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따라하기 ‘무늬만 생태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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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한숙영 간사가 유속이 빨라 생물이 자리하기 힘든 청계천 상류(1공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계천에는 하루 동안 우리나라 4000여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소비된다. |김세구기자

환경운동연합 한숙영 간사가 유속이 빨라 생물이 자리하기 힘든 청계천 상류(1공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계천에는 하루 동안 우리나라 4000여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소비된다. |김세구기자

전국 지자체 하천복원 유행처럼 번져… 환경영향평가도 감시기능 미약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사는 김도영씨(26)는 요즘 집 근처 홍제천에 자꾸 눈길이 간다. 고가도로 설치 후 메말랐던 홍제천이 내년 복원되기 때문. 이달 말엔 구청이 시범적으로 물을 흘려보내, 복원 후 모습을 미리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물이 흐르는 모래내(홍제천의 다른 이름)를 상상하니 기분은 좋아요. 지금은 물이 말라 삭막하거든요. 산뜻한 산책로가 생길 테니 삶의 질도 조금 좋아질 것 같고요. 하지만 전기로 한강 물을 끌어올려 방류할 계획이라는 걸 알고 나니 찜찜하더군요. 전기료 때문에 매년 세금 수십억 원이 들 거 아닙니까. 이게 진짜 ‘생태 복원’인가 싶기도 하고요.”

청계천을 복원한 지 2년이 지났다. 그간 강물을 전기로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청계천식 하천 복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서는 하천 복원 공약 37개가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각 지역에 청계천을 닮은 하천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사전환경성검토론 제제 힘들어

서울에서는 홍제천이 대표적이다. 청계천처럼 전기로 한강 물을 끌어와 정화 후 방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달 말 시범 통수 때는 소독되지 않은 한강 물이 흐른다고 하니, 혹시 발을 담가 보고 싶은 주민이 있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다.) 상류는 여전히 복개돼 있다는 점도 청계천과 유사하다. 설계 작업이 끝난 당현천은 중랑천 물을 끌어다 쓸 계획이다.

광주광역시의 광주천도 ‘청계천식 복원’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광주천에는 전기로 끌어올린 영산강물이 하루에 4만3000t가량 흐른다. 전기료로 월 2800만 원이 나간다. 앞으로 10만t으로 늘어나면 연 유지 관리비는 12억 원에 이른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청계천을 닮은 하천’들의 미래는 청계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계천을 유지·보수하는 데 지난 2년간 137억 원이 들었다. 하루 동안 우리나라 4000여 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소비된다. 물론 생태적으로도 문제다. 한강 물을 끌어올려 방류한 탓에, 복원 하천의 상류는 유속이 빨라 생물이 살지 못한다. 환경부도 청계천에 대해 “생태하천으로는 실패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전력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 대신 지자체가 다른 대안을 찾게 할 장치는 없을까. 청계천에 앞서 복원된 양재천처럼 말이다. 여러 방법을 모색할 제도가 있기는 하다. 각 지역의 환경청은 하천의 규모가 기준(10㎞) 이상일 경우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미만일 경우 사전환경성검토만 한다. 그러나 환경부가 이러한 제도를 통해 지자체에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 외에 다른 대안을 찾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홍제3교 하류 조감도

홍제3교 하류 조감도

“치적으로 삼으려는 정치의식 팽배”

청계천이 그런 경우다. 복원한 청계천 구간는 5.8㎞로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사전환경성검토만 받았다. 그러나 한강청은 한강물 방류 문제 등 청계천의 근본적인 문제는 협의 의견에 넣지 않았다. 한강청의 한 관계자는 “(사전환경성검토는) 사업을 진행하는 주체에 검토 의견을 주는 취지의 제도”라며 “환경영향평가만큼 치밀한 의견을 강제성을 담아 전달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강제성이 있는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한다면 하천 복원에 대한 좀 더 충실한 감시가 가능하고 전력으로 물을 끌어다 쓰는 방안을 탈피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도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10월 광주천에 대해, 편의시설 등의 문제에 대해서만 ‘환경영향평가 지적사항을 어겼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뿐, 전력으로 강물을 끌어다 쓰는 방식은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다.

한편 환경부는 79개의 하천을 선정해 예산을 지원하는 대신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3월 발표한 ‘생태하천살리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청계천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대로 된 생태하천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79개 하천 중 창원시의 창원천과 남천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시범적으로 세밀하게 개입할 예정이다. 지자체와 환경단체 간 갈등을 조정하면서 생태복원 해법을 찾아가는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 않다. 창원시가 ‘낙동강 물을 끌어 오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는 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 환경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시범적으로 ‘신경 쓰는’ 하천복원사업마저 삐걱거리는 셈이다.

조명래 교수는 ‘청계천 복원의 확산과 하천복원의 정치화’라는 글을 통해 “(환경부가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하천 복원을 정치적 치적으로 삼으려는 정치 의식과 태도가 팽배해 있는 한, 자연형 하천으로의 복원은 계속 무늬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천 복원이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청계천 학습효과’ 때문에 지자체에 ‘청계천식 하천 복원’은 끊어내기 힘든 유혹이라는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 멈추는 하천’

청계천은 청계천식으로 복원한 하천들의 미래다. 서울환경연합 한숙영 간사와 청계천을 둘러보며 ‘청계천식 하천 복원’이 남긴 문제점을 되짚어봤다.

“저 뒤에 진짜 상류가 있죠.”

동아일보 앞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 한 간사가 인공폭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원하게 내리꽂히는 물은 알다시피, 한강 물을 끌어올려 정화한 물이다. 그 폭포수 뒤로 청계천의 진짜 상류가 콘크리트에 덮여 있다. 백운동천과 삼천동천이다. 청계천엔 상류의 물이 단 한 방울도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상류 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간사가 빠르게 흐르는 하천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폭포수 때문에 유속이 빨라, 동아일보 앞 상류엔 생물이 잘 살지 못하죠. 게다가 하천 바닥은 이렇게 평평하고요.” 반듯한 하천 바닥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하천 유속이 빠른 것은 직선수로인 까닭도 있다.

청계천은 ‘전기가 끊기면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환경운동연합 물하천센터 이철재 국장의 조사에 따르면, 청계천으로 하루 12만t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량은 화석연료 264만㎏를 태워야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580만㎏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청계천 복원 후 도심 온도가 내려갔다는 서울시의 홍보는,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허구에 불과하다.

“서울시에서는 1급수에서만 사는 버들치가 나타났다며 생태계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먹이사슬이 안정화되고 있느냐는 것이죠. 청계천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쥐떼 출몰은 먹이사슬의 불안정을 뜻해요.”

마침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교복차림으로 지나갔다. 수십 명의 학생은 통행에 별 어려움이 없이 뛰어다녔다. 하천변 콘크리트 바닥이 넓은 덕분이었다. “산책로가 넓은 건 사람에겐 좋지만, 생태환경엔 좋지 않죠. 양쪽에 있는 통로 중 하나를 줄여 생태공간을 지금보다 더 확보해야 해요. 실제로 청계천 2공구 중 통로가 한 쪽뿐인 곳은 생태환경이 그나마 낫지요. 통행이 덜한 3공구도 생태환경이 더 낫고요. 물론 아직 출발 단계지만요.”

그나마 이런 환경도 엄청난 유지·보수비 덕택에 만들어지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계천에는 지난 2년간 137억 원의 세금이 쓰였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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