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공약, 5년 전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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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KYC 공동 ‘2007대선 캠페인’

무상교육·국공립시설 확충 등 내세우지만 현실은 여전히 ‘출산 기피’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참사람 어린이집’ 을 찾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참사람 어린이집’ 을 찾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취학 전 자녀를 키우고 있거나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인 20~30대 생활인들에게 보육정책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17대 대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을 공약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5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후보들은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우선 당선자인 노무현(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대통령은 유아교육법을 제정하여 유아교육을 공교육체제로 전환하고, 만 5세 이하 아동들에게 무상교육을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밖에 ‘수요자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보육 바우처제도 확대’ ‘종일반 유아교육프로그램 확대’등도 약속했다.

국·공립 확대 현실적 계획 보여줘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역시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보육예산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확대’ ‘국·공립시설 중심으로 집중 확대’ ‘시간제·전일제·방과 후 보육 등 보육형태 다양화’ ‘만 5세 이하 무상교육·보육 실시’ 등이 이 전 후보의 공약이었다.

당시 가장 유력했던 두 후보의 보육 관련 공약은 거의 동일했다. 둘 중 누가 정권을 잡든 이변이 없는 한 순조롭게 무상보육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7년에도 20~30대의 고민은 여전하다. 여전히 아이 낳기를 주저하고 있다. 믿고 맡길 데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친정어머니와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시누이에게까지 아기를 돌봐달라며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당시 민주당 후보)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지금의 대선 후보들과 유사한 교육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지난 5월 어린이날 청와대를 방문한 어린이들과 줄다리기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2001년 보육시설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5년 전 노무현 대통령(당시 민주당 후보)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지금의 대선 후보들과 유사한 교육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지난 5월 어린이날 청와대를 방문한 어린이들과 줄다리기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2001년 보육시설을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무상보육 외에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이다. 영·유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를 국·공립 보육시설로 보내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민간 어린이집과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엄선한 급식과 좋은 대우를 받는 보육교사들이 있어서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간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88%나 된다. 국·공립보육시설의 지역적 분포도 고르지 않은 상황인지라,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민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면서 싫은 내색도 잘 못 하고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그러니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주민번호만 생기면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자로 등록한다. 직장이 멀어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도 구립 어린이집을 포기하지 못해서 그 자리에 눌러앉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미 보육 아동 수 대비 최소 30% 이상으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기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몇 년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모 될 권리’ 사회적 배려 절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 2004년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해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 2004년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해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공약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후보들은 먼저 임기 내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세밀한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테면 국·공립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또 재정이 열악해 보육시설을 설치하는 일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에는 재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견이 많아 정책시행을 더디게 하는 보육 및 유아교육시설 관련 부처도 일원화해야 한다.

물론 법을 제정한다고 정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29일 국회에서 ‘2007년 7월 1일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대해 0세부터 6세까지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무상으로 접종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전액 삭감해버려 법률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국회 통과 당시 ‘민생법안이 가결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법안이었는데도 말이다.

애초 법안대로라면 정기 예방접종의 재원 분담은 ‘국고 50%, 도비 25%, 시비 25%’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소요 예산 501억 원을 담뱃값 인상분으로 전용(기금)하기로 했다가 담뱃값 인상이 좌절되면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연이어 지방자치단체도 해당 예산을 삭감하면서 결국 사업 자체가 흔들렸다.

담뱃값 인상처럼 반대급부가 뻔한 기금을 통해서 예산을 마련한다거나, 단지 ‘씀씀이의 구조조정’만으로 무상보육을 실현하고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유권자들은 어떤 변별력을 가지고 누구에게 표를 줄 수 있을까? 2002년의 경우처럼 믿거나 말거나 일뿐 또 한 번 속는 것은 아닐까.

2004년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2004년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한편 2008년부터는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면, 일하는 남편이 3일간 곁에 있어 줄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한다. 딱 3일만, 그것도 무급으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아빠들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걸까.

여성들에게 ‘일이냐 가족이냐’라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2006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아버지가 단지 230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여전히 출산과 양육을 여성의 몫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성이나 남성 모두 ‘노동할 권리’와 ‘부모 될 권리’를 지닌 양육자이자 노동자다. 부모들에게 일을 포기하지 않고 육아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뚜렷한 정책 변화와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출산과 보육은 정치인들의 주장과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만 팔을 걷어붙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믿을 것이 사람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사회안전망으로 출산과 보육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중요한 사회투자의 시작이라고 여기고 그에 맞춰 정책과 문화를 바꾸어나가야 한다.

최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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