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신병원의 ‘정신 나간’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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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퇴원 보호자 동의 없이는 불가능… 이해관계 얽히면 정상인도 ‘감금’ 신세

지난 5월 30일 의정부시청 앞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제24조 폐지와 불법감금한 정신과 전문의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제공>

지난 5월 30일 의정부시청 앞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제24조 폐지와 불법감금한 정신과 전문의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제공>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운동장 앞에서 사설 응급대원이 내 양쪽 팔을 붙잡았다. 무섭고 두려워서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지나가던 사람이 전화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왔지만 남편이 정신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그냥 가버렸다. 몸이 묶인 채로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그냥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2개월 정도를 정신병원에 있어야 했다. 아무런 정신병이 없었지만, 남편이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주부 김미순씨(가명)의 증언이다. 김씨가 정신병원에 끌려간 것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설 응급대를 이용해 아내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김씨는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뇌파검사나 면담을 통해서 정신병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 바로 퇴원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사는 면담 대신 그녀에게 환자복을 입히고 입원실로 밀어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병명은 ‘추후진단 예정’이었다. 정신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우선 입원부터 시킨다는 것이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약 먹기, 책 보기, 잠자기밖에 없었다. 전화를 할 수 있는 시간도 1주일에 단 한 번.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곳도 남편과 집뿐이었다. 남편이 병원에 그렇게 요청을 해놨기 때문이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퇴원 결정이 보호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안 후에 그녀는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빈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을 허락한 사람은 의사가 아닌 남편이었다.

이혼 요구하자 남편이 강제 입원

인권을 어느 곳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정신병원의 인권침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종교, 재산, 이혼 등의 문제로 배우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밥을 먹거나 TV를 보고 있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갈 수 있는 셈이다.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사건을 계기로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을 발족한 정백향 대표.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제공>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사건을 계기로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을 발족한 정백향 대표.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 제공>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이하 정피모) 정백향 대표는 종교문제로 70여 일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60대 노인 박수남씨(가명)는 부인과 재산문제로 다투고는 500여 일을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한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과 이유가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배우자나 가족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점이다. 정신보건법 24조 때문이다.

정신보건법 24조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관한 사항이다.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정신의료기관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을 때는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경우에 한하여 당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으며, 입원시 당해 보호의무자에게서 입원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해놓았다. 또 24조 6항에는 ‘보호의무자에게서 퇴원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지체없이 당해 환자를 퇴원시켜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입원과 퇴원을 모두 보호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인권위 “서류 조작 불법으로 감금”

정피모 정백향 대표는 “병원에 강제 입원하면 전화통화나 외부와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나도 아는 환자가 외출을 나갈 때 편지를 건내주면서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전해달라고 해서 퇴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정 대표는 아무리 병원에 퇴원을 요청해도 거부당했지만, 편지를 받은 변호사가 와서 퇴원을 강력하게 요청하자 하루 만에 퇴원했다.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한 후 퇴원해도 가족관계가 회복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재산은 다른 가족에게 넘어간 경우가 허다하고, 배우자가 무서워서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전 남편과 의사, 그리고 개종을 강요한 목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 대표의 소송을 통해 처음으로 환자의 퇴원 요구를 방치한 의사에게 ‘감금죄’가 인정됐다.

또 정신병원 내의 인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8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07년 상반기 정신보건시설 주요 권고사례’를 보면 정신병원의 인권침해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응급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 사설 구급차가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응급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 사설 구급차가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샤워시설로 함께 사용하는 병원 화장실에 문과 칸막이가 없어서 용변을 보거나 목욕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데, 이를 CCTV를 통해 관찰한 병원도 있다. 전화 사용 횟수를 제한하고, 전화통화 내용을 기록하는 병원도 많았고, 보호자가 없으면 욕설과 구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환자를 체벌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실에 점심도 굶긴 채 감금하기도 했다. 뇌가 손상되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자의 손가락을 비틀고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누른 사례도 있다. 한 환자의 서류에는 2년 6개월여 동안 6차례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고 나왔지만, 서류상으로만 입·퇴원을 했을 뿐 단 한 번도 병원을 나간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정신보건법에는 장기입원 환자에게는 6개월마다 시·도지사에게 계속 입원치료에 대한 심사를 청구해야 한다고 나온다. 하지만 이런 법을 교묘히 피하고 환자를 임의로 장기입원을 시키는 것이다.

정신병원에서 지켜줘야 할 환자의 인권보호가 교도소보다 못한 셈이다. 인권위의 정상훈 조사관은 “많은 정신보건시설에서 환자의 권리를 알려주지 않고, 서류를 조작해서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인권위의 한 상임위원은 “정신병원 환자 10명 중 9명이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강제 입원하고 있다”면서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백향 대표는 “2006년 단체를 만든 후에 수많은 국회의원과 사회기관을 찾아서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정신보건법 개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또 “환자의 인권을 지켜줄 수 있는 법 개정과 인권의 사각지대가 된 정신병원에 대한 감시, 관리 감독이 절실한 때다”라고 강조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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