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펀드 관심 ‘업’ 수익률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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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펀드 웃었지만 영화·드라마 펀드 마이너스 실적 속출

"실력 있는 가수는 내 손으로 직접 키운다.”

온라인 사이트 위챌이 내거는 모토다. 위챌은 일반 누리꾼을 상대로 돈을 모으면 이를 공연, 영화, 음반 등 다양한 문화상품에 투자하는 문화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아마추어 가수 지망생인 신윤미, 한음, 미노 등이 누리꾼의 큰 관심 속에 투자금 모집이 한창인 가운데 문화펀드 1호 가수 ‘디안’이 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펀드 투자를 받아 제작한 작품들. 영화 '안녕 형아', 드라마 '태왕사신기',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위부터)

펀드 투자를 받아 제작한 작품들. 영화 '안녕 형아', 드라마 '태왕사신기',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위부터)

이색펀드 시장에서 문화펀드에 쏠리는 눈길이 뜨겁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장르인데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듯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 수요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잘 하면 큰 수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기 골든브릿지자산운용 이사는 “드라마나 뮤지컬은 투자자들에게 설명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관심이 높다”며 “금융권이 참여하면 이익을 더욱 많이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변동성 심한 데다 회계처리 불투명

문화펀드 중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펀드는 이미 자리 잡은 상황. 지난해 굿모닝신한증권이 아트펀드를 처음 선보인 이후 1년 만에 아트펀드 4개가 잇따라 생겨났다.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그간 국내외 미술품 가격이 오르면서 상당한 차익을 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80억 원 규모의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 2호’ 아트펀드를 발매해 하루 만에 가입자를 모집한 박여숙 화랑의 박여숙 대표는 “투자기간은 3년, 매년 8%의 배당과 만기 시 미술품 투자수익의 15%를 추가 수익으로 지급하는 구조이지만 이미 이에 부합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최근에 아트펀드, 옥션 등이 좋은 작가들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펀드로 옮겨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영화는 물론 시청률 50%를 넘기는 드라마가 1년에도 2~3편은 나오고 해외 진출에 PPL 등 연관 수입까지 감안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것이란 게 일반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태왕사신기’의 경우 서울자산운용이 돈을 대고 김종학프로덕션이 제작해 수익 ‘대박’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드라마 펀드들의 실적을 보면 참담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듯 싶다.

마이다스자산운용에서 2005년에 출시해 운용하고 있는 ‘강제규&명필름영화투자사모특별자산 2’펀드, 이른바 ‘강제규 펀드’는 2007년 11월 5일 현재 수익률이 -25.58%다. 이밖에도 대부분 펀드가 설정일 이후 현재까지 요즘 CMA나 은행에서 주는 금리 5%조차 넘기지 못하고 있다. CJ자산운용이 운용하는 ‘CJ베리타스사모First Recoup엔터특별1’이 미술품 투자 펀드를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지만 설정일(2006년 6월) 이후 현재까지 수익률은 5.85%에 불과하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영화 산업은 흔히 쪽박 아니면 대박식으로 워낙 변동성이 심한 데다 회계 처리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사례가 있어 아직까지는 투자처로서 매력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에 펀드 자금을 대고 있는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비용 중 엑스트라 출연료를 책정하는 데 얼마나 썼냐고 묻자 제작진 측에서 ‘사람 수를 언제 일일이 세고 있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높이 사지만 합리적인 비용 처리나 회계 부문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점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2005년부터 불기 시작한 영화·드라마 펀드 열풍은 요즘 한풀 꺾인 모양새다. 펀드평가사 한국펀드평가와 모닝스타코리아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관련 펀드는 지난해까지 총 24개가 새로 생기거나 현재 운용 중이다. 하지만 올해만 놓고 볼 때 현대와이즈자산운용 등이 새로 출시했을 뿐 사정은 예년 같지 않다.

정경문 팬텀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영화, 드라마 등은 투자 위험성이 높고 그 자체로 불황에 접어들었다”며 “배우들의 높은 몸값은 물론 작가비, 연출료까지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아예 제작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동현 올리브나인 이사는 “현재 방송사로 집중되는 수익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라 해외 판권 등 전략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쉽게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제작자들은 일단 펀드 자금이 들어오면 분기별로 수익률을 공시하고 이를 위해 무리하게 제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마 펀드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엔터테인먼트업체 관계자는 “영화 제작은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금융권이 들어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작품성을 갉아먹는다”며 “돈이 아쉽긴 하지만 꼭 펀드를 이용해 제작하는 방법이 정답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와인, 미술품 등을 다루는 옥션을 준비하고 있는 쌈지길의 천호선 대표 역시 “펀드를 통해 문화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긴 안목으로 사업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분기별 실적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데 급급하다 보면 정작 사업 본연의 성장성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천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옥션 별’에는 쌈지는 물론 세아제강, 톰보이 등이 지분참여 형식으로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사모펀드란 한계도 일정 부분 작용

문화 펀드 붐이 주춤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일반인이 참여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이다. 일부 아트 펀드의 경우 최소 투자금이 2억 원일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다. 아울러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각 은행의 PB센터 등이 소수 사람들에게만 정보를 제공하고 펀드 투자에 나설 것을 권유하는 등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것이 문화 펀드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김성우 사장은 “국내 문화산업이 외형적으로 커졌다고 하나 유동성이 풍부한 자금 시장을 소화할 정도로 크지는 않아 공모 펀드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기 이사 역시 “특수목적회사(SPC) 설립 등 투자 상품의 성격 자체가 일반 펀드와 다른데 공모로 진행하면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문화 펀드는 실은 펀드화하기 어려운 상품들이 대부분”이라며 “문화 펀드 역시 레몬시장(좋은 중고차는 내놓지 않는다는 중고차 시장의 예에서 보듯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왜곡된 시장)에 비견될 정도로 정보가 부족한 시장인 것만큼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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