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이랜드 회장은 ‘얼굴 없는 회장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박성수 회장은 누구 …기고한 칼럼에도 사진 없어

어떻게 보면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고 다르게 보면 사업적 수완이 좋은 사람이다. 직원들도 대부분 외경심을 갖고 바라봤다. 굉장히 꼼꼼한 성격인데, 직원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뛰어넘어 자세히 지적을 해주는 스타일이다. 기독교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개인으로만 평가한다면 뛰어난 사람이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55)에 대한 전 직원 김미영씨(39·가명)의 평가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만나본 모든 사람은 전·현직, 노조·비노조를 막론하고 박 회장의 ‘남다른 능력’을 지적한다. 박 회장은 이들 전·현직 직원들 각각의 일터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를 실제로 직접 만나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이번 사태 전부터 한 번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이랜드를 창업한 이후 27년 간, 간혹 종교일간지에 칼럼은 기고했지만 인터뷰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요컨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사 인터뷰 한번도 한적 없어

과거 한 언론은 이랜드 관계자의 입을 빌려 그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아직 한 일도 없는데 남 앞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주님이 나서도 된다고 기도에 응답하면 나서겠다.”

박 회장은 대학 4학년 때인 1975년, 근육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다. 이불조차 무거워 덮을 수 없었던 그는 꼼짝없이 누워 꼬박 4년을 보내 취업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그는 그때 많은 책을 봤다. 주로 경제신문과 사회·경영서였다. 그는 간증을 통해 “당시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하지만 돌이켜놓고 생각하면 그때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랜드도 없었다. 그게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하늘이 그에게 ‘응답’을 준 때는 또 있었다. 까르푸 인수경쟁을 할 때다. 경쟁사는 회사를 상장해 현금 4조 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아침에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늘에 말했다. “무리한 인수가 과연 옳은 것인지,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맡긴다는 증거를 보여주면 저희가 하겠습니다.” 경쟁사는 1조9000억 원을 써냈고, 이랜드는 1조7000억 원을 제시했다. 2000억 원을 적게 냈는데도 이랜드가 선정됐다.

그러나 노조문제에 관한 한, 박 회장의 ‘주님’은 그에게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에 발간한 ‘이랜드 사람들’(남동우 저, 도서출판 다름원)은 이랜드 노조 태동기와 관련해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다. 이랜드의 사세가 확장되던 1989년, 초창기 멤버를 중심으로 노사협의회를 구성했다. 회사 측은 이름을 ‘가족협의회’로 하자고 했으나 거부했다. 1991년 준비기를 거쳐 1993년 결성한 당시 노조는 출범하면서 ▲무원칙하고 불공평한 인사 관행 개선 ▲10년 전 생산방식과 영업환경 등의 개선 ▲몇몇 사람의 의견이 아닌 모두의 의견과 참여라는 요구를 내세웠다. 1990년 무렵 박 회장은 전 직원회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외부 조건이 어려워진 지금, 성장을 원하는지 안정을 원하는지 알고 싶다”며 사안을 직원투표에 부쳤다. 당시 노조의 요구사항도 소박했지만 정면돌파를 시도한 박 회장의 방식도 현재의 간극에 비하면 투박했다.

노사협상 테이블에도 안 나타나

1997년과 2000년 노조파업 당시 박 회장은 본격적으로 곤욕을 치른다. 박 회장은 한 종교일간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2000년 파업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전략)정반대로 하나님은 어려운 형태의 옷을 입혀 해결의 천사를 보내시기도 한다. 2000년 여름, 가족이 한 달 일정으로 외국에 나갔다가 ‘나를 곤란케 하려 했던 어떤 사람들’(인용부호는 편집자)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파업을 피해 외국에 머물렀다는 노조 측의 주장은 위의 회고를 볼 때 사실로 보인다. 이랜드 그룹 홍보실 김용범 과장은 부연한다. “회장 집을 찾아내겠다고 방송차를 동네에 세워놓고 투쟁가요 틀고 구호를 외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동네에 민폐를 끼칠 수도 없고….”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김경욱 위원장이 감옥에서 “메시지는 간명하다. ‘박성수를 죽여라’다”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현재 외국에 머무르고 있는 박 회장의 ‘입김’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죽여라’는 표현은 심한 것이 아닐까.

이미애 노조 교선부장은 “교섭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한다면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우리가 오죽했으면 그런 최후의 발악을 했겠느냐”라며 “우리는 말로 죽일 수 있다라고 하지만 회사 측은 행동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과거 내가 일할 때도 노조와 갈등은 해결할 수 있는데도 어려운 국면까지 끌고 가는 것은 박 회장이었다. 나도 해결의 열쇠는 박 회장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이사들을 세워놓은 것은 법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다. 당연히 그래서 실질교섭이 안 되는 것이다.” 배재석 노조 지도위원의 말이다. 그는 전임 노조위원장이었다.

박 회장이 노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주장에 김 과장은 “만약 회장이 그런 노조관을 갖고 있었다면 국내에 몇 안 되는 유니온숍인 뉴코아와 강성노조로 알려진 까르푸를 인수했겠는가”라며 “오히려 회사를 타도 대상으로 생각하는 노조의 경영진에 대한 혐오증이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회장은 2000년부터 이미 법인별 대표체제를 구축하고 ‘책임경영제를 도입하여 해당 사업장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한 상태”라며 “근래에는 그룹의 미래주력사업과 해외 진출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7월 26일 저녁. 공권력 투입 6일 만에 민주노총 건물에서 노사협상을 재개했다. 이에 앞선 오후 4시.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과 이경옥 부위원장이 구속되었다. 이날 사측 교섭위원은 애초 계획되었던 오상흔 홈에버 대표이사, 최종양 뉴코아 대표이사가 아닌 홈에버 영업총괄 본부장과 뉴코아 관리담당이사가 나왔다. 협상대표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던 양측의 대화는 30분 만에 중단됐다. 박 회장은 1997년 이래 노조와 대화테이블에 나온 적이 없다. 더 늦기 전에 그의 ‘주님’이 응답할 때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