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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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면 TV부터 켜요 아주 재밌거든요”

[정동초대석]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전 TV 보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재미있어서, 못 만들면 왜 저렇게 재미가 없을까 싶어서 눈여겨 보죠. 후자일 때는 저라면 어떻게 만들 텐데 하면서 시청해요. 오락프로뿐만 아니라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몰입하죠. 지금도 퇴근하면 TV부터 켜요. 러닝머신 위에서 뛰면서도 보죠. 보통 새벽 2시까지는 시청해요.”

지난 7월 20일 취임한 주철환(52) OBS 경인TV 사장은 천생 방송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TV 시청이라니 말이다. 17년간의 MBC 예능국 PD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0년 3월 교수로 전직, 7년간 재직하다가 다시 방송계로 돌아온 이유다. PD시절 그는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음악캠프’ 등 히트작을 내면서 스타 PD로 명성을 날렸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할 때도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이나 연예스타, 연예사건과 관련한 글을 꾸준히 기고함으로써 방송현장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OBS 경인TV 사장은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172명의 OBS 경인TV 식솔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영인’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좋은 방송에는 많은 시청자가 몰리고, 그것은 곧 돈과 연결돼요. 시청률이 높으면 자연스럽게 광고가 붙기 때문이죠. 칭찬 들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다시 말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그렇다면 좋은 방송, 좋은 프로그램은 어떤 것일까. 그는 “볼 땐 ‘짱’ 하지만 끝날 땐 ‘찡’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쉽게 말해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그는 “OBS 경인TV는 기존 스타를 활용하기보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고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방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전국노래자랑’ ‘퀴즈 대한민국’과 같이 시청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선보일 거예요. 물론 기존의 것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방송이 되어야죠. 또 화제성이 있어야 시청자를 흡입할 수 있어요. 형식과 내용이 각기 다른 토크쇼 등 오락프로그램을 강화할 생각이에요. 대신 드라마 편수는 기존 지상파 방송보다 적을 거예요. 지금도 드라마 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지역은 케이블을 통해 방송할 예정이에요. OBS 경인TV 시청자는 서울 시민 1000만, 경인지역 주민 1400만 명을 합해 2400만 명이 되는 거예요. 당분간 TV에 매진하겠지만 점진적으로 라디오방송도 할 예정이에요.”

TV와 함께 살아온 TV 마니아지만 무조건적인 TV옹호론자는 아니다. 그는 “TV는 항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TV는 세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이 타락하면 TV도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동시에 TV는 세상을 리드하기도 하므로 세상이 썩는 것을 방지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모내기뿐만 아니라 김매기도 필요하듯이 정말 나쁜 프로그램이 있으면 뽑아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TV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게임에 몰입하느라 시청률이 몹시 줄었다고요. 전 사람들이 지상파방송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잠도 많이 자고 가족과 대화도 나눠야 행복해지기 때문에 TV는 선별적으로 봐야 해요. TV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대신 TV는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죠.”

주 사장은 낙천적이다. 체질적으로 심각한 것을 싫어한다. ‘긍정의 힘’을 주 사장만큼 신뢰하는 이도 드물다. 상당히 감성적이기도 하다. 말투나 표정에서 얼핏 여성성이 느껴질 정도다. 남성적 진취성과 여성적 부드러움을 두루 갖춘 것이 오늘날 그가 성공하는 데 밑천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호기심도 많다. 특히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타인을 만나면 상대방의 꿈과 고민이 뭔지 상상하거나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그가 방송사 PD가 된 것도 이런 호기심이 바탕이 됐다.

“군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왔다가 정동 옛 문화방송사 앞을 지나게 됐어요. 젊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기에 다가가 보니 MBC 신입사원 모집광고였죠. 호기심이 일어 시험과목을 봤더니 국어와 영어, 상식, 작문인 거예요. 국어는 무엇보다 자신 있는 과목이었고, 영어는 제가 원주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는 동안 취미삼아 공부했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보자 작심했죠.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는 습관 덕분에 상식시험도 걱정 없었어요. 예상대로 필기시험은 무난히 통과했어요.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쓴맛을 봤죠. 그런데 이듬해 3월 MBC로부터 추가 면접시험에 응시할 의향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때 합격해 방송과 인연을 맺은 거예요.”

