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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직군제’는 비정규직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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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등 다른 유통업체들 ‘정규직화’채택으로 돌파구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는 주부들. <경향신문>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는 주부들. <경향신문>

비정규직법을 시행한 이후 각 기업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가 하면, 이랜드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용역화 움직임에 따른 부작용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인 유통업계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서 일하고 있는 캐셔(계산원)들의 신분 변화가 비정규직법을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통업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절충하는 방법을 내놓았다.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하지만, 정규직과는 다른 급여체계나 인사체계를 적용받는 것이다. ‘정규직화’ ‘연봉직 정규직’ 등으로 불리지만 흔히 ‘분리직군제’라고 부른다.

연봉제 전환·복리후생 확대 등

신세계 이마트는 오는 8월 11일부터 약 500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파트타이머(단시간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파트타이머 사원들은 기존 시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한다. 기존 주 6일 36시간 근무는 주 5일 40시간 근무제로 변경된다. 또 설·추석 상여금 및 성과급 등은 기존 정액지급 방식에서 정규직과 동일하게 정율제로 지급한다. 성과 연동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복리후생도 확대했다. 기존에는 본인에게만 적용했던 의료비 지원은 배우자, 미혼자녀 등 직계가족에까지 확대한다. 연중휴가도 3일에서 5일로 늘어난다. 경조휴가, 경조금, 학자금지원, 종합검진, 장기근속 포상 등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을 받는다.

이랜드노동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랜드노동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성일 기자>

신세계 경영지원실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기존 파트타이머는 개인별로 약 20% 이상의 소득이 증가한 셈이다”라면서 “회사는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연간 약 150여억 원의 비용이 늘어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1인당 주 4시간씩 근무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10명당 1명꼴로 인력이 남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 신세계 측에서 발표한 것처럼 실제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다른 대형유통업체 홍보실 관계자는 “신세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해서 다른 유통업체에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면서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단어보다 ‘정규직화’가 어울릴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지난 7월 1일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홈플러스 홍보실 관계자는 “별도의 직군을 만드는 것이다”면서 “근무시간은 기존 방식대로 간다”고 설명한다. 예전처럼 주 5일 37시간 정도 근무하고, 급여는 시급제로 받는 것이다. 이마트처럼 근무시간을 정하지 않고, 캐셔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적용할 방침인 것이다. 다만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한 것이다. 이번 정규직화로 4대보험, 경조사비 지원, 휴양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설·추석 상여금을 기본급에 따라 정율제로 할지, 정액제로 할지는 논의 중이라고 한다. 홈계약은 정규직처럼 보장하지만, 근무 시간이나 급여 체계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이번 정규직화로 인해 연간 100억 원에서 2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번에 정규직화한 인원은 2600여 명이다. 관계자는 “비정규직분들이 회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하면 회사도 마이너스다”라면서 “기업의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그분들도 고용 불안 없이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2009년 시행을 2년 앞당겼다”라고 설명한다.

롯데마트도 지난 7월 1일부터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보고 있는 5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캐셔 4500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정규직화’한다고 전했다. 4대 보험과 휴가일수, 학자금 등의 복리후생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학자금 지원도 근무연수에 따라 정규직과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다만 예전에는 주 6일 39시간 일을 했는데, 이번 정규직화로 주 5일 35시간으로 작업 시간이 줄었다. 롯데마트 홍보실 관계자는 “주 5일제 근로시간을 맞추려면 4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면서 “그래서 하루 7시간으로 맞추었다. 정규직화한 캐셔는 기존처럼 시급제를 계속 적용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캐셔는 매년 1월 다시 계약하는데, 본인의 큰 과실이 없으면 대부분 계약을 연장할 것이다”고 덧붙인다.

노동계는 “또다른 족쇄일 뿐”

이런 방침에 대해 롯데마트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다”면서 “장·단점이 있는데 근무를 많이 한 분은 손해겠지만 짧게 한 분들에게는 이익인 셈이다”라고 설명한다. 또 “캐셔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라고 덧붙인다. 인터뷰 요청에 노조 관계자는 이랜드 사태와 결부시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사무처장은 분리직군제에 대해서 “차별의 고착화와 저임금을 부르는 또 하나의 비정규직일 뿐 정규직화도 고용안정을 이룩한 결과가 아니다”라면서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승진의 기회에서 정규직들과는 다른 완전한 차별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글에서 밝힌 적이 있다. 이렇게 노동계는 유통업계의 분리직군제에 대해 반발하고 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힌다. 한 유통업계 홍보팀 관계자는 “정규직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서 “하지만 실질적으로 복리부문에서 혜택을 보고 고용이 안정되니까 좋아하는 분이 많다”고 말한다.

비정규직법을 시행한 후 분리직군제가 하나의 해결책처럼 제시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절묘한 타협’이라고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가 되고 있다. 유통업계가 말하는 ‘정규직화’ 역시 분리직군제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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