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선집 ‘꿈에 씻긴 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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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인 희망을 말하다

장석주 지음 종려나무 1만5000원

장석주 지음 종려나무 1만5000원

본지의 ‘독서일기’라는 코너에서 매주 미문과 책읽기에 대한 욕심을 선물하는 장석주 시인이 시선집을 출간했다. 1975년 ‘월간문학’,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했으니 시인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이번 시선집에 수록한 작품들은 1979년 출간한 ‘햇빛사냥’부터 2002년 펴낸 ‘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까지 모두 10권의 시집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시선집의 장점은 시인의 사상과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웬만한 독자라면 ‘장석주 시선집’에서도 그 점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초기 시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참혹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뜯기고 지친 상태이며 그것을 지켜보는 시인은 고독하고 피로하다. “바람 몇 올만 흩어지는 벌판에는 언제나 밤이 왔다. 밤이 … 아직도 벌판에 있었다.”(‘벌판2’) 그리고 “내가 벌판에서 본 것들은 … 오래된 시간, 들쥐, 무덤, 폐허, 안개, 파기되는 약속, 기도,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것들이었다.”(‘벌판3’)

그의 초기시에는 눈을 부릅 뜨고 찾아야 겨우 한 오라기 뽑아낼 수 있을 만큼 희망이 귀하디 귀하다.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이 세상에 꿈은 있는가?”(‘폐허주의자의 꿈’)라고 물을 정도다. 시적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절망은 “물어뜯어도 물어뜯어도 단단했다”(‘가을病’) 절망, 어둠, 밤, 폐허, 뼈, 아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어두운 시어와 이미지들은 시적 화자의 심정이 얼마나 초췌하고 갈가리 찢긴 상태인지를 증명한다.

그러나 앞서 벌판에서 끝내 기도를 놓지 않았고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등에 부침’)며 마음을 다잡은 시인은 차츰 지난 불행한 과거를 성찰하고 이해하며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더 이상 절망과 슬픔에 괴로워하지 않고 그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여관방에서 애인을 안듯이 움직이는 슬픔만/안겠다 움직이지 않는 것 숨 쉬지/않는 것 죽어버린 것/너희는 내 애인이 아니다”(‘슬픔’)라고 손사래를 친 시인은 “움직이는 슬픔만 와라 내 넋 속에/들어와 꿈틀거리고 발버둥칠 산 슬픔만 와라”고 과감히 외친다.

30세에 이르러 시인은 철이 든 것일까. “너무 오랫동안 혼자 쓸쓸히 구석진 곳만 찾았다”고 고백하며 반성한 시인은 “철사로 동여 맨 마음은 풀어야 한다”(‘삽십세1’)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마음을 바꿔 먹은 시인은 이제 살기로 작정한다. “칼을 갈자 시퍼렇게/시퍼렇게/살자”(‘얼음2’)고 다짐한다.

“실패는 얼마나 다정한 것인가!”(‘너에게1’), “아, 가난보다도 더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없었다”(‘왜 생활은 완성되지 않는가’),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여행자’)라며 자기파괴 욕구에 사로잡혔던 지난날을 뉘우친다. 시인은 “꽃은 상처였다/상처 없는 자 꽃 피울 수 없고/꽃 피울 수 없는 자 열매 맺을 수 없다/(중략)/열매는 죽음이었다/죽음 두려워하는 자 열매 맺을 수 없고/열매 없는 자들 새로운 꽃 피울 수 없다”(‘감자를 기리는 시’)며 마침내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매우 숭고한/쓰라린 과거”(‘그믐밤’)라고 규정하며 급기야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3월’)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시인을 깨닫게 한 건 감자다. 엉뚱해 보일지 모르나 감자가 어머니와 합치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시선집에 어머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어머니가 희생, 생명성, 위안, 의지 등을 상징한다는 것을 아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사유’로 가득 하다는 점이다. 그는 수많은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를테면 정황이나 한 컷의 스틸사진과 같은 장면 묘사를 통해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시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이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게끔 이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1

CSI에서 프리즌 브레이크까지

[BOOK]장석주 시선집 ‘꿈에 씻긴 눈썹’

한때 많은 사람이 미국 드라마에 열광한 적이 있다. 지금 30대라면 어린시절 ‘원더우먼’ ‘바야바’ 등 외화를 보며 자랐을 테고 ‘6백만 불의 사나이’ ‘두 얼굴의 사나이’ ‘에어울프’ ‘맥가이버’ 등을 보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 드라마의 인기가 시들해져버렸다. 물론 그동안 미국 드라마를 전혀 방송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엑스파일’ ‘트윈픽스’ 등 몇몇 드라마는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전만큼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바닥권에서 허덕이던 미국 드라마의 주가가 얼마 전부터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케이블방송을 타고 퍼져나간 미국 드라마는 서서히 공중파방송까지 차지하고 있다. 과학수사의 참맛을 보여준 ‘CSI’에서 시작한 ‘미국드라마 열풍’은 ‘미드’(미국드라마), ‘미드족’ 등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미드족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의 이름을 우리식으로 ‘석호필‘로 개명해 부를 정도다. 굳이 미드족이 아니어도 ‘CSI’ ‘프리즌 브레이크’ ‘위기의 주부들’ ‘24’는 들어보았을 테고 미국 드라마를 모르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니 미드 열풍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른 사람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미국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자칭 미드족이라면서도 미국 드라마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 미국 드라마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재미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1’이 출간됐다. ‘미국 드라마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았다고 자신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 24편의 미국 드라마를 이야기한다.

미국 드라마의 인기는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드라마는 90% 정도가 사전제작 형식을 띤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전달은 물론, 치밀한 구성과 예기치 못한 반전, 이에 따른 재미는 모두 사전제작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사극을 빼고 우리나라 드라마는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불륜 등으로 점철돼 있으며 더욱이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당초 계획했던 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하지 않는가.

24편의 미국 드라마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는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1’은 미국 드라마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진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는 책이다. 조만간 이 책의 ‘시즌2’가 출간될 예정이다.
|문은실 지음·행간·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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