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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이명박 진영 “역풍아 불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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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발표 국민저항 일어날 것”에 한나라 “희망사항일 뿐”

12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광화문 촛불 유세에서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12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광화문 촛불 유세에서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발표되고 나서 1시간 후인 12월 5일 12시 명동의 선거 유세장에 대통합민주신당의 거물급 정치인이 모두 나타났다. 한명숙·김근태·손학규·이해찬 선대위원장을 비롯, 오충일 대표까지 연단에 섰다.
추운 날씨였지만 이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단상에 올라가지 않은 채 길 한쪽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상임선대본부장 이강래 의원은 “검찰 수사 발표를 보지 않고 나왔다”며 “보지 않아도 뻔한 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사모의 미키 루크로 통했던 이상호 가족행복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유세 차량 위에서 진행을 맡았지만, 분위기를 이끈 것은 임종석 의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덧 1989년 전대협 의장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임 의원은 “여기에 정동영 후보를 찍어달라고 모인 것이 아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검찰을 향해 “독재시대 때 검찰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이날 명동 유세에서 20년 전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시발지였던 명동성당을 상기시켰다.

일반시민 자발적 참여는 적어
이날 대통합민주신당의 지도부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이명박 대세론을 뒤집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소개된 김근태 선대위원장은 “정치 검찰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전직 총리인 한명숙·이해찬 선대위원장의 연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명숙 위원장은 “선거운동이 아니라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지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이해찬 위원장은 “궐기해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운동권 출신인 손학규 위원장은 “선거가 아니다. 민주주의 투쟁이다. 국민들이 손들어 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검찰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무혐의’를 발표한 이날, 대통합민주신당은 20년 전 6월 항쟁의 지도부로 돌아간 듯 격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저녁 광화문 유세에서도 이 분위기는 계속됐다.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더 강화되는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대통합민주신당이 역전할 기회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듯 보였기 때문이다. 중진의원인 선대위 조직위원장 배기선 의원은 양 손에 촛불을 든 채 유세 옆 벤치에 홀로 앉아 물끄러미 촛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촛불 유세였지만 이날 유세에 참여한 사람은 대부분 당원과 당직자로 보였다.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2002년 효순·미선 추모 촛불시위, 2004년 탄핵 항의 촛불 시위와는 모습이 달랐다. 유세에 참여한 윤흥렬 가족행복위원회 총괄기획본부장은 “검찰이 해도 너무 심하게 했다”며 “앞으로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 유세가 확대될 것임을 기대하는 말이었다. 한 당직자는 격한 어조로 “검찰이 미쳤다”며 “반드시 국민적 저항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로도 판세 바꾸기 힘들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오른쪽)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12월 4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오른쪽)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12월 4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들이 기대하는 선거 막판의 바람은 ‘역풍’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도 이날만큼은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신당의 당직자는 “지금 단일화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입을 닫았다.

이회창 후보 진영 역시 역풍을 기대했다. 이날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저런 식의 수사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논리적으로 대응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강 팀장은 “(검찰이) 덮으려고 하는데 덮어지겠느냐”며 “진짜 악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역풍이 불 것이라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TV토론 등의 마지막 변수가 남아 있지만 대부분 정치 전문가는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역전을 노리는 정동영·이회창 후보로서는 역풍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나라당 김해수 후보비서실 부실장은 “검찰의 발표로 모든 상황이 말끔히 해결됐지만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마지막까지 경계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나라당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허병기 특보는 “역풍은 그쪽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앞으로 (BBK 문제를 갖고) 우리로서는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역시 이명박 대세론을 뒤집을 만한 마지막 변수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TNS 이상일 이사는 “대선 막바지에 후보의 말 한 마디가 폭발력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시적인 변수는 거의 다 사라졌다”며 “BBK 사건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은 것을 보면, 검찰 발표 후 급반등이라든지 역풍이 불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정치컨설팅 MIN의 박성민 대표는 “검찰의 발표에 정치적 고려와 외압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역풍이 불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범여권의 단일화 변수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이상일 이사는 “단일화의 주목도가 이미 떨어져 범여권을 모두 합쳐도 20%대를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릴 때 단일화가 파괴력을 가지지만, 40%대의 지지율을 갖고 있는 한 단일화는 판세를 바꿀 수 없다”고 내다보았다.
TV토론의 영향력은 단일화보다 더 미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상일 이사는 “TV토론은 지지하는 후보의 말을 신뢰하면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지지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며 “지난 대선의 행정수도 논쟁처럼 관심을 끌지 않는 한, 후보 각자의 공방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데 불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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