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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비자금 수사, 검찰 명예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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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검 도입 후 소극적 기류… “명예회복 명분 뺏겼다” 불만도

삼성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삼성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사무사(思無邪)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11월 25일, 삼성의혹사건과 관련 특별수사·감찰본부(이하 특본) 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한철 검사장이 특본 팀장과 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조한 말이다. ‘사무사’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말 그대로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어떤 성역도 두지 않겠다. 스스로를 단죄하는 데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11월 26일,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사에서도 삼성사건 수사에 나선 검찰의 의지가 드러난다. 같은 날 김용철 변호사는 직접 나서 삼성비리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변호사가 공개한 방대한 내용은 하나하나가 핵폭탄 급이다. 그 자신이 ‘삼성장학생’으로 지목된 신임총장이 밝힌 ‘의지’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이다.

특본, 특수통 검사 15명 등 55명 투입
이날 오후 박 본부장은 “삼성비리의혹 관련자들의 출국금지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전격적인 조치였다.
김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있고 하루 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삼성비자금 특별검사 도입법안을 원안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을 깬 것이다. 이날 오후 김 변호사는 검찰에 출두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검찰은 “참고인도 있을 수 있지만 아주 공적인 인물…”식으로 에둘러 언급했다.

애초 특본은 검찰조직 내외부로부터 땅에 떨어진 명예회복을 위한 ‘드림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 본부장은 2005년 ‘서해유전게이트’ 특검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실무를 지휘했다. 26일 박 본부장은 ‘유전게이트’ 수사를 여러 차례 거론하며 ‘특검에서 아무것도 안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팀장급은 부장검사 3명이 맡았다. 강찬우(사시 28회) 금융조세조사1부장은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전담하고 있다. 강 부장검사는 2003년 1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파견, ‘에버랜드 편법증여사건’을 수사하면서 허태학·박노빈 등 에버랜드 경영진을 기소한 주인공이다. ‘인터폴을 통한 신병확보방안의 적법성’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한 그는 이번 삼성특본 팀장을 맡기 직전, 이례적으로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BBK 사건의 김경준씨 송환을 지휘했다.

비자금 1·2팀은 김강욱(사시 29회) 대검 중수2과장과 지익상(사시29회)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장검사가 각각 맡았다.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은 김 과장은 2004년 한탄강댐 건설과 관련해 ‘수자원공사 사장 뇌물 수뢰사건’을 수사했다. 2005년에는 ‘국가정보원불법감청사건’을 맡아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수사를 지휘했다. ‘법조 브로커 윤상림사건’과 지난해 ‘법조비리사건’도 그의 작품이다. ‘시프린스호 뇌물 수수사건(1996)’, ‘김현철·한보게이트 재수사(1997)’, ‘보광그룹 홍석현 탈세·배임 사건(1999)’ 등을 수사한 지 부장검사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옷로비’, ‘언론사 탈세사건’, ‘진승현 게이트’ 등의 사건을 맡았다. 그는 2005년에는 가수 조정현·박준하씨를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등 마약통으로도 알려졌다.

출국금지·압수수색 등 전격 실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를 통과한 삼성비자금 특별검사 도입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원안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를 통과한 삼성비자금 특별검사 도입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원안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중간 지휘를 맡은 김수남 차장검사는 임채진 신임총장과는 1991년 당시 성균관대 학생 고(故) 김귀정씨 사망사건 수사에서 호흡을 맞춘 전력이 있다. 지익상 부장검사와도 한보게이트 재수사 팀을 두 달간 같이 했다. 2002년 대선 당시는 컴퓨터수사과장을 맡으면서 인터넷명예훼손 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 후 ‘나라종금 로비의혹사건’ 수사를 맡아 한광옥·박주선·안희정씨 등 당시 민주당 핵심인사들을 구속했다. 지난해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을 수사할 당시는 김 차장검사가 법무부, 강 부장검사가 대검 홍보 관리관을 각각 맡기도 했다. 특본은 15명의 ‘특수통’ 검사를 비롯해 55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본과 김용철 변호사의 관계는 협조적이다. 박 본부장은 25일 모임에서 ‘사무사’와 함께 ‘경청’과 ‘투명’을 강조했다. 참고인 신분이지만 김 변호사에게는 검찰은 ‘친정’과 같은 조직이다. 실제 박 본부장을 제외한 특본 수사팀 검사들은 모두 김 변호사의 후배다. 심야조사도 김 변호사가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원래 새벽에 정신이 말짱해지는 스타일인데, 후배들 쉬는 시간을 고려해 늦게까지는 조사를 안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급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수사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특본의 수사는 예상보다 빨리 진척되고 있다. 29일 특본은 “(삼성이 개설한) 김용철 계좌 수십 개를 확보하여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가 진척되면서 추가로 출금조치가 취해진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본은 이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전격 실시했다.

그러나 특본 수사의 ‘한계’도 감지되고 있다. 발단은 특검 수용 기자회견 때 노 대통령의 발언. 그는 대선 축하금 문제와 함께 ‘이중삼중의 수사가 되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최고통수권자가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처럼 발언하는 것은 문제”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인 것이고 법적인 문제는 다르다”고 비판했다.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는 진화에 나섰다. 천호선 대변인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수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과잉수사로 피조사자들이 받을 불이익을 최소화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이 도입되면서 검찰 내에서 소극적인 기류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평검사는 “주로 특본을 중심으로 ‘특검 도입 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최고책임자까지 ‘삼성장학생’ 당사자로 지목된 마당에 이번 의혹 수사에서 검찰의 역할에 대해선 조직 내 이견도 있다”고 말했다. 제한된 시간도 그렇지만, 스스로 명예회복할 명분도 뺏겼다는 불만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와 관계도 언제까지나 ‘협조’적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가 29일 ‘뇌물리스트’ 자료를 제공했다는 일부 관측과 달리 김 변호사 측은 “명단은 조사가 끝나는 시점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수사를 받는 김 변호사의 신분도 현재는 참고인이지만, 스스로 밝혔듯 ‘공범관계’에 대한 수사에 이르면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도 있다.

특검 임명부터 조사까지는 최소한 한 달 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삼성비리의혹 수사의 공이 차기 정권 인수자의 몫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사건처리 방향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검찰과 정권의 성격이 결정된다. 국민들이 이 사건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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