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500만 원으로 시작한 2평짜리 점포 ‘잉글런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랜드 문화와 성장의 비밀… 기독교 이념 바탕 급성장

<김세구 기자>

<김세구 기자>

지난 7월 23일 점심 무렵 서울시청 옆 덕수궁 길.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4~5명의 남녀가 ‘1만5000 이랜드 직원들이 국민 여러분께 호소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일부 강성노조원들과 외부세력들은 이랜드 그룹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끊임없이 매출제로화 투쟁을 하고 있다.” “이랜드 그룹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위는 이랜드 그룹 직원 1만5000명, 매장주 5000명, 입점업체 1만2000명, 납품 및 협력업체 등 9만여 명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총 30여만 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유인물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패션 관련 계열사에 근무한다는 직원 ㄱ씨는 “이랜드 계열사 직원들의 어려운 처지, 진실을 알리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세한 것은 본사 홍보팀에 문의하기 바란다”며 자신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피했다.

“우리는 특히 최근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문제와 이를 둘러싸고 증폭하고 있는 노·사 갈등에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랜드 그룹의 유통매장 계산원 노동자에 대한 해고와 부당계약, 외주전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처사다.” 26일 서울시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선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문정현 신부·홍근수 목사·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원로 31명은 ‘이랜드 사태의 올바른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사회원로들은 이랜드 그룹에게 “더 큰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치르기 전에 결자해지하는 자세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노조 측에게도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대화·협상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회사는 주요 일간지 1면에 사과광고를 게재했다. 이랜드 뉴코아 홈에버 임직원 일동 명의의 이 광고에서 사측은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하여 현재, 뉴코아와 홈에버를 중심으로 빚어지고 있는 사회적 물의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정부, 그리고 경제계에 말할 수 없는 송구스러움을 전한다”며 “폭력에는 단호하게 맞서되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미 이 문제는 단순히 뉴코아, 홈에버라는 한 기업의 노사갈등을 넘어 비정규직법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정치투쟁을 위하여 특정기업에 희생양이 되기를 강요한 것이 돼 버린 지 오래”라며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 개입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사실 지난 6월 초부터 홈에버와 뉴코아 매장에서 공동파업을 진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시민들로선 이랜드 그룹과 이들 대형할인마트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의 점거농성이 장기화되고 경찰의 봉쇄에 이은 강제해산 과정에서 이랜드 그룹은 비정규법 논란의 핵심 당사자로 떠올랐다.

보는 시각에 따라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는 이랜드 측의 주장은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강제해산 직후인 지난 23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기업, 노조와 더불어 상생하지 않으려는 기업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 땅에서 기업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며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이랜드 매출 제로’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농성이 진행되던 지난 16일, 참여연대와 여성연합, YMCA전국연맹 등 51개 시민단체는 ‘나쁜 기업’에 맞선 ‘착한 소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비정규직 대량해고 중단 및 해고자 원직 복직, 외주화 철회,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청구 취소, 사측의 성실교섭 등의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홈에버, 뉴코아 아울렛, 2001아울렛, 킴스클럽 등 ‘이랜드 불매 시민행동’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뉴코아·해태유통 인수 몸집불려

특이한 것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이랜드 그룹을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한국노총 이 위원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랜드와 같은 사용자의 악덕행위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입장이 같다”며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 법 문제가 아니라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용자의 자세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달리 경총·노동부와 함께 논란을 빚고 있는 비정규법을 만들어낸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왜 이랜드는 비정규법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을까. 노동계·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이랜드는 ‘나쁜 기업’ ‘악덕 기업’일까.

지난해 4월 말. 이랜드 그룹은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발표를 한다. 이랜드 그룹이 철수가 예정된 한국 까르푸를 1조75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 당시까지는 업계 3위인 롯데마트가 까르푸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언론들은 ‘헌트’나 ‘브렌타노’, ‘언더우드’ 등 중저가 의류 전문기업으로 알려진 이랜드가 인수합병의 잇단 성공으로 유통업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랜드의 성장사를 재조명했다. 이랜드가 유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4년 2001아웃렛을 개장하면서부터. 까르푸를 인수하기 이전에도 뉴코아(2003)와 해태유통(2005)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이랜드 그룹의 한 직원은 “사실 유통업계에서는 빅3만 살아남는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국내 경쟁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랜드 그룹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빌린 돈 500만 원으로 시작했다는 6㎡(2평)짜리 점포 ‘잉글런드’ 이야기는 이랜드의 성공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1980년, 과외 금지 조치로 학원강사를 그만둔 박성수 회장(55)이 이대 앞 패션거리 한 구석에 창업한 이 옷가게는 27년 후, 재계순위 26위의 재벌기업으로 자랐다. 2006년 이랜드 그룹의 자산총액은 5조3830억으로 불어났으며, 매출액은 2조6660억, 당기순이익은 1080억을 기록했다. 탈세나 비자금 조성, 뇌물공여 등의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오직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회사 측은 주장한다.

이랜드의 성공신화에서 또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박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바로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회사경영이다. “성경은 ‘대접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한다. 정직해서 안 된다는 생각은 오해다. 고객을 위해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움직일 때 비즈니스가 된다.” 지난 5월 29일, 리더십교육기관인 사랑리더십포럼이 개최한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받은 박 회장의 말이다. 박 회장은 경영상 난관에 부딪히면 항상 성경에서 그 답을 찾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이랜드가 운영하고 있는 2001아웃렛 매장은 일요일에는 영업하지 않는다. 보통 전체 수입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일요일 영업을 포기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랜드가 단독주주로 있는 매장에서는 이 원칙을 지켜고 있다고 박 회장은 말한다.

