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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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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의원 60명 유례없는 검찰방문… 한나라선 “압력행사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국회의원 60여 명이 11월 29일 대검찰청 청사를 찾았다. 60여 명의 의원 중에는 전직 국무총리(이해찬·한명숙 의원)·장관(김근태 의원)·경기도지사(손학규 선대위원장)가 포함돼 있었다. 청사 앞에서 이해찬 선대위원장은 “검찰은 BBK 주가 조작 사건을 명백히 수사해,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수사 결과를 빨리 공개해라”고 촉구했다. 이 선대위원장은 검찰의 위상 정립을 강조하며 “다시는 헌정사에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연설을 마무리지었다. 이 말은 검찰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후보의 사건 연루 의혹을 꼭 수사해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이 국회의원 60여 명이 대검 청사를 찾은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다.

‘항의방문’서 ‘촉구방문’으로 수정
오해를 불식시키라도 하듯, 신기남 클린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신당 전체 의원단 명의로 된 수사 촉구 성명서를 낭독하기에 앞서 “우리는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검찰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의원들 사이에는 ‘항의 방문’이라는 용어를 쓰다가 ‘촉구 방문’이라고 곧 수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신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검찰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을 외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 대표단은 권재진 대검 차장을 면담하고 돌아갔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검찰 수사를 압박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상황을 두고 양당은 검찰의 수사 국면이 자신의 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선대위의 한 핵심 측근은 “검찰 수사가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채고 검찰로 몰려간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대통합신당 내부에서도 검찰 방문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율사 출신 의원들이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반대한 반면, 일반 의원들은 ‘사실 여부가 점차 드러나는 만큼 검찰이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발표하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나섰다. 결국 대검 청사를 방문하기로 결정됐다.

신당을 비난했던 한나라당도 다음날 11월 30일 맞불을 놓았다. 의원 30여 명이 대검 청사를 찾아 역시 권재진 대검 차장을 면담,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11월 말 여의도 정치권은 검찰을 사이에 두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검찰의 수사 발표를 앞두고 서로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거의 매일 한 건의 내용을 공개하며 파상 공세를 펼쳤다. 초기에 일일이 반박하던 한나라당은 11월 25일부터는 일절 무대응 전략으로 나섰다.

그동안 검찰의 철통 같은 보안으로 수사 진행상황은 보도되지 않다가, 이면 계약서의 도장이 이 후보 측이 금감원에 제출한 서류의 도장과 거의 일치한다는 검찰발(發) 추측 기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양당의 공방은 더욱 격해졌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정체불명의 검찰발 기사가 선거판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또 “검찰은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 아니라는 점과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할 것을 명확히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당은 이 후보의 연루 의혹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당에서는 서초동 검찰의 수사 진행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이 양당에 포진, 안테나를 서초동으로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에서는 대검차장 출신인 김학재 클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검사장 출신인 임내현 부정선거감시본부장이 활동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송정호 전 법무장관, 김상희 전 법무차관,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이 활약했다. 하지만 검찰의 철저한 보안 때문에 양당의 검찰 출신 인사가 그동안 검찰에게서 얻은 ‘소득’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당은 수사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연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정치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가조작 의혹사건 진실규명 대책단장인 정성호 의원은 “사실은 이미 다 나와 있다”며 “검찰은 지금 그것을 고려하는 정치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 후보를 소환해서 김경준씨와 대질신문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검찰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일단 사실 발표라도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 수사국면 아전인수 해석
신당에서는 수사 발표의 주체인 ‘최재경 부장검사-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임채진 검찰총장’ 라인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서 율사 출신 의원들은 최 부장검사의 의지가 수사 발표 내용에 결정적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수사를 책임진 부장검사가 앞으로의 추가 수사방침과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을 결정하면 검찰총장과 중앙지검장이 ‘노(No)’라고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임채진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국장 시절 공직수사처 추진과 관련해 여당 의원이나 장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법사위에서 반대 입장을 뚜렷히 밝힌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만큼 소신과 주관이 있고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명 중앙지검장은 17대 국회에서는 주로 지방에서 검사장으로 근무해, 의원들에게 단지 수사통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최 부장검사 역시 소신 있는 검사로 호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 당에서는 자당에 유리하게 ‘아전인수’ 격으로 검찰의 수사라인을 평가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클린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인 우윤근 의원은 “소신이 뚜렷한 검찰총장과 수사통인 중앙지검장으로 잘 짜인 만큼 각 당의 유불리에 상관없이 주가조작 연루 여부를 밝힐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수사해서 그 결과를 국민들 앞에 내놓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경원 대변인은 “검찰이 만약 이런 (신당의) 압박에 굴복하여 수사 결과에 소위 ‘~보인다’와 같이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발표를 한다든지, 본질과 거리가 있는 부분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발표를 한다면 한나라당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양당의 서로 다른 기대와 압박 속에 서초동 검찰은, 한 의원의 표현처럼 ‘검찰이 대통령을 사실상 결정하는 최대의 소용돌이’ 앞에 섰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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