‘인간 주철환’을 좀 더 알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1955년 5월 경남 마산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6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던 고모가 그를 입양했다. 당시 고모는 시장에서 장사를 해 생계를 꾸리면서도 조카가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주 사장이 “나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고모”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어머니’였다. 덕분에 어린 주 사장은 누구보다 밝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고모에 맞먹는 인물이 있으니, 중·고등학교 은사이자 인생의 나침반 구실을 한 신철수 선생이다. 1968년 동북중학교 1학년 시절 주 사장이 국어시간에 작문해 제출한 시를 읽고 신 교사가 주 사장을 교내 ‘문학의 밤’에 나가게 한 일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 일은 어린 주 사장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눈을 뜨는 첫 사건이었다. 당시 신 교사는 주 사장이 속한 학급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으나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주 사장을 보듬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은 주 사장이 동북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신 교사가 이 학교로 전근하면서 무르익었다. 신 교사는 고2때 주 사장에게 국어를 가르친 데 이어 고3때는 담임이 됐다. 주 사장은 신 교사를 좇아 국어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 진학과 함께 교사 임용고시를 치러 신 교사가 있는 모교에 발령을 받았다. 국어교사로 지낸 지 3년이 채 안 됐을 때 입영통지서가 날아왔고 신 교사의 권유대로 사표를 썼다. 제대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던 신 교사는 그러나 그가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오자 고개를 내저으며 쫓아내다시피 했다. 신 교사는 주 사장이 대학 교숫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사표를 쓰라고 한 것도 그가 고교 교사 자리에 안주할까 염려해서다. 그가 당혹감과 우울감에 싸여 정동길을 걷다가 운명적으로 MBC 신입사원 공채를 본 바로 그날의 일이다.

“선생님은 제가 방송사에 입사한 것을 기뻐해주셨어요. 하지만 박사과정을 밟는 것도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죠. 방송사 입사시험 첫 해에 면접에서 낙방한 후 선생님의 뜻에 따라 국문학 박사과정에 진학했거든요. 국문과는 아니지만 결국 대학 교수까지 했으니 선생님의 혜안이 맞은 거죠. 전 인생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과 상담해요. 이번 OBS 경인TV 사장 공모에 지원할 때도 선생님의 조언과 격려를 들었지요.”

[정동초대석]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주 사장은 방송인 손석희(51) 성신여대 교수와 처남매부 사이다. 주 사장의 아내인 손영민(52) 강릉대 교수는 주 사장과 대학 동기동창. 하지만 수줍음 많고 소심하던 주 사장은 당시 미모가 출중해 고려대 퀸카로 통한 아내에게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멀리서 가슴앓이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그 동생인 손석희 교수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뿐만 아니라 1985년 서른을 넘긴 주 교수에게 “독신주의자인 노처녀 누나 때문에 걱정”이라며 두 사람을 소개했다.

“저흰 평생 주말부부로 살고 있어요. 주말부부 참 좋아요. 늘 연애하는 기분이거든요. 전 부드러운 남편,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아내도 제 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죠. 이렇게 서로 존중하면 가정이 화목할 수밖에 없어요. 처남과 방송에 대한 견해를 자주 나누냐고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상대를 인정하죠. 손 교수는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영향력 강한 국내 언론인으로 손꼽히는 거예요.”

주 사장의 지론 중 하나는 ‘지금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것.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을 만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신생 방송사인 OBS 경인TV호의 선장으로 이제 막 승선한 주 사장이 향후 이뤄낼 ‘기적’은 어떤 것일지, 그가 울리는 힘찬 뱃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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