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대’와 ‘여성’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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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 투쟁 새 장 연 중추세력, 그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버마여성동맹 활동가들이 방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 9월 시위 정국에서 드러난 여성들의 적극적 역활과 그 결과로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버마여성동맹 활동가들이 방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 9월 시위 정국에서 드러난 여성들의 적극적 역활과 그 결과로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버마의 불교사원에 들어서면 재단 턱 아래에 ‘여성금지’라는 간판이 놓여 있는 걸 이따금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감히’ 재단에 올라 기도해선 안 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지난 9월 민주화 시위의 주동자급이었던 한 승려도 별다른 답을 주지 못했다. 여성이라고 그 사원의 승려들이 주도한 시위 물결에 빠진 적도, 덜한 적도 없지만. 재단 턱은 여전히 그녀들의 자리가 아니다. 그녀들의 ‘자리’란 건 주로 이런 거였다.

내전이 진행 중인 소수 민족 주에서는 수십 년간 버마 군인들의 강간 대상이었고, ‘상대적으로’ 정치활동이 ‘활발한’ 도심에서는 ‘가지가지 이유로’ 군부의 사냥감이었다. 시위 승려에게 물을 주었다고, 군부의 강제 노동에 소송을 걸었다고, 또 활동가의 어머니·시어머니라는 이유로…. 공식 통계로만 보면 지난 8, 9월 시위정국에서 19명의 여성이 실종되었고 6명의 비구니 승려를 포함하여 131명의 여성이 구속되었다.

강제 노동에 최초로 맞선 싸운 건 여성
마 수수네이(Ma Su Su Nway, 36)는 버마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노동운동가’다. 그녀가 ‘노동운동가’로 불리는 건 강제노동에 맞서 싸운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그녀는, 그녀 자신과 이웃들을 길 닦는 공사판으로 강제 노동을 명령한 지역 정부에 맞서 그 해 9월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인 2005년 1월 소송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다시 10월 ‘피고’의 보복으로 인세인 감옥에 갇힌 그녀는 2006년 6월 6일 석방된 이후로 계속 감옥을 들락거리고 있다. 이 노동운동가는 지난 11월 13일 아침, (우연히도 26년 전 전태일 열사가 분신 사망한 바로 그날이다) 또 다른 활동가 한 명과 함께 버마 인권 상황 조사차 방문한 유엔인권대사 피네이로의 호텔 근처에서 반정부 포스터를 붙이다가 구속되었다.

9월 19일 체포된 마메미우(Ma May Mie Oo, 34)는 체포 당시 임신 3개월의 임산부였다. 현재 인세인 감옥에 갇혀 있는 그녀의 죄는 ‘메따수따’(우애, ‘loving kindness’)를 외며 행진하는 승려들에게 물을 제공한 것이다. “그곳에 들어서면 모두 생리이상이 와. 수 개월 그냥 안 나와 버리니까…” 3년 전 메솟 (타이-버마 국경 도시)에서 만났던 정치범 출신 한 여성은 ‘생리용품은 제대로 제공받았는가’라고 묻는 내게 “그래서 생리대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버마여성동맹(WLB) 활동가 뇨표셋세(Naw Paw Hset Hser)에 따르면 마메미우의 어머니는 딸의 면회를 수 차례 거부당하다가 체포 후 두 달이 지난 11월 21일에야 처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1988년 항쟁의 해에 태어난 ‘항쟁둥이’, 마너너(Ma Noe Noe, 20) 는 철학을 공부하는 여대생이다. 그녀는 88항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88세대 그룹(2005년 이래 석방된 전설적인 학생운동 지도자 민코나잉을 비롯, 88항쟁의 주역 장기수들이 석방 후 만든 조직)의 맹렬 회원이다. 그게 죄다. 10월 17일 그녀는 숙모 도우 산산틴(Daw Sann Sann Tin)과 사촌 떼떼 아웅(Thet Thet Aung)을 비롯 88세대 그룹 다른 회원들과 함께 무더기로 검거되었다.

이 밖에도 망명 활동가 아들을 둔 도 산산 틴(Daw Sann Sann Tin, 57)은 수년 동안 자식 같은 수배자들을 숨겨주고 돌봐온 게 죄가 되어 10월 19일 체포되었고, 같은 날 새벽 구속된 텟텟 아웅(Thet Thet Aung, 30)은 도망다니는 기간 어머니(57)와 시어머니(70)가 ‘인질’처럼 구금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연합공동체개발(USDA, 친 정부 민병대 역할을 해온 소위 NGO 조직) 70명에 끌려간 후 당한 고문으로 만 하루도 안돼 병원으로 실려나간 여인 틴틴에(35)도, 4개월 된 젖먹이를 ‘버려두고’ 여전히 도망 중인 여인 닐라 테인(35)도 모두 존엄과 모성을 짓밟히면서도 민주화 투쟁 대오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버마 여성들이다.

처절히 짓밟히는 모성들, 그러나 창창하다
그러고 보면 검거와 고문, 수배의 칠흑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는 이 맹렬 여성들은 여전히 미래가 창창한 30대 중반 (20대도, 40대도 있지만)인 경우가 많다. 다시 언론과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사라져 가는 땅 버마가, ‘또 다시’ 주류 언론의 지면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 날에도 그녀들은 재등장할 수 있을 만큼 젊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들 다수는 대부분 ‘88세대 그룹’ 소속으로 조직화되어 활동 중이다. 기름 값 인상 4일 만인 8월 19일 최초로 거리시위의 포문을 열었던 ‘88세대 그룹’은 어찌 보면 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혁명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낮지만 금지된 그 재단에 발 한 번 딛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여성들은 단연 88세대의 주춧돌이다. 기사 마침표를 찍기 직전, 11월 25일 랑군 시내에서 ‘여성들의 데모’가 있었다는 메일이 날라 들었다. ‘88세대’와 ‘여성’ 그들이야말로 버마 민주화 투쟁의 새로운 세대를 열 진정한 민주화 아이콘이 아닐까.

쪺기사에서 언급한 사례 일부는 버마여성동맹(www.womenofbrma.org)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저항할 용기’(Courage to Resist)를 참조했습니다.

<버마·방콕(타이)┃이유경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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