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구조조정에 반기든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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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대상으로 지정된 영구 시골의 한 우체국

폐쇄 대상으로 지정된 영구 시골의 한 우체국

비틀스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의 시골마을 위럴. 멀리 머지 강이 흐르는 마을 어귀 거리에서 폴 매카트니의 동생 마이크 매카트니가 TV 카메라 앞에 섰다. 물론 노래를 부르려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는 형 이름으로 된 성명을 대신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이곳에서 40년 이상 살아왔습니다. 이 마을에는 반드시 우체국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인들은 폴 매카트니를 부를 때 꼭 Sir(경)를 붙인다.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음악가라는 뜻이다. 가수 중 이 호칭을 받은 사람은 영국 역사를 통틀어 네 사람밖에 없다. 그런 매카트니 경이 시골 우체국 앞에서 우체국 폐쇄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오늘날 영국의 우정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우체국 폐쇄에 나서면서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항의 시위와 서명운동이 잇따르는 등 전국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부의 우체국 감축 방침은 확고하다. 로열 메일을 관장하는 무역산업부는 지난 여름 전체 우체국 1만4000여 개 중 2500개를 2009년까지 폐쇄하겠다고 의회에 정식 보고했다. 우체국 적자가 매주 400만 파운드, 한 해 2억8000만 파운드(3800억 원)에 이르러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의 기준을 하나 만들었다. 거주민의 90%가 지금 있는 우체국에서 1마일(1.6㎞) 이내 거리에 모여 산다면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주민들이 이 산 저 산에 흩어져 사는 곳이라면 우체국은 폐쇄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농어촌지역 우체국 7800여 개 3분의 1가량은 문을 닫아야 한다. 우체국 사수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우체국 감축 갈등은 비단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의 우편독점권이 없어지고 우체국이 민간과 경쟁하는 나라에서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우편배달은 여전히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지만, 우정당국으로선 독립적인 채산성을 맞춰야 한다는, 가치의 상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편의 공공성을 유럽보다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 제정한 미 우편법은 경제성을 이유로 우체국을 폐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폐쇄하려면 매우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치도록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법규는 큰 소용이 없다. 미 우정청은 대개 ‘폐쇄’가 아니라 ‘잠정 폐문’(suspended)이라는 말을 쓴다. 우체국 건물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거나, 임대기간이 끝났다거나, 우체국장이 은퇴해 대안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하지만 한 번 문을 닫으면 우체국 문이 다시 열리는 일은 좀체 없다. 2002년 2만7791개에서 2006년 2만7318개로 4년간 470여 개 우체국이 없어졌다. 지난 10월에도 아이오와 주에서만 파예트 카운티의 작은 마을 란달리아 등 11개 우체국에 대해 잠정 폐문 결정이 내려졌다. 란달리아 주민들은 “처음에는 학교가 없어지고 다음에는 상점이 없어지더니 이젠 우체국마저 없애려 한다”며 “우리에게 우체국은 외부와 연결된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이들 주민의 외침처럼 시골 우체국은 어느 나라에서든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자 버팀목이다. 우체국이 은행이고 상점이며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우체국이 없어지면 마을공동체는 붕괴 위기에 처한다. 그렇지만 효율성을 따지는 시장경제의 칼바람 앞에서 우체국의 존재는 미약하기만 하다.

우리 역시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이후 우체국 구조조정에 들어가 2005년까지 모두 249개 우체국을 폐쇄했다. 영국과 같은 주민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면(面)에 우체국이 두 개 있는 곳 등을 중심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시골분교를 폐쇄할 때와 같은 사회적 갈등은 빚어지지 않았다고 우정사업본부 최무열 사무관은 전했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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