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신세계 여는 ‘세컨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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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하는 3D 가상현실에 지구촌 열광… 관련된 현실 비즈니스도 덩달아 성장

3D 가상현실 ‘세컨드 라이프’ 홈페이지. <경향신문>

3D 가상현실 ‘세컨드 라이프’ 홈페이지. <경향신문>

2000년 대한민국에서 혁신적인 3차원(3D) 가상현실 서비스, ‘다다월드’ 가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사용자는 가상 ‘쇼핑타운’에서 아바타로 사이버 점포의 점원과 채팅하며 쇼핑할 수 있었다. 이 서비스는 당시 웹의 신천지를 열었다며 큰 관심을 끌었다. 삼성증권, 외환카드 등 대기업도 앞다퉈 평당 10만 원 정도에 사이버 공간을 분양받아 사무실을 열었다.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회원이 1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IT 거품과 함께 인기도 시들었다. 입주 예정자가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기존 사무실도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3D 그래픽을 감당할 수 없었던 당시 인터넷 속도도 일반 사용자의 외면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 린든랩의 ‘세컨드 라이프’로 3D 가상현실이 다시금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열광의 정도는 해외가 훨씬 더하다. 현재 사용자(주민)가 500만 명을 돌파했으며 매일 수만 명씩 늘고 있다. 이 추세가 유지되면 늦어도 내년 초엔 주민이 1000만 명을 돌파하게 된다.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국내서도 수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 ‘테스트 마켓’

세컨드 라이프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100%의 자유도다. 특정 임무나 목적이 부여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는 카지노 경영, 사이버 섹스 등 생각한 것은 무엇이건 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싶다면 만들면 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고유 IP가 부여돼 완전한 소유권이 인정된다)을 직접 취향대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거래해 실제 돈으로 만들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세컨드 라이프의 특징을 사용자간 상호작용성과 즉시성, 구매한 토지와 아이템의 지속적 권리를 보장하는 영속성 등이라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동시에 가장 진보적인 사회적 네트워킹 플랫폼’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 기업의 세컨드 라이프 활용 성공사례도 다양하다. 웰스 파고(Wells Fargo) 은행의 지점에서는 각종 금융정보 제공과 가상의 현금인출기에서 세컨드 라이프의 화폐인 ‘린든 달러’를 인출하게 함으로써 기업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도요타, 지엠(GM), 닛산, 비엠더블유(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신차와 동일한 디자인, 기능을 갖춘 가상 자동차(modified vehicle)를 세컨드 라이프에서 먼저 판매함으로써 고객의 반응을 얻는 테스트 마켓(시험시장)으로 삼고 있다. 의류업체인 아메리칸어패럴도 신상품을 오프라인보다 수개월 먼저 세컨드 라이프에 소개해 가상 고객으로부터 피드백을 얻는다.

온라인 책방 아마존, 캐나다 무선통신회사 텔러스(Telus)처럼 직접적인 제품 판매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느는 추세다.
세컨드 라이프와 관련된 현실 비즈니스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세컨드 라이프 지점을 건설하거나 이벤트를 개최하려는 기관·기업에 ▲프로젝트 디자인·계획 ▲ 가상마케팅 및 서비스 전략 ▲ 3D 콘텐츠 디자인 등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벨로퍼들이 성업 중이다. 미국의 밀리언즈오브어스(Millions of Us), 일본의 메타버즈(Metabirds)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애시드크레비즈’라는 디벨로퍼가 처음 등장했다.

디벨로퍼의 수익도 꽤 짭짤하다. 디벨로퍼들은 밀리언즈오브어스가 영국 BBC의 세컨드 라이프 입점 프로젝트로 10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세컨드 라이프 진출도 조만간 구체화될 조짐이다. 글로벌 브랜드를 갖고 있는 IT 분야의 대기업들이 진출을 적극 모색 중이다.

2분기에 한글을 지원하는 세컨드 라이프 ‘뷰어’ 정식 버전이 나오고 도움말과 실시간 온라인 답변 시스템인 ‘라이브 헬프(Live Help)’가 연내 한국어를 지원하게 되면서 국내 사용자도 급증할 전망이다. 국내 사용자의 증가는 기업이 세컨드 라이프를 적절히 활용해야 할 또 다른 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에도 문제는 있다. 최대 인기 요인인 100%의 자유도가 양날의 칼이다. 목적이나 임무가 없기 때문에 열의를 가지지 않은, 단순한 호기심에 끌린 사용자는 쉽게 흥미를 잃고 만다. 세컨드 라이프 사용자와 관련해 항상 ID만 만들고 실제 활동은 않는 데드유저(Dead User) 수 문제가 불거지는 게 이 때문이다.

세컨드 라이프와 관련된 한국 업무를 총괄하는 김율 린든랩 코리아 매니저도 “사용자가 처음 접해서 친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합문화 휴식공간 사이버파크에서 젊은층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경향신문>

복합문화 휴식공간 사이버파크에서 젊은층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경향신문>

범죄조직 돈세탁 우려 등 논란거리

여러 법률적 문제도 논란거리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와 현실화폐의 자유로운 환전이라는 세컨드 라이프의 특성이 범죄조직의 돈세탁 등에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최근엔 미국 중앙정보국이 세컨드 라이프 내 카지노 등 세컨드 라이프 내 도박장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미국 정부의 온라인 도박 금지 정책으로 해외로 쫓겨난 도박 사이트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몰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린든랩이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요구한 것이다. 린든랩은 가상세계의 불법도박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린든랩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해 귀추가 주목된다.

늘어날 새로운 3D 가상환경 서비스도 세컨드 라이프엔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리얼타임월드아시아는 에픽게임스의 게임엔진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을 사용해 한국어판 온라인 3D 가상현실을 개발 중이며, 5∼6월 비공개 시범 서비스가 목표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세컨드 라이프 열풍을 이어받기 위해 전략적인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세컨드 라이프 열풍에 맞춰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긴밀히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콘텐츠기업 하이앤지는 ‘아지트로’라는 가상현실 서비스를 개발해 테스트 중이다. 게임업체 효성CTX도 가상현실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애시드크레비즈의 박승훤 실장은 이와 관련해 “세컨드 라이프의 인기를 반영, 전 세계적인 가상현실 개발의 열풍이 불 것”이라며 “올해만 100개에 가까운 가상현실 서비스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분간 세컨드 라이프의 인기와 가능성을 완전히 누를 만한 서비스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전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100%의 자유도를 기반으로 기업과 일반 사용자가 세컨드 라이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닌 사이버 공간의 진짜 트렌드가 되어 버린 세컨드 라이프를 각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최순욱〈전자신문 기자〉 choisw@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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