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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요” 잠룡들의 ‘동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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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캠프 참여 거점역할서 측면 정책자문·조언 등 싱크탱크까지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천하를 얻기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인재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인재를 모으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가 ‘글을 가지고 벗을 모으는 것’(이문회우·以文會友)이다. 그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동문’이 아닐까.

“1980년 초반까지 한국을 움직이는 힘은 경기고와 경북고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인재등용 방식이 지나치게 인연을 중시했던 패쇄적 행태를 지적한 말이다. 하지만 권력을 꾀하는 재사들 주변에 동문인사들이 모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또 대선 예비후보들도 능력 있는 동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권 예비주자들을 배출한 동문사회 역시 ‘우리 동문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緣)의 정치’의 뿌리에는 엄연히 ‘동문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절제된 ‘용인법’ 즉 적재적소와 신상필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대선을 앞두고 레이스를 펼치는 ‘잠룡’들이 갖춘 ‘동문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과연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지혜와 지략이 동문들로부터 나올 수 있을까.

이명박 전 시장 고대 ‘61회’ 회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느니 만큼 조직의 규모와 견고성이 남다르다. 실무조직인 안국포럼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다. 게다가 ‘세종포럼’ ‘청운포럼’ 등 교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하부조직도 탄탄한 조직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지원그룹에 이 전 시장의 출신학교인 동지상고와 고려대 동문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정운찬

정운찬

고교동문으로 전면에 나선 사람은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동향(포항)인 이병석 의원이 전부다. 5선의 중진인 이 부의장은 의원들과 스킨십을 통해 이 전 시장의 취약한 당내 기반을 보완하는 등 ‘열정’을 쏟고 있다는 평가다. 이병석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지지세가 약할 때 ‘경북의 이숙번’ 역할을 자임하며 동분서주해 왔다.

사실상 경선 거점역할을 하고 있는 안국포럼와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바른정책연구원에도 동문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전 시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백성운 전 경기도 행정부지사와 정무팀장을 이끌고 있는 박영준 전 서울시 정무팀장이 고려대 후배일 뿐이다.

싱크탱크로는 김백준 서울메트로 감사도 이 전 시장의 고려대 상대 1년 후배로 현대그룹에 있을 때부터 측면지원하고 있다. 곽성준 고려대 교수가 동문으로 경제학 분야 자문에 응하고 있다.

그러나 단결이 잘되는 고대의 특성상 심정적 지원그룹은 꽤 많은 편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회장으로 있는 ‘61회’도 그중 하나다. 이 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 점심식사를 하는 친목모임이다. 이 전 시장은 최근 거의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덕규 국회부의장,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 전광수 미래신용정보 회장,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 김화남 전 경찰청장, 조한천·김충조 전 의원 등 40여 명의 고대 61학번이 회원이다.

정치인들이 다수 포함된 ‘61회’보다 고대동문 경제인 모임인 고대경제인협회는 다소 자유로운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인사는 “아무래도 경제계 인사라는 동질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각 지역별 고대교우회 중에는 인천고대교우회처럼 ‘이명박을 좋아하는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박귀연 인천고대교우회장 등 지역동문들이 나서 ‘희망인천창조포럼’를 만들어 이심전심으로 이 전 시장 돕기에 나서기도 한다.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동문파워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타입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는 서병수 의원이 유일한 동문(서강대 71학번 동기)이다.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어 드러내놓고 조직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지만 나름대로 지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계에서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경제정책 자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집권기간 동안 3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평균경제성장률 7% 달성 등을 골자로 한 ‘박근혜 노믹스’도 그의 작품이다. 언론계에서 중앙일보 정치부장 출신인 이연홍씨가 공보와 정무와 관련해 조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문 편집부국장을 지낸 이상현씨는 최근 박 전 대표의 외곽지원모임인 ‘한강포럼’ 대변인을 맡고 있다. KBS PD 출신인 이윤선씨(70학번)는 영상 이미지, 디지털 콘텐츠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있다.

