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라 불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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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부, 우체부, 집배원 중 무엇이 올바른 명칭인가요?’

우편물을 싣고 배달에 나선 집배원.

우편물을 싣고 배달에 나선 집배원.

인터넷 지식검색창에 심심찮게 오르는 질문이다. 여러 명칭이 혼용되다 보니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자칫 잘못 불렀다간 눈총을 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령 간호사를 간호원, 환경미화원을 청소원이라고 옛날식으로 불렀다간 교양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름이란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게 원칙이며, 직군 명칭 또한 종사자들이 싫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게 예의다.

‘편지 나르는 사람’에 대한 정부의 공식 명칭은 집배원(集配員)이다. 편지를 모아서(集) 배달한다(配)는 뜻에서 나온 말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꼭 이 명칭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우편배달부(郵便配達夫), 우체부(郵遞夫)를 함께 써왔고, 이 명칭에 정(情)이 담기면서 집배원들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구한말, 그러니까 1884년 우정총국 창설 직후엔 체전부(遞傳夫), 또는 체부, 분전원(分傳員), 우체군(郵遞軍)이란 말이 쓰였다. 공식 명칭이 집배원으로 바뀐 뒤에도 이 용어는 한동안 살아 있었다.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된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를 보면 “여보 누구더러 이 녀석 저 녀석 하오? 체전부는 그리 만만한 줄로 아오”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1935년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에도 “이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오고 체전부는 이따금 하도롱빛 소식을 가져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1936년 김유정의 동백꽃에는 “체부가 잘 와야 사흘에 한 번밖에 들르지 않는 것을”이라는 구절이 있어 체전부, 또는 체부가 당시 보편적 용어였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선 우편배달부와 우체부란 용어가 더 많이 쓰였다. 가수 남인수는 ‘향기품은 군사우편’에서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립문도 못가서’라고 노래했고, 문정희 시인은 ‘가을우체국’에서 ‘때론 시인보다 우체부가 좋지’라고 적었다. 영어 ‘postman’을 우체부 또는 우편배달부로 번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우체부 브레드’ ‘우편배달부 워커씨 이야기’ 같은 책이 그것이다. 집배원이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집배원들의 항의로 영화 제목이 바뀐 뒤부터는 번역하지 않고 그냥 ‘포스트맨’으로 쓰는 경향도 생겼다.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을 살해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집배원은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데 왜 나쁜 이미지를 씌우나”라는 항의가 쏟아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바꾼 것이다. 이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The postman)에 ‘포스트맨’이란 제목이 붙었고, 무라카미 류의 소설 ‘포스트맨’도 원제 그대로 소개됐다.

외국에서도 집배원 명칭이 하나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만 해도 ‘postman’ ‘mail man’ 외에 편지를 나르는 사람이란 뜻에서 ‘letter carrier’ ‘mail carrier’ 등의 용어를 혼용한다. 과거에는 남자집배원만 있어 man이라고 했으나 점차 여자 집배원이 늘면서 중성적인 carrier란 단어를 쓰는 것이다. 미국 집배원의 공식 명칭은 ‘letter carrier’, 영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선 ‘postie’라고도 한다. ‘post carrier’의 애칭인 셈이다.

한자어를 쓰는 중국에선 우체원(郵遞員), 일본에선 우편외무원 또는 외무원(外務員)이 공식 명칭이나 민간에선 대개 우편배달원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공식 명칭은 있지만, 일반에서는 정감이 느껴지는 용어를 선호하는 셈이다.

1999년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의 명칭을 바꿔볼까 싶어 공모한 적이 있다. ‘우편정보원’ ‘까치아저씨’ 등의 아이디어가 제시됐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고, 결국 집배원을 그대로 쓰기로 한 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종탁 |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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