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동과 여성 주체의 도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육아와 가사는 여성이 해야 한다고?

임인숙 외 지음 / 굿인포메이션 / 1만8000원

임인숙 외 지음 / 굿인포메이션 / 1만8000원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눈부시다. 불과 30여 년 전만 돌아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산업화와 민주화의 속도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다. 비록 일선의 세세한 대목까지 민주화를 이룩하지는 못한 상태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남아 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상당 부분 개선해야 한다. 남성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회 구성원이 육아와 가사일은 여성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쉽게 떠오르는 문제다. 당사자인 여성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악화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남성들의 ‘미인타령’이다. 미인타령이야 늘 있던 것이지만 최근에는 이것이 자본주의와 밀착되고 결속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영화, 텔레비전, 가요 등 대중문화에서는 연일 미인타령이며 남성들은 미인을 얻는 것이 마치 성공인 것처럼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사회학, 철학, 정치학, 국문학, 심리학 등 각자 전문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학자 13명이 모여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과 남성 중심주의에서 바라본 여성의 이미지와 문화를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 책을 출간했다. ‘사회 변동과 여성 주체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뭉친 13명의 여성 학자는 공통적으로 사회 구조를 파헤친다. 이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남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잘못된 사회 구조와 의식이 성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서술에서 여성이 배제되거나 왜곡된 점을 지적하고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규명할 수 있는 ‘여성사 쓰기’를 탐구한다. 제도적으로 여성사 쓰기가 안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까닭을 짚어본다. 이는 여성 주체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나아간다.

태혜숙 대구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논의한다. 태 교수가 전제로 삼는 것은 여성 노동의 개념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서 논의를 출발해 태 교수가 도달하는 결론은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대립적·위계적인 경계를 흐트러뜨려 두 영역이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스며드는 방식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최문경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의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최 교수는 남녀 역할의 이분법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김미영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유교 경전을 해석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고착되었는지 보여준다.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영화계의 대표적인 여성 학자로 꼽히는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영화의 여성상의 변화’라는 글에서 한국 영화에 나타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꼬집으며 대안적인 여성 영화의 길을 모색한다.

이밖에 여성들의 보살핌·돌봄노동이 앞으로 더 가중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글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인신매매를 통해 여성 안보의 심각성을 논의한 이신화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13명의 여성 학자는 모두 무조건 여성을 편들지 않는다. 되레 남성보다 여성을 더 혹독히 비판할 때도 있다. 성 불평등을 초래하고 그것을 개선하지 못한 원인과 책임이 여성에게도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사건건 부딪혀볼 것을 권유하거나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성 불평등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여성 스스로 ‘힘과 속도’로 무장해야만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에 당당히 맞설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BOOK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