범여권 예비주자들 서울대 동문

서강대 출신 언론인 모임인 서언회(회장 황희만 MBC 앵커) 회원 일부도 박 전 대표의 심정적 우군이다. 이윤선씨는 “아직 대학동문회 차원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그룹은 없지만 몇몇 동문 사이에서 지지모임 결성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지난해 말 모교(서강대)를 위해 무료 광고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동문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박 전 대표의 모델 선호도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범여권의 잠룡은 서울대 동문 사이다. 또 경기고와 비경기고로 나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울대나 경기고 총동문회 차원에서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동문지원 그룹은 거의 예비후보와의 친소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게 경기고와 서울대 동문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경기고와 서울 상대 출신이다. 그의 한 측근은 “김 전 의장은 ‘연(緣)의 정치’를 극복 대상으로 본다”면서 “일부러 동문모임 등에는 참석을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경기고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의장 주변에 동문이 많이 모이고 있다. 경기고와 서울상대 선·후배들이 주축이 된 경제자문그룹인 ‘근우회’가 그 중심에 있다. 이 모임에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정주호 전 우영 부회장, 김태동 전 금융통화위 위원, 정건해 한영회계법인 대표 등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근우회 회원은 아니지만 김 의장의 은사이자 후원회장인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 윤원배 숙명여대 교수도 김 전 의장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김동령 한세실업 회장,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등도 실무경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득, 문용식, 송태오, 황지우.

왼쪽부터 이상득, 문용식, 송태오, 황지우.

정동영 전 의장 고교동문 적극적

김 전 의장의 싱크탱크는 한반도재단를 중심으로 경제사회포럼과 동북아전략연구소가 3각편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재단은 서울대 동문인 문용식 사무총장(나우콤 대표이사)이 이끌고 있다. 동북아전략연구소에는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소장학자로 참여하고 있다. 당내 재야 운동권 출신 의원 모임인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는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의 결합체’다. 이들 중 서울대 후배는 유선호·문학진 의원, 박우섭 전 비서실 부실장 등 손꼽을 정도다.

서울대 인문대 출신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역시 서울대 동문들을 자문그룹으로 활용한다. 그 핵심에는 정 전 의장의 두뇌집단인 나라비전연구소가 있다. 서울대 동문(외교학)인 친구, 권만학 경희대 교수가 이끌고 있다. 권 교수는 특히 ‘평화대통령’ 이미지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유근관 서울대 교수, 김관옥 계명대 교수, 안병우 한신대 교수 등도 정 전 의장과의 잦은 대면을 통해 대선레이스 주도방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주고 출신인 정 전 의장의 주변에 포진한 고교동문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채수찬·최규성 의원 등 고교동문들이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선레이스의 실무지원 역할을 하는 ‘정동포럼’에 다수의 고교동문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겨레 신문 기자 출신으로 일본 요코하마 총영사를 지낸 박종문씨가 선거기획실장을 총괄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지용·이호윤씨가 기획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고도원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과 최창환 전 이데일리 사장, 소설가 심상대씨도 ‘동문의 이름’으로 정 전 의장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사람들이다.

김근태 전 의장의 서울상대 1년 후배인 정운찬 전 총장의 학맥은 어느 누구보다 탄탄하다. 그러나 아직 정 전 총장이 ‘단기필마 행보’를 하고 있어 ‘조언’ 이상 깊숙하게 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로 스승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꼽을 수 있다. 조 전 부총리는 정 전 총장의 대권출마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권영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이 대학 후배이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은 정 전 총장을 따르는 후배들이다. 제자인 이성규 하나금융 부사장,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도 자주 대면하는 사람들이다.

정 전 총장이 1989년부터 꾸려오고 있는 스터디그룹인 ‘금융연구회’도 정 전 총장의 행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총장시절 기획실장을 맡았던 오성환 서울대 교수가 포함돼 있다. 경기중학교 시절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친구들도 정 전 총장의 지원의 손길을 뿌리치기 어려운, 우정 깊은 사이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 등이 이 그룹에 포함된다.

경기고와 서울 상대를 나왔지만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캠프는 경기지사 시절 인연을 맺진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손 전 지사의 싱크탱크이자 후원조직인 ‘동아시아미래재단’에도 경기고 1년 선배인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상임이사로 참여하는 정도다. 학계 인사로는 고교·대학 동문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정종욱 아주대 석좌교수와 장달중 서울대 교수, 조중래 명지대 교수 등이 있다.

선거지원 실무캠프에서는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인 김성식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와 이수영 전 경기도 영어마을 원장이 정무와 조직을 총괄하고 있는 정도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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