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 & 인권의 문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슬럼, 지구를 뒤덮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괴물, 슬럼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1만5000원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1만5000원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호화아파트를 비롯해 서울에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곳곳에서 아파트를 짓는 공사도 한창이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50년 만에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도시는 전 세계를 통틀어 서울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서울에는 전망 좋고 살기 편한 주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끼고 있는 허름한 집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흙벽으로 지은 볼품없는 집들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호화로운 고층 아파트와 ‘판잣집’이라고 불리는 슬럼이 공존하고 있는 현실은 대체 어떤 연유인가.

스스로 ‘국제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환경주의자’라고 칭하는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도시 속의 슬럼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획이 낳은 괴물’이라고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슬럼은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는 농촌을 붕괴시켰고 농촌 사람들을 농촌에서 내몰았다. 갈 데 없는 농촌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몰려들면서 대도시에는 일자리가 부족해졌고 대도시의 경제성장만으로는 인구과밀을 감당하지 못했다.

저자는 전 지구적인 도시 슬럼화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은행과 IMF 주도로 1970년대 후반 시작된 제3세계 구조조정이며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독립한 제3세계를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슬럼을 탄생시킨 주범은 결국 성장을 최고 덕목으로 삼은 후기자본주의와 제3세계 농촌의 몰락을 야기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슬럼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다른 목적으로 지었던 건물을 개조한 것, 야영·노숙, 무허가 토지개척, 해적형 분양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거주자도 모두 슬럼 주민에 속한다. 그러므로 서울 시내에도 슬럼 주민은 굉장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슬럼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저자는 슬럼과 그곳 주민들이 처한 현실을 ‘똥통생활’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슬럼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시설인 물과 하수시설, 화장실 시설이 부족하다. 슬럼은 보통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위험지대에 형성돼 있다. 그러므로 자연재해로 인한 대형 참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작은 사고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그것을 복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슬럼은 도시 내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이 초래된 책임은 슬럼 주민들이 아니라 부유층과 정부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부유층과 정부는 슬럼 주민들의 불만과 저항감을 사고 있다. 부유층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슬럼지역을 이용하는 것, 정부가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슬럼지역을 불도저로 쓸어버리는 것 등은 모두 슬럼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더욱 궁핍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행위다.

저자는 슬럼에 대한 경제적 배제가 계속된다면 ‘파국적인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과 같은 양극화를 얼른 해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파국적인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유층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슬럼 주민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부유층과 정부의 결단만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연대, 투쟁해야 한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인권의 문법

넌, 인권이 뭐라고 생각하니?

[BOOK]슬럼, 지구를 뒤덮다 & 인권의 문법

많은 사람이 ‘인권’이란 단어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정의는 말하지 못한다. 대체 인권이란 무엇인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인권의 문법’이란 책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준다.

대다수 사람은 인권을 그저 ‘천부인권’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추상적인 개념의 동의일 뿐이다. 인권의 개념은 그 폭이 굉장히 넓다. 사람들은 인권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 시각,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권의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인권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깨닫는다면 서로 상충하는 부분을 상당히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조효제 교수는 우리사회에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인권에 관한 이론이 많다는 것은 인권이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대변한다. 조 교수는 그간 인권이론은 인권 전문가들이나(이론적·전문가적), 사회비평가(사회적·윤리적) 또는 실용주의자(실제의 적용) 등이 주도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각각의 인권이론은 저마다 장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어느 한 이론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론간 소통이 있어야만 인권이론을 비로소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권에 대한 연구도 그동안 법론적·이론적으로 접근해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법담론적 이야기들은 대단히 난해할 수밖에 없다. 조 교수는 어렵고 권위적 해설을 피하고 현재의 이론들을 명쾌하게 해석해 일반 독자들이 인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조 교수는 이 책에서 인권이론의 대표적 흐름인 사회주의, 페미니즘, 상대주의 이론들이 말하는 인권 비판의 내용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이론을 해석하는 데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되도록 피했다.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기존 이론들을 객관적 시점으로 설명한다. 이 같은 방식을 택한 까닭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인권에 대해 나름의 식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인권문제에 관해서라면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조 교수는 왜 굳이 인권이론을 설명하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인권이론서들이 너무 난해해 정작 인권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일반인에게는 공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권이 인간사회의 공동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왜 인권이 공동선에 기여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에 이론적으로 충실히 답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쓴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문제들에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조효제 지음 후마니타스 1만8000원|

<김익환 인턴기자 lioniks@hanmail.net>

BOOK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