이랜드의 전 직원은 매일 아침 업무시작 전, 오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QT(Quite Time), 다시 말해 ‘명상시간’을 갖는다.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기도시간을 갖기도 하고, 팀 별로 주제를 정해 기도를 하기도 한다. 성경공부를 제외하고 직원 간의 사적인 모임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회사 내 파벌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랜드는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수련회를 연다. 여름에는 참여하고 싶은 사람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진행하지만, 겨울에는 전 직원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경영이나 리더십을 함양하기 위한 독서와 사내교육이 일찍부터 강조되어 온 것도 이 회사의 독특한 기업문화다.

전 직원 오전 8시 30분부터 명상시간

“(기독교)신자들은 아주 즐겁게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비신자에게는 고역이었다.” 이랜드의 아동복 회사에 다닌 바 있는 김미영씨(가명·39)의 말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김씨는 5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아마 8시부터 30분간 QT시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신자도 그 시간까지 나와서 참여해야 했다. 믿음이 강한 사람부터 초심자까지 레벨(수준)이 있었는데,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공부’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에 따르면 명절과 일요일은 쉰다고 하지만 대목을 앞두곤 휴일에도 매장에 나가 일할 때가 종종 있었다. 김씨는 “당시 월급도 많지 않았고, 교인들한테는 참아달라는 말이 통했겠지만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론 명목이 되기도 어려워 그만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랜드 측은 기독교를 내세워 박봉을 정당화했다는 비판은 적어도 지금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용범 이랜드 홍보팀 과장은 “요즘 같은 인재전쟁 시대에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복지나 처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홍보팀 13년차 직원 연봉이 6000만 원 정도이며,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신입은 월 3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이랜드의 독특한 문화가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새로 인수한 일반기업 구성원들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는 진단도 있다. 한 업계 관련자는 “이랜드가 악덕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 이랜드라는 틀에 머무를 때는 젊은 직원들의 자발적 헌신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전혀 성격이 다른 조직들에는 그런 식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이랜드가 노조문제를 과연 앞으로 풀 수 있을지는 솔직히 말해 회의적”이라며 “인수합병이 계속되면서 조직이 복잡해지니 해법을 못찾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사회복지단체에서 일하는 정영진씨(가명)는 “과거 몸담았던 직원들끼리 모여서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도 하는데 밖에서 보기에 상당히 안타깝다”며 “원래 직원들과 M&A를 통해 들어온 직원들 사이의 인식 차나 기업정신도 다를 것이고, 회사도 살아야겠지만 기존 직원의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먼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 홍보실 측은 “기독문화 때문에 융합할 수 없다는 것은 선입견”이라며 “교회를 다녀야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비기독교인에 대한 불이익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랜드 측은 “인수합병된 기업에서는 그나마 그룹사에서 진행하는 종교 관련 프로그램도 전혀 없다”며 “그런 지적들은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을 갖고 내부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랜드의 외형적 성장의 이면엔 비정규 노동자의 고통이 있었다고 비판 진영은 입을 모은다. “세금을 정직하게 낸다고 자랑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회사들은 다 탈세한다는 것인가. 법 한도 내에서 절세는 권리다. 세금은 많이 낼지 몰라도 동종업에 비해 노동자들은 급여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회사 관점에서 임금은 비용이다. 바꿔 말해 임금을 적게 주고 이익을 많이 남긴 것이다. 세금을 낼 걸로 노동자 임금을 주면 되는데, 세금 많이 내기 위해 노동자 임금을 줄이는 것이 말이 되는가.” 박경양 평화의교회 목사의 말이다. 그는 1997년도 이랜드 노조 분쟁 때부터 이랜드 그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박 목사는 “이랜드가 기독교기업이라지만 예수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천민자본주의 기업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비기독교인 불이익 없다” 주장

이랜드의 수익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침도 논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130억 십일조 논란이다. 이랜드는 2001년 ‘기업은 정직하게 이익을 내야 하며, 그 이익은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는 방침 아래 2002년부터 매년 13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양세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은 “조사 결과 120억 전후의 지속적인 지출이 확인되었으며, 일각에서 제기한 박 회장 개인의 교회헌금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비판하려면 사실관계에 기초해 주장해야 하는데 정치권처럼 ‘아니면 말고’식의 주장이 난무하면서 국면이 더 어렵게 꼬였다”고 주장했다. 양 처장 등은 사태가 불거진 뒤, 학계와 교계·시민단체로 구성한 진상조사단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이미애 이랜드 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좋은 일을 하려면 안에서부터 잘해야 한다”며 “누군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사용했다는 것인데, 내부에서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고 반문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가져가지 못하는 만큼 그쪽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여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랜드 홍보팀 김 과장은 “기금은 기업의 이익 중 일부를 출연하는 것이지만, 더 자세히 말한다면 최대주주(박 회장, 편집자 주)가 지난 5년간 배당을 포기하여 가능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비정규직 사원은 본래 일을 한 시간당 급여를 받는 ‘시간급제도’인데 홈에버 등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의 처우는 동종업계에 비교하여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비정규직이나 일반직원 몫을 빼앗아 사회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며, 가장 소외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사용되는 소중한 돈을 한 개인의 교회십일조라는 거짓설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이랜드 직원들은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