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FTA 타결 없이 북핵 해결 없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노 대통령 마음의 행로는?… 한·미 경제동맹과 북핵문제로 귀결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4월 3일 열린 ‘한미FTA민간대책위원회’ 에 참석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오른쪽)과 재계 인사들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가운데)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의 박수를 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4월 3일 열린 ‘한미FTA민간대책위원회’ 에 참석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오른쪽)과 재계 인사들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가운데)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의 박수를 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라크 파병, 원전폐기물센터, 북핵문제와 6자회담, 행정수도 이전, 부동산 정책,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용산기지 이전, 비전2030, 최근의 개헌까지 참여정부는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대로 결정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최근 한·미FTA 타결의 정권 차원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노 대통령이 엄청난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처리했던 정책들이 사실은 국민을 위한 결단과 희생이었다는 것이다. 지지층의 의사를 거스를 수밖에 없는 선택도 내려야 했는데 그것은 정치적 득실을 따졌다면 결코 갈 수 없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FTA 타결을 확고히 결심하고 밀어붙일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김현종 본부장 탁월한 지식에 탄복

“진보진영은 개방할 때마다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우리 경제는 시종일관 개방을 통해 발전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농민 다 망칠 거다 했는데 한-칠레 자유무역 가지고 농촌 망하지도 않았고 회담 잘못된 것도 없고요.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그는 FTA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손해 가는 일을 정부가 하기 쉽겠습니까? 정치적으로 손해나는 일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밖에 저는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해외순방을 다니면서도 여러 국가들에 한국과의 FTA 체결을 제안했다. 노 대통령의 구상에는 선진형 통상국가로의 진입이라는 한·미FTA 체결 이상의 큰 그림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의 한 인사는 “FTA 구상은 집권 초기부터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핵심 테마였다. 한·미FTA는 시작일 뿐이다. 중국, 캐나다와 유럽연합(EU), 궁극적으로는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전역과의 FTA도 적절한 스케줄에 따라 추진될 것이다. 대통령은 고착상태에 빠진 한국 경제의 성장이 세계무역체제로의 완벽한 통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향후 세계 주요 경제 블록 모두와 FTA 체결이 추진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한·미FTA 포석은 취임 첫해인 2003년부터 가동됐다. 그해 5월 당시 김현종 WTO 법률자문관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차관보)으로 임명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노 대통령은 김 본부장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의 탁월한 지식에 탄복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2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의 인수위 사무실에서 미팅이 있었다. 김현종 세계무역기구(WTO) 법률자문관과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대표, 어린시절을 순천에서 보낸 순천 토박이 미국인 인요한씨(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등 40~5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 그룹 6~7명이 노 당선자와 만났다. 대부분 해외 유학파인 이들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국가 원수 등 정·재계 지도자들 모임인 다보스포럼의 ‘영(young)리더 회의’ 멤버들이었다.

‘캐나다와의 협상설’ 미국에 흘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4월 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 앞에 한·미 양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4월 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 앞에 한·미 양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첫 만남에서 노 대통령은 김 본부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당시 대통령 의전을 담당했던 서갑원 열린우리당 의원은 “마치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꿰차고 있으면서 그 위에서 자유자재로 장기 말을 놓듯 세계를 보는 식견과 전문지식이 탁월했고, 특히 전략적 사고가 번뜩였다”고 기억했다.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한·미FTA 체결의 당위와 함께 그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체결하기로 최종 결심한 시기는 2005년 9월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순방을 위해 멕시코로 날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김 본부장의 FTA 전략을 듣고 실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미국시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협상에선 이니셔티브(주도권)가 중요하다. 우리가 미국에 FTA를 하자고 먼저 제안하면 주도권이 그쪽으로 넘어간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미국시장의 문을 열게 할 방법이 뭘까. 캐나다를 먼저 치는 것이다. 우리가 캐나다와 FTA를 한다는 얘기를 흘리면 미국이 달려들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무서운 저돌성을 보이는 행태는 노 대통령과 김 본부장이 국화빵처럼 닮은 특성이다. 저돌성은 그것 자체로 선악을 논할 순 없다. 파워풀한 업무 추진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독선과 맹목이라는 비난에 휩싸이기 쉬운 덕목이다.

노 대통령은 협상 기간 내내 반대론자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측근에게는 “욕을 먹더라도 이것(한·미FTA)을 추진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된다.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으로 매달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특유의 조급증이 협상전략에 영향을 미쳐 졸속으로 마무리됐다는 비판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다. 협상체결이 시한 내에 안 되면 큰일날 것처럼 조바심내는 태도를 그가 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협상 진행 중 “내가 결단을 내리겠다”는 등의 발언은 상대에게 패를 내보인 실수로 협상력 약화에 일조했다는 지적도 있다.

노 대통령의 마음의 행보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한·미동맹의 성격을 군사적 동맹에서 경제적 동맹으로 재편하겠다는 야망이 그 첫 번째다. 노 대통령은 “그것이 한 차원 높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국면”으로 인식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두 번째 마음의 행로는 대북관계에 있다. 미국을 북한과의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부시 정권의 이해관계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절묘하게 봉합시키는 관문이 한·미FTA였다는 것이다. “한·미FTA 성사 없이 북핵문제 해결은 난망하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마음의 행로였다. 그는 이런 음모적 시각을 부인하고 있지만 FTA가 대북문제 해결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