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인도 패스웨이 국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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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싫던 학교가 여기선 즐거워”
유학생활에 만족하는 한국학생들 “학년 지체 있지만 얻는 것이 더 많아요”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③ 인도 패스웨이 국제학교

“공부는 환경이 좋다고 잘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공부는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의지는 오히려 환경이 힘든 곳일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설이 좋고 규칙이 느슨한 학교에서는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시간이 나면 엉뚱한 생각이 들고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싶죠. 규칙이 엄격한 곳일수록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기유학을 갈 때 처음에 스파르타식으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신흥 명문 기숙학교로 떠오르고 있는 패스웨이 국제학교(Pathways World School)에서 만난 박동윤군(10학년)의 말이다. 인도의 여느 국제학교와 마찬가지로 이 학교도 한국인 조기유학생 45명이 다니고 있다. 처음 인도에 유학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국제학교에서 다니다 이곳으로 온 학생도 있다.

전학생 박동윤군 학교 분위기 만족

박군은 인도의 남부지역에 있는 굿 셰퍼드 국제학교(Good Shepherd International School)에 다니다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 굿 셰퍼드는 매우 엄격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박군이 처음 굿 셰퍼드에 가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의 친구를 통해서다. 조기유학은 대부분 유학원이나 주위 사람의 소개로 가게 된다. 문제는 학교 정보에 대해 잘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박군도 그러한 케이스에 속한다.

패스웨이에는 초등부에서 고등부까지 한국인 유학생 45명이 재학하고 있다. 대부분 영어수업에 적응하기 위해 1~3년 정도 학년이 지체돼 있다.

패스웨이에는 초등부에서 고등부까지 한국인 유학생 45명이 재학하고 있다. 대부분 영어수업에 적응하기 위해 1~3년 정도 학년이 지체돼 있다.

박군은 굿 셰퍼드에서 2년 6개월을 공부했는데 한마디로 그곳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1970년대 분위기였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은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머리는 빡빡 밀어야 하고요. 또 기숙사는 한 방에 80명이 공동생활을 합니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성 같았죠.”

그렇다고 힘든 생활을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물론 인터넷 사용도 금지돼 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인도에 오면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듯이 박군도 문화적 충격이 컸다. 인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박군은 이 학교에서 싸움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생활은 힘들고 언어(영어)가 잘 안 돼 수업은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달리 탈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파르트식 학교에서 2년 반을 지내자 어느새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힘든 만큼 자신도 모르게 부쩍 성장해 있더라는 것이다. 박군은 굿 셰퍼드에서 패스웨이로 학교를 옮긴 후에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패스웨이는 굿 셰퍼드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이곳은 그야말로 자유롭습니다. 물론 남녀동석 금지도 없구요. 두발도 규제하지 않습니다. 인터넷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요. 개인 노트북으로 수업을 합니다. 굿 셰퍼드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죠.”

박군은 패스웨이에 오자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부딪쳤다. 힘들 때마다 굿 셰퍼드에서 보낸 생활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미소를 짓게 되고 도전 욕구가 일었다. 결과는 자신도 놀랄 만큼 되돌아왔다. 공부든 운동이든 자신감이 생겼다.

박군은 한국에서 학교에 다녔으면 지금쯤 대학교 1학년생이다. 인도에 유학오면서 고1이 중2가 됐다. 영어수업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전학을 오면서 또 지체가 생겼다. 박군은 현재 3년 동안의 ‘학력 지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학력 지체 현상은 인도뿐 아니라 해외 조기유학생 대부분이 겪고 있다. 이 또한 조기유학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로 꼽힌다.

고교 마치고 한국대학으로 진학 예정

박군은 지금 패스웨이에서 보내는 유학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그는 “조기유학 생활을 잘 적응하면 한국에서 고3 때 겪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외국 유명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군을 보면 공부는 결코 편한 분위기보다 오히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유복한 집안의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해 부모의 속을 썩이는가 하면 어렵고 힘든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오히려 스스로 공부해 부모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박군은 “공부는 철이 들면 자연스럽게 잘 하게 된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박군의 경우는 성공적인 조기유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박군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시설이 좋다고 조기유학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박군은 처음 스파르타식 학교에서 2년 반을 보낸 것을 밑천으로 유학생활과 공부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남학생, 여학생 기숙사가 분리되어 있으며 1실 2인이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에어컨 시설이 돼 있다. 노트북은 밤 10시에 맡기고 아침에 다시 돌려받는다.

