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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검찰 “전두환·노태우때보다 더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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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삼성 등 2개의 메가톤급 사건
검찰 역사상 최대의 중압감으로

검찰이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두 사건이 향후 수년 간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판도를 규정할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이 두 사건이 동시에 불거진 것도 검찰을 당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도 검찰의 중압감이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그 폭발력은 메가톤급이다.

[커버스토리]시험대 오른 검찰 “전두환·노태우때보다 더한 압박”

서울 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사 때만큼, 아니 그 이상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력해 검찰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편안했다”고 이 검사는 회고한다. 지금은 좌고우면할 대상도 없고 결론은 오직 검찰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다. 현재의 2개 사안을 잘못 처리할 경우 검찰의 위상은 물론이고, 대한민국호의 근본적인 틀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검찰 내부를 지배하고 있다.

영어 능통한 검사 2, 3명 추가 투입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이 검찰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임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이 검찰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임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BBK 사건 수사는 이제 막판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최재경 특수1부장)은 최근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최대한 신속히 규명하기 위해 영어에 능통한 수사 검사 2, 3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수사팀의 동향을 보면 대선 전에 반드시 결론을 낸다는 것이 거의 확정적인 것 같다”며 검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인사는 대선 전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경우, 폭발적인 정치 공방에 검찰이 휘말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팀의 공식 입장은 그러나 아직 원론적인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수사팀의 김홍일 3차장검사는 지난 11월 30일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수사 결과 발표 시기나 내용·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한 것이 없으며, 수사 초기에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실체를 규명해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한 기조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검찰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의 사전 공방이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각 정파의 홍보, 심리전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검찰은 증거와 사실에 입각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그 결론을 과연 정치권에서 순순히 수용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검찰의 우울증은 그래서 심각하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지금으로서는 그 같은 ‘명쾌한 승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 측이 맺었다는 소위 이면계약서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도 아직 채 정리되지 않았다. 지난주 “적어도 도장은 위조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검찰발 기사가 흘러나오자 정치권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취임식에서 감찰 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취임식에서 감찰 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극단적인 불만을 표출하자 검찰은 “서류 종이의 진위와 문자체 확인 등 계약서 자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단계가 남아 있다”는 입장을 흘렸다. 나아가 “계약서 내용이 실행되었는지는 계좌 추적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개진하기도 했다. 최종 단계의 진실은 결국 계좌추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검찰의 고민이 배어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BBK 사건이 이 후보의 대권가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사안은 ‘주가조작 관련 여부’ 외에 두 가지가 더 있다.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한 ㈜다스의 실소유주 여부, 그리고 차명 의혹이 제기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에 대한 논란이다.
김경준씨 측은 다스와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를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주가 조작 연루 의혹과 상관없이 실소유주가 이 후보인 것으로 드러나면 그는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은 차명재산 보유와 이의 미신고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수사하는 검찰의 움직임도 단호하다. 지난 11월 30일 수사팀은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경선 당시부터 불거진 이 후보와 관련한 모든 의혹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김씨는 이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은 서울 도곡동 땅의 지분 일부를 소유하고 있고 역시 이 후보가 실제 주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다스(옛 대부기공)의 지분 48.99%를 갖고 있다.

다스는 또 이 후보의 맏형 상은씨가 46.85%를 보유 중이어서 우파 논객 지만원씨가 이들 2명의 지분이 실제로 이 후보의 것임에도 공직자 재산신고 때 누락했다며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이상은씨와 김재정씨가 주식의 과반을 소유하지 않아 누구도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의혹의 대상이 된 바 있다.

“30억 원은 홍능종묘 전 회장의 돈”

환하게 불이 켜진 서울 대검찰청 청사.

환하게 불이 켜진 서울 대검찰청 청사.

