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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여행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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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등대를 여행하는 법

단순히 ‘어디에 가면 어떤 등대가 있다’는 정보는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검색된다. 등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등대여행은 좀더 섬세한 이해방식을 요구한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찾아가고, 수많은 계단을 운명처럼 오르내리면서 등대 주변의 뛰어난 경관을 굽어보며 발길을 옮기면 어느 결에 등탑에 닿는다. 등탑의 문을 열고 주물 층계를 올라가면 등롱이 있다. 거기에는 바로 등대의 핵심인 등명기가 있다. 기계실을 열어보면 공기혼의 저장탱크가 웅크리고 있고 옥상 위에는 으레 안개피리라고 부르는 무적(霧笛)이 바다를 향하여 흰 목을 내밀고 있다.
- 주강현 ‘등대여행’ 중에서

등대에 관한 자질구레한 잡학과 정보들 가운데 인터넷 등에서는 떠돌지 않는 자칫 사소할 수 있으면서도 소중한 것 몇 가지만 적어보고자 한다.

등대에 가서 ‘물 한 모금 달라’고 하지 말라. 물이 풍부한 등대도 간혹 있지만, 가령 소매물도 같이 물 한 모금 나오지 않아 육지에서 물을 사다먹고 빗물 받아 목욕하는 섬에 ‘그까짓 물 한 잔’ 하면서 연간 10만여 명의 관광객이 밀어닥치면 등대원들은 대책이 없다. 등대섬 같은 무인도에서 10만 명이 종이컵 하나라도 버리고 온다면 그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 실제 그런 일이 빚어지고 있다.

등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무동이 있다면 등대원들이 사는 관사가 있다. 사무동과 등탑은 모르되 관사를 기웃거리고 심지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있다. 등대에서 어쩌다 하룻밤을 자게 되면 먹을거리는 반드시 자신이 해결하라. 행여 밥을 얻어먹는다면 그릇이라도 닦아야 한다. 한평생 밥해 먹는 데 신물난 그네들에게 그릇까지 닦게 하면 안 된다. 등대는 식당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일용한 식량은 국가 공급이 아니라 등대원들이 직접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등대에서 정해준 노선과 돌담의 경계를 지킬 일이다. 대개 돌담 너머는 낭떠러지인 경우가 태반이고, 실제로 경계를 벗어나 심하게 다친 이들도 있으니 등대에서는 만용을 부릴 일이 아니다.

등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전화 없는 등대가 없으니 주간에 전화를 하면 찾아가는 배편부터 여타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유의사항이 있으니, 대개의 등대는 세 명이 근무하나 한 명이 휴가 가고 나면 2인 근무체제로 돌아가고 있으며, 접근성이 쉬운 등대들은 오랫동안 방문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어 늘 일손이 달린단다. 외로운 등대원, 할 것도 없이 앉아만 있는 등대원,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서 찾아갈 일이다.
- 주강현 ‘등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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