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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문명’ 창조 주인공은 우리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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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 발해 연안 문화·출토유물… 한반도 고대문화와 밀접한 관계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 우하량 유적의 원형적석유구. 중국 요녕성 조양시 건평현에 있다. <신동호 기자>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 우하량 유적의 원형적석유구. 중국 요녕성 조양시 건평현에 있다. <신동호 기자>

인류의 문화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신석기시대로 이어지지만 인류의 문명을 말할 때는 신석기시대부터를 가리킨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한 시기다. 그것은 바로 토기의 발명이다. 토기의 발명은 인간 최초의 발명이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는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어디론가 밀려 가버리고, 시베리아·몽골 지역의 빗살무늬토기 제작인들이 들어와 신석기 시대가 시작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해 연안의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발해 연안은 넓은 의미로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동반도, 서부의 하북성 일대, 북부의 요녕성 지방, 북동부의 요동반도와 동부의 길림성, 남부의 한반도를 포함해서 일컫는다. 발해 연안은 우리나라 고조선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끊임없이 활동해오던 지역으로서 우리나라 고대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발해 연안 북부의 요서 지방과 요동반도에서는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많이 발견되었다. 요동반도 영구(營口) 금우산(金牛山) 동굴유적, 본계(本溪) 묘후산(廟後山) 동굴유적에서는 북경원인과 비교되는 곧선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대릉하(大凌河) 유역을 비롯하여 요하(遼河)·압록강·두만강 등지에서 계속 구석기시대의 인류 화석이 출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특히 평양의 용곡 동굴 유적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인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 윗층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인류 화석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대 인류의 계승·발전 과정을 잘 살필 수 있는 유적이다.

귀고리 일종 옥결 한반도서도 출토

또한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의 중국 요녕성 부신(阜新) 사해(査海)문화, 내몽골 흥륭와(興隆窪)문화와 홍산(紅山)문화가 있다. 발해 연안 북부의 심양(瀋陽) 신락(新樂)문화, 요동반도 남단의 광록도(廣錄島) 소주산(小珠山) 하층문화와 압록강 하류 후와문화가 있다. 이들 문화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옥결이 출토되고 있다. 옥결은 귀고리의 일종으로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옥기문화는 빗살무늬토기 문화와 함께 발해 연안의 대표적인 문화다. 이들 신석기시대 문화는 기원전 6000년 또는 3000년께 유행했던 동북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화다. 이 시기는 시베리아나 몽고의 신석기 문화보다 훨씬 빠른 연대다. 우리는 여기에서 ‘발해문명’의 여명을 맞이하게 된다.

발해 연안에서는 대릉하 유역의 홍산문화 유적에서 적석총과 석관묘가 출현한다. 이와 같은 돌무덤(石墓)-적석총·석곽묘·석관묘·지석묘 등-은 발해 연안에서 흔히 보이는데 특히 대릉하 유역 요녕성 능원현(凌源縣) 우하량(牛河梁)의 적석총과 석관묘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돌무덤은 청동기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요동반도와 한반도에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적석총, 석관묘 그리고 고인돌무덤(支石墓)이 유행하고 있다. 홍산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3500~3000년쯤으로 이 시기는 시베리아의 가장 이른 돌무덤의 연대보다 무려 1000년 이상이나 빠르다.

발해 연안에서는 옥룡(玉龍)이 발견되고 있다. 홍산문화의 옥룡은 발해 연안 서쪽으로 내려가 은(殷)나라에서 계승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은민족은 우리 민족과 같은 동이(東夷) 민족이다. 우리나라의 곡옥(曲玉)은 이와 같은 옥룡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진주 남강유역 청동기시대 옥방 5지구 원형적석유구. 선문대 박물관 진주남강유적 전시실에 있다. <이형구 교수>

경남 진주 남강유역 청동기시대 옥방 5지구 원형적석유구. 선문대 박물관 진주남강유적 전시실에 있다. <이형구 교수>

고대 갑골문화도 발해 연안 북부에서 발생하여 서쪽으로 내려가 은나라에서 유행하면서 갑골문자가 완성되었다. 한반도에서는 두만강유역 무산(茂山) 호곡동(虎谷洞), 남해안 일대의 변한 지구, 영산강·금강 유역의 마한 지구 등 철기시대나 삼한시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청동기의 발명은 매우 중요하여 토기의 발명 이래 인류의 가장 큰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발해 연안에서 청동기가 발견된 유적으로는 발해 연안 북부 중국 하북성 당산시(唐山市) 대성산(大城山) 유적과 내몽골 적봉(赤峯)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 유적이 있다. 대성산 유적에서는 순동으로 만든 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이 시기는 기원전 2000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하량 적석총에서 홍산문화 시기의 청동을 제련할 때 쓰는 도가니와 청동 찌꺼기(slag) 그리고 청동기 조각이 수습되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제련된 청동 덩어리의 C¹⁴측정연대는 기원전 1900년쯤으로 측정된다. 그리고 요동반도에서 청동기를 반출하는 우가촌(于家村) 적석총의 C¹⁴측정연대는 기원전 1500~1300년으로 측정된다. 한반도에서도 요동반도와 같이 적어도 기원전 15세기쯤에 이미 청동기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우리 학계에서는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를 시베리아 카라스크 문화와 연결시키고 청동기시대의 인류도 시베리아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 연안의 초기 청동기시대의 연대가 기원전 2000년쯤이고, 요동반도에서 청동기가 반출된 유적의 연대도 기원전 1500년쯤이기 때문에 기원전 12~8세기의 카라스크 문화의 연대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대릉하지역·한반도 청동기문화 유사

대릉하 유역과 요하 이서(以西) 지역에서 발견되는 은말주초(殷末周初)의 청동기는 고대 역사서에 나오는 기자(箕子)가 은이 망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자의 동주(東走) 노선과도 부합한다. 이는 고조선을 연구하는 데 주목할 만한 점이다.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에서 하가점 하층문화와 은말주초의 청동기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이른바 하가점 상층문화-필자는 남산근문화(南山根文化)라고 칭한다-를 만들어낸다. 남산근문화의 내용은 하가점 하층문화의 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은말주초의 청동기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청동기 문화가 요동지역이나 한반도지역의 청동기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에 이른바 비파형청동단검이라고 하는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석곽묘나 석관묘 그리고 고인돌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돌무덤들은 어떤 집단의 상당한 신분을 가진 수장(首長) 급의 무덤으로 추측되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의 지위를 상징하는 의례용으로 발해 연안식 청동단검을 부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릉하의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우하량 여신묘에서 소조 여신상이 출토되고 동산취(東山嘴) 제단 유적에서는 소조 임부상이 출토되었는데 여신상과 임부상은 지모신(地母神)을 숭상하는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신앙의 대상이다. 고대 사회에서 대형 적석총, 제단, 신전 그리고 신상과 옥기가 문명의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발해문명’의 탄생을 보았다.

이번 대탐사에서 우리 민족과 문화가 북방에서 온 게 아니라 발해 연안에서 우리가 ‘발해문명’을 창조한 주인공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형구|선문대 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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