검찰은 김씨를 상대로 ㈜다스 지분의 실소유 여부와 김경준씨가 설립한 투자자문사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하게 된 경위, 이 후보나 측근인 전 서울메트로 감사 김백준씨 등으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소송 자료를 검토해보면 다스는 김경준씨와 이 후보가 LKe뱅크를 설립한 시점인 2000년 2~3월께 김씨 등을 면담한 뒤 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며 같은 해 10월과 12월 140억 원을 추가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 서울 도곡동 땅 소유관계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김 회장의 지분은 본인의 것이지만 이상은씨의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아울러 BBK의 대주주였던 e캐피탈의 대표 홍종국씨를 최근 불러 김경준씨가 검찰에 제출한 이른바 한글 ‘이면계약서’의 내용이 맞는지 조사했다. 홍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경준씨의 주장을 뒤엎는 진술로 파문을 예고했다. 홍씨는 검찰에서 “1999년 9월 BBK에 30억 원을 투자해 지분 99%를 갖게 됐고 절반을 한두 달 뒤 김씨에게 판 뒤 나머지는 2000년 2월 28일 이후 김씨에게 넘겼다”고 김씨와는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30억 원은 e캐피탈의 대주주인 이덕훈 홍능종묘 전 회장의 돈”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남대문세무소에 신고한 ‘주식 등 변동상황 명세서도 홍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이 명세서에 따르면 2000년 5월 9일 이전까지 e캐피탈이 BBK 주식의 98.36%인 60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돼 있다. “이 후보는 당시 BBK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다른 사람 명의의 주식을 팔았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한나라당 측의 주장이다.
검찰의 향후 마무리 수사 방향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흘러가고 있다. 첫째, 다스와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를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김재정씨와 다스 회계관계자의 소환, 관련 계좌 추적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다. 차명재산 보유 사실은 ‘주가조작 연루’와 직접 관련이 없다 해도 사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선거 전략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둘째, e캐피탈 홍종국 대표의 BBK 투자금이 실제 이 전 회장의 돈인지를 밝히는 작업이다. 홍씨와 이 후보, 이덕훈 전 회장, 김경준씨 등의 관계 규명이 BBK의 실소유주와 이면계약서의 진위를 밝히는 핵심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셋째, 3종의 영문계약서에 명시된 주식과 자금 흐름도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이다. 김경준씨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스가 BBK에 투자한 자금이 연관 회사 설립 과정에서 자본금으로 쓰였는지를 조사하는 대목이다. 다스 측은 최근 미국 LA 현지에서 고용한 변호인들을 통해 영문계약서의 서명들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삼성문제는 검찰 발목 잡을 수도
검찰은 김경준씨와 BBK, 옵셔널벤처스 등에서 함께 근무한 고위 임원 등을 불러 대질조사를 하면서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따지고 있다. 1차적으로는 제시된 각종 계약서의 진위를 밝히는 데 진력하면서 계좌에 나타난 돈의 흐름이 과연 계약서의 내용을 담보하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삼성비자금 사건은 검찰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 있는 사안으로 BBK에 못지않은 강도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BBK는 대선이 지나면 잊히지만 삼성문제는 향후 1~2년간 검찰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특검 과정을 통해 밝혀질 수도 있는 삼성의 ‘검찰관리’의 실체 여부다. 여기에 과거 검찰이 에버랜드 사건 등 삼성 수사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의 크기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특검이 활동하기 전 검찰 스스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월 30일 오전 검찰이 삼성증권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도 그 같은 검찰의 위기감을 반영한다. 검찰 주변에서는 “에두르지 않고 핵심으로 바로 들어간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 수사가 가져올) 경제위기론 따위는 감안하지 않는다”는 검찰 수뇌부의 입장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삼성증권을 전격 압수수색한 배경은 이 회사가 비자금 관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금융 계열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식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주식 매매 관련 자료를 보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암수수색 직후 “이 회사의 회계 관련 자료가 아니라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이 있는 자료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비자금 조성의 굵직한 맥을 찾아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BBK와 삼성 비자금 수사는 각기 다른 사건의 동일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검찰 입장에서는 그렇다.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의 파행적 흐름을 바로 잡을 수 있느냐가 검찰의 의지에 달려 있다. 두 사건 모두 검찰의 불철저한 과거 수사가 불씨가 됐다는 검찰 내 자성이 존재하고 있다. 오직 증거와 사실만으로 그 모든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 검찰의 ‘진정한 실력’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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