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FTA 지고 EPA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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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협정 방식 업그레이드, ‘경제협력협정’으로 체결국 간 경제공동체 추구

"FTA (Free Trade Agreement)만으로는 차이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없다.”
유례 없는 장기 성장을 구가하는 세계 경제 최강자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국제무역협정 방식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FTA보다 경제 협력을 한층 강화한 개념인 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경제연대협정 혹은 경제협력협정)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FTA 협정이 물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무역 장벽의 제거에 관심을 둔다면 EPA는 유형 상품을 넘어 체결국 간에 폭넓은 경제 협력을 이뤄 경제공동체의 틀을 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서비스나 인적 교류, 법률적 자원 등도 FTA 협정에 포함됐지만 문화·법률 체계의 이질성 때문에 현실적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이 바로 EPA이다. 따라서 EPA 협정에는 체결국 간 거래의 원활화, 제도의 조화 등 다양한 경제영역의 제휴 내용이 포함되는 게 보통이다.

EPA는 FTA를 더욱 발전시킨 시스템이다. EPA는 기존 협정에서 다룰 수 없는 투자와 인적 자원의 이동, 정부 조달, 경쟁 정책, 중소기업의 협력, 비즈니스 환경의 정비, 국가 간 협력을 더욱 더 확대시킨다. 또한 중소기업의 육성과 농업기술의 지원이라는 협력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상대 국가의 기대에도 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에서 EPA가 새로운 대외정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EPA는 오랜 경제 침체를 겪은 후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고민해 나온 결과다. 일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무역 확대야말로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살아남은 방법임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세안 10개국과 대략적 합의

일본은 2002년 싱가포르와 EPA를 체결한 후, 멕시코, 필리핀, 태국 등과 체결했다. 향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체결을 늘려갈 예정이다. 얼마 전 아세안(ASEAN) 10개국과 EPA 협상안에 대략적으로 합의했다. 일본은 내년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멀리 인도, 스위스, 호주와도 교섭 중이다. EPA 체결을 서두르는 까닭의 이면에는 중국을 대체할 또 다른 시장을 찾으려 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해외투자를 다양화함으로써 중국의 무역 비중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 정부 또한 ‘동아시아 경제연대협정’이라는 EPA 추진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노동시장을 개방해 타국의 인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일사일품(一社一品) 즉 하나의 기술이 회사의 전부인 중소기업의 기술제휴와 이전을 장려하는 것, 타국 자본에 대한 출자제한을 푸는 것, 인허가 완화와 규제완화 등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일본 개별국가의 실리를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훨씬 더 포괄적인 차원으로 타국 간의 전략적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동아시아 경제연대협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가나 조직이 국제경쟁력(Global Competitiveness)을 전략적 목표로 삼지 못하면 생존조차 위협받는 엄중한 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중단된 한·일 FTA 대신 EPA 요구

최근 일본은 2004년 협상이 중단된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경제연대협정인 EPA로 가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 당시 협상 결렬의 근본 원인으로 양국의 경제구조가 유사한 점을 들 수 있는데, 보완적 관계에서는 주고받는 것이 확실하여 협상하기 수월하지만, 우수한 분야와 취약한 분야가 유사한 경제 구조에서는 ‘무엇을 더 좋은 조건으로 얻어내기 위해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이익과 손해의 차이로 예측한 협상 이득 역시 극히 모호할 수밖에 없다. 당시 표면적으로 드러난 협상 결렬 요인으로 자국 산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한국 측의 부품 소재, 자동차산업의 반대, 일본 농림수산업의 양허 수준 불균형 등을 들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협상 스타일의 차이다. 처음부터 협상 결과를 미리 정하고 일체의 양보와 조정 없이 결론을 요구하는 한국 측에 비해, 일본은 여러 차례의 주고받기식 과정을 거쳐 협의를 도출하려고 하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협상과 교섭을 마츠리(祭り)와 비슷하다고 비교하는데 밀고 당기는 과정이 반복된 후 점차 고조되어 최고 정점에 이르는 것을 좋아한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일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한·일 양국의 FTA 성립이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 당시 경제적 실리 때문에 추진한 것만은 아니고, FTA에 지적 산업을 포함시키는 등 양국이 진정한 협상을 해 좋은 선례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타국과 무역협상의 손익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시차가 없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미래를 지향하여 협력해야 할 존재임이 분명하다. 한·일 양국이 EPA를 체결하면 시장의 일체화를 통해 양국 기업의 국경을 넘은 경쟁과 협력을 한층 진전시켜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양국의 투자관계의 발전을 이루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EPA 체결로 인한 단점을 최소한 억제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협상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봉영아〈유비컨텐츠 대표〉 ub@ubconten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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