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수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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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돈을 사겠다고 한국은행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행렬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땐 새로 나오는 우표를 사려고 우체국 앞에서 줄 지어 기다렸는데 이젠 우표 대신 화폐로군” 하는 생각이었다. 우표수집의 시대가 가고 화폐수집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번에 나온 신권 중 일련번호 AAA로 나가는 초기발행 화폐는 벌써 10배 이상의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니, 화폐의 투자 가치는 입증된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새 돈이 나올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밤을 새우려 할 텐데, 발권당국은 언제까지 아날로그식 진풍경을 보고만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의 고지도 특별우표.

한국의 고지도 특별우표.

수집(collection)이라고 하면 곧 우표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다. 당시 우표는 소비하고 폐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으고 간직하는 소장(所藏)의 대상이었다. 학생들 취미도 단연 우표수집이었고, 무엇이든 한 가지 작품을 만들어오라는 방학숙제도 우표 수집을 빼면 해갈 방도가 없었다. 집에 편지가 오면 겉봉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표가 훼손되지 않게 물 묻혀가며 뜯어내고, 그렇게 모은 우표를 도화지에 곱게 붙여 수집철을 만들어 펼쳐놓고 뿌듯해 했다.

IT(정보기술) 시대가 된 지금 주변에서 우표수집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온라인 캐릭터나 게임 아이템 수집에는 열심인 아이들도 우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긴 우표 붙은 편지 자체를 보기 어려운 현실 아닌가. 집에 오는 우편물이라곤 택배 아니면 우표 없이 요금별납 도장이 찍힌 고지서 봉투가 대부분이니까.

그렇다면 우표수집은 완전히 추억속으로 사라진 걸까. 전혀 아니다.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할 뿐 우표수집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온라인상에 동호회를 만들어 정보를 나누는 애호가도 많다. `우표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표와 관광인모임’ 등이 그들이다. 우정사업본부 김재홍 우표실장에 따르면 우표통신판매 회원만 3만여 명이다. 우표통신판매는 우체국에 일정금액을 예치한 사람들에게 새 우표가 나오면 집으로 부쳐주는 제도. 그러니까 이 회원들은 모두 우표수집가라 해도 틀림이 없다. 3만 명이라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데, 이들이 수집하는 우표가 웬만해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화제를 끌지 못할 뿐이다.

이들 우표수집인들에게 최근 또한번 희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의 고지도를 담은 보기 드문 특별우표가 나온 것이다. 정조 때 제작된 조선전도로 우산도(지금의 독도)가 울릉도 동쪽에 표시된 아국총도(我國摠圖),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줄여 만든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조선 전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첫머리에 나오는 팔도총도(八道總圖), 현존하는 우리나라 지도 중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 등이다. 발행 물량은 4종을 한 세트로 해 30만 세트. 해외에 알리려고 만들었기 때문에 국내용은 없고 국제용으로만 제작됐다. 올해 22번 발행되는 기념우표 중 국제용으로만 나오는 특별우표는 유일한 케이스. 그렇다면 이런 우표에도 화폐처럼 AAA와 같은 일련번호를 붙여 앞번호의 우표에 희소가치를 부여하면 어떨까. 액면가의 5배, 10배로 뛰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번호를 붙인다면 선착순으로 판매해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디지털 시대답게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추첨 판매하기를 간곡히 권한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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