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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만큼 못 받지 않나” 불신 없애줘야

평균 수준의 소득으로 살림을 꾸리는 가장들이 지난 7월 20일 KYC 사무실에 모여 국민연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들은 더러 “내고 싶지 않다. 강제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간의 연대’ ‘공적 부조를 통한 사회보장’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참석자들은 “낸 만큼 받는 (손해 안 보는) 연금”이라는 구호 대신 “국민연금에 대해 솔직히 알리고, 그 사회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이를 운용하는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증권회사에서 주식컨설팅을 하고 있는 한 참석자는 “100조~200조 원의 자산을 관리할 전문가는 물론 시스템도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이 키워드 카드에 적어낸 국민연금 정책 방향.

참석자들이 키워드 카드에 적어낸 국민연금 정책 방향.

참석자
강우석 ▶ 남·31·재정컨설팅·경기 안양
김남준(가명) ▶ 남·36·펀드매니저·서울 동대문
이원진(가명) ▶ 남·38·대기업 기획실·서울 관악구
송경수▶ 남·25·주식컨설팅·서울 관악구
하준태 ▶ 남·34·비영리단체·경기 부천

김남준: 오기 전에 직장 상사에게 국민연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비자발적으로 사회봉사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뭐”라고 대답하더라. 국민연금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강우석

강우석

하준태: 말씀하신 것처럼 ‘강제적 사회봉사’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정부가 무조건 “약간만 손해봐라, 그러면 좋은 제도로 바꿔주겠다”고만 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본다. 즉 국민연금의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간의 연대’와 ‘공적 부조를 통한 사회보장’의 성격은 부각시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는 거다. 정부가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사실 국민연금의 성격은 이러한데 지난 정권들이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사회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김남준: 이 자리 오기 전까지는 직장생활 10년 동안 국민연금을 냈는데 ‘공적 부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것을 빼앗긴다고만 생각했다.

강우석: 부를 배분한다는 측면에서는 (국민연금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소위 ‘있는 사람’들한테는 국민연금이 필요없지 않은가. 하지만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노년층에 부를 분배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아닌가. 돈을 거둬들이는 창구를 다각화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기부금을 받는 건 어떨지.

하준태: 기부를 할까? 저소득층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게 아닌데. “국민연금의 성격이 이러하니 나중에는 (저소득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송경수

송경수

송경수: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보험료를 더 내서, 돈 없는 사람도 아플 때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보험 아닌가. 국민연금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내가 대통령이라도 어디부터 칼을 대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낚시를 하다가 낚싯줄이 엉키면 결국 줄을 끊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줄을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김남준: 여기 모인 우리는 국민연금의 저소득층 생존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부 홍보물을 보면 ‘낸 만큼 받는다는 것’과 ‘세대 간 서로 보장한다’는 개념만 나와 있지, ‘저소득층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은 없다. ‘낸 만큼 받아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 여론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다.

이원진: 국민연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겠다고는 말한다. 그런데 유시민 전 장관이 장관시절 방송에서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국민연금 개정은 부결되고, 기초연금법만 통과했을 때,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미끼로 던진 것만 물어서 더 죽겠다, 돈 더 나가게 생겼다”고 말하더라.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에는 최후의 보루인데 그걸 미끼라고 표현하니 어이가 없었다.

하준태: “낸 만큼 못 받는 것 아닐까” “고갈되면 폐지되는 것 아니냐”고 여기는 사람들의 불신을 없애줘야 한다.

강우석: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국민연금이 이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는 현실이 영업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국민연금이 당신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제가 설계해드리는 상품에 가입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영업하며 먹고살고 있다. 저도 이거(보험상품)로 노후를 대비하고….

하준태

하준태

송경수: 5~6년 전에 사회보험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국민연금에 대해서 물었더니, ‘무조건 망할 것’이라고 하더라.

사회(최융선) : 현재의 30~50대는 사적으로는 부모님을 부양하고, 공적으로는 연금을 통해 앞 세대를 부양하는 셈이기 때문에 이중부담을 안는 거다. 현재 노인들은 1년만 연금을 납입하시더라도 평생 보장받는 것이다.

조수용: 정부 관계자들이 소극적이라서 국민연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걸 망설인다던데.

김남준: 여러분이 내는 돈의 일부를 제가 직접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웃음). 겪어 보니까,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자산을 운용할 전문가 집단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난 잘릴 텐데(웃음)…. 주식에 투자하면 위험하고 망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이익을 내면 다행이지만 망하면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2000년 이후에 금융상품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부동산이나 정기예금 말고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었다. 해외에서 투자를 운용하기 위한 여건이 마련되지도 않았고 전문가도 없었기 때문이다.

송경수: 국민연금이 고령화시대를 대비한 대책이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계층 간의 격차나 갈등이 앞으로 더욱 더 커질 것 같은데 국민연금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을 못할 것 같다.

하준태: 국민연금을 굳이 노동자와 기업이 반반씩 내야 하나? 기업이 좀 더 내면 안 되나?

이원진: 단체협약 한 번 하면 되죠(웃음).

김남준: 우리나라가 아직 법인세율이 낮을 텐데. (다른 참석자들: 굉장히 낮죠) 지금 유럽은 저성장 국면이라 법인세를 낮추고 사회보장을 축소한다지만 우리는 아직 지금의 유럽처럼 성장하지 못한 상태 아닌가. 연소득 3만 달러로 가는 단계에서는 법인세를 강화하고 소득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사회보장 못하는 거 아닌가. 왜곡된 시선으로 “우리보다 더 잘 사는 애들이 저러는데 우리는 왜 더 뜯어가려고 하냐”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연금이 고갈된다는 ‘위협’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때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금리만 바꿔도 다른 결론이 나온다. 솔직히 그것을 계산하는 정부 당국자들을 못 믿겠다는 게 국민연금을 둘러싼 불신의 본질 아닐까.

진행·최융선〈KYC 사회개혁간사〉
<정리·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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