현빈(25)의 대표곡 3곡이 모두 대선 후보들의 로고송으로 채택돼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졌다는 것. ‘오빠만 믿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명박만 믿어’로, ‘곤드레만드레’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세상을 바꾸는 권영길’로 개사해 사용했다. 또 ‘빠라빠빠’는 대통합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동시에 사용했다. 특히 ‘빠라빠빠’의 경우 2006년 월드컵 당시 응원곡으로 활용됐고 5·31 지방선거 당시에도 685명의 후보가 이 노래를 선거 로고송으로 채택했다. 유난히 박현빈의 노래는 선거와 인연이 깊은 셈이다.

장윤정 잇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은 트로트 가수지만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켠 클래식 연주자기도 하다. 사진은 박현빈이 음악인인 부모님과 합주하는 모습. <경향신문>

박현빈은 트로트 가수지만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켠 클래식 연주자기도 하다. 사진은 박현빈이 음악인인 부모님과 합주하는 모습. <경향신문>

장윤정의 뒤를 이어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박현빈은 “현재 활동곡 3곡이 전부 대선 로고송으로 사용된 것은 의외”라면서 “후보들이 선거공약으로 노래를 개사한 만큼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개사한 내용대로 실천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아무래도 트로트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고 서민음악이기 때문에 로고송으로 채택되는 것 같아요. 서민들의 표심을 얻어야 하잖아요. 더구나 제 노래의 경우엔 듣기 편하고 멜로디가 쉬워 가사를 바꾸는 작업도 수월하죠. 또 20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차원에서도 적합했을 거예요. 기분이요? 저야 제 노래를 대중에게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당연히 좋죠.”

자신의 노래가 로고송으로 쓰였다고 해서 가수나 소속사에 금전적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선거 로고송으로 쓰일 경우 저작권자인 작사·작곡자만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유권자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자신의 곡이 선거용으로 대거 활용된 만큼 박현빈에게 이번 투표는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는 “국민들에게 솔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트로트 가수지만 클래식으로 단련된 아티스트다. 악단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아버지와 라이브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켰다.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신동’ 소리까지 들었다. 현재 유학 중인 그의 형 역시 클래식을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직후 집안의 경제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당시 중학생이던 그는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레슨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형제는 성악을 선택했다. 적어도 악기 값은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현빈은 추계예술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런 그가 트로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군복무 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공군 군악대 리드 싱어로 30개월 내내 노래를 불렀어요. 한 달 평균 70~80회 공연을 했는데 주로 장군들의 오찬이나 만찬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죠. 군대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는 ‘굳세어라 금순아’ ‘갈대의 순정’ ‘전선야곡’과 같은 노래에요. 또 ‘남행열차’ ‘아파트’와 같은 노래도 자주 부르죠. 그렇게 여러 장르의 노래를 접하면서 트로트의 맛을 알게 됐어요. 제가 트로트를 부를 때만큼은 분위기가 확 좋아지더라고요. 제게 끼가 있었던 거죠.”

경쾌한 리듬·쉬운 가사로 눈길 끌어
그의 ‘뽕끼(트로트 끼)’를 가장 먼저 꿰뚫어본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다.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한 그에게 어느 날 어머니는 “대중가요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런 후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 김혜연의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등을 만든 트로트 전문 작곡가 정의송씨에게 박현빈을 데리고 갔다. 박현빈의 노래를 한 번 들은 정의송씨는 “내일부터 연습실로 나오라”고 말했고, 박현빈은 그 후 1년 6개월 이상 연습생으로 트로트를 배웠다.

“영화 ‘복면달호’ 있잖아요. 그게 꼭 제 이야기에요. 제가 ‘곤드레 만드레’로 활동할 때 그 영화를 제작한 이경규 선배님을 방송국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내 영화가 바로 네 이야기’라며 시사회에 꼭 오라고 하셨어요.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극중 차태현은 트로트 가수인 것을 창피해했지만 저는 처음부터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에요. 저는 트로트 가수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물론 성악에 대한 미련도 없고요.”

그의 주요 팬층은 30~40대 주부들이다. 보약이나 홍삼 등 몸에 좋다는 각종 보양식품을 지방까지 따라와 주고 가거나 10대 소녀들처럼 수작업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선물을 편지를 동봉해 보내는 것은 기본. 팀을 꾸려 번갈아가며 그의 공연장을 메워 열광하는가 하면 멀리서 온 10대 소녀팬들에게는 밥을 사주고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찜질방비까지 대준다. 그는 “어머니뻘 되는 분들이 제 사진으로 손톱만한 앨범을 만들거나 종이학 1000마리를 손수 접어 보내주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24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생애 첫 디너쇼도 연다. 조용필, 이미자 등 장년의 대스타들이 주로 하는 디너쇼를 20대 중반인 신세대 트로트 가수가 여는 것이다.

“첫 디너쇼이니만큼 색다른 모습을 많이 준비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19일 대선 투표에도 많이 참여해주시고요. 변함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하는 박현빈이 되겠습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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