남학생, 여학생 기숙사가 분리되어 있으며 1실 2인이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에어컨 시설이 돼 있다. 노트북은 밤 10시에 맡기고 아침에 다시 돌려받는다.

이 학교 이효근군(9학년)도 박군처럼 패스웨이에서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케이스다. 공주고 1학년을 다니던 이군은 매일 11시를 넘어 귀가하는 생활에 지쳐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먼저 교환학생으로 와 1년 동안 공부를 했다.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학교에 다녔으면 고3생인데 패스웨이에서는 아직 고1이다. 2년간의 학력 지체가 발생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군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에 있든 의지만 있다면 안 되는 게 없다”면서 “한국에서는 학교에 다니기도 싫었는데 여기서는 늘 학교생활이 활기차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공부할 계획이다. 목표로 정한 곳은 한동대 국제학과라고 한다.

조원대군(9학년)도 2년 동안의 학력 지체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 그대로 다녔으면 고3인데 지금 고1이다. 조군은 고등학교를 실업계인 인테넷 고교에 진학하겠다고 부모님께 말했다가 “무슨 공고냐”며 혼쭐이 났다. 부모님은 “그럴 바에 유학을 가라”고 해 먼저 영어 어학연수를 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조군의 부친이 인도에 출장왔다 이곳의 IT 발전 가능성에 매료돼 인도 유학을 권했다고 한다.

조군은 패스웨이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다소 불만이다. 그래서 방갈로르국제학교(TISB)로 전학갈 예정이다. 한 번 지원했는데 떨어져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TISB는 학업의 강도가 매우 강한 편으로 입학 후 1년 내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전학을 가야 한다고 한다. TISB는 6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다. 조군은 TISB를 다니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 들어간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멘토로 삼았다. 전학을 가려는 것은 그가 목표로 한 오하이오주립대에 TISB가 매년 20명 정도 입학한다는 멘토의 전언 때문이다.

“친구보다 가족이 우선이란 거 깨달아”

오아란양(10학년)은 “부모와 떨어져 있어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서 “ 방학 때 집에 가면 친구보다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말한다. 유학을 오기 전에는 방학 때도 부모보다 친구가 우선이었는데 지금은 친구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오양은 “유학을 오면서 스포츠, 아트, 만들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공부하는 과목을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강제적으로 하면 흥미를 떨어뜨리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양 역시 다른 한국 조기유학생처럼 2년 동안의 학력 지체가 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말로 대신한다.

패스웨이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조기유학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오히려 기자를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물론 인터뷰를 한 학생들은 유학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응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기유학을 통해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수첩

한국 유학생들 흡연율 높아

인도에는 아직도 왕따나 교실 붕괴가 없다. 인도는 아직도 전통적인 사제관계가 형성돼 있고 학생이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까지 이런 분위기였지만 1990년대 이후 이른바 ‘교실 붕괴’를 겪으면서 지금은 전통적인 사제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교실에서는 수업 중에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갔다하면서 떠들어댄다. 교사는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하소연할 정도다. 공부하려는 학생들조차 떠드는 학생들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러한 실상 때문에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교육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패스웨이에서 가장 큰 고민은 한국 학생들의 흡연이라고 한다. 인도 학생들은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외국 유학생의 경우 유독 한국 학생들의 흡연율이 높다. 기숙사의 사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학생들의 흡연으로 난감해했다. 한두 번 흡연을 하다 걸려 문제를 삼기도 하지만 이들을 제재하는 데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퇴교 조치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아직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상담실에 정신과 의사를 두고 있다. 상담실에 근무하는 타룬 이스라니는 “한국 학생들도 자주 상담을 하러 온다”면서 “주로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부적응 문제, 향수병, 영어 스트레스 등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여학생은 영어 스트레스가 심해 자주 찾아오는데,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학생은 귀국하는 게 바람직한데 한국의 부모님이 허락을 하지 않아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욕심을 앞세워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자녀의 앞길을 망칠 수도 있다. ‘자녀는 결코 부모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델리(인도)|최효찬<객원기자·자녀경영연구소장>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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