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펀드매니저도 여풍당당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여성 특유 섬세한 분석력으로 운용성과 올려… ‘금녀의 벽’ 허물어

펀드매니저업계에도 여풍이 거세게 분다.

펀드매니저업계에도 여풍이 거세게 분다.

펀드매니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등 신랑감’이다. 오래전부터 펀드매니저는 높은 연봉으로 남성에게는 최고 직업으로 꼽혔다. 그러니 유능한 남자의 직업으로 떠올라 여성들이 선호하는 신랑감이 된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금녀의 집’으로 알려진 이곳에도 여풍이 강하게 분다. 펀드매니저는 유독 여성들에게 장벽이 높아 그동안 남성 일색이었는데 최근 여성들의 활약이 눈에 띄고 있는 것. 은행·보험·증권업 등 전 금융권을 통틀어 펀드매니저는 유난히 여성에게는 볼모지나 다름없었다. 이는 그동안 스타 펀드매니저 체제로 운용되던 업계의 펀드운용 관례상 여성들이 업무를 영위하기에는 알게 모르게 부담과 제약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펀드매니저는 시황분석에 따라 매수·매도 타이밍에 따른 업종전략을 지휘하고 이에 따른 철저한 성과주의로 평가받기 때문에 여타 금융업종에 비해 여성들이 활동하기에는 부담과 제약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스타일 펀드상품 봇물

영화 ‘작업의 정석’ 여주인공 손예진은 펀드매니저다.

영화 ‘작업의 정석’ 여주인공 손예진은 펀드매니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손예진·송일국 주연의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의 직업이 바로 펀드매니저다.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영화가 잘 투영하고 있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펀드매니저도 여성의 강점이 필요한 분야가 된 것. 그동안 펀드는 주식·채권 운용 일색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펀드상품들이 봇물처럼 개발되면서 여성특유의 섬세함과 분석력을 요구하는 운용펀드들이 줄을 잇는 추세다. 이에 따라 여성 펀드매니저들의 등용문도 넓어지고 있다.

또 전문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 AI(Alt ernative Investment:대안투자) 파생상품 분야나 시스템 인덱스펀드는 과학적·수치적으로 분석을 요하는 섬세함이 필수로 요구되고 있는 만큼 여성들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기대가 크다. 이밖에도 전문적인 신용 분석을 요하는 채권운용부문에서도 여성매니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전무는 “외국 현지 운용사에는 전문 여성 펀드매니저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고 펀드운용에서도 성과가 좋은 편”이라며 “특히 과감함과 섬세함, 정밀한 시스템 분석이 요구되는 펀드들의 출시가 향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앞으로 여성매니저들의 영역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슈로더·피델리티 등 글로벌 외국현지 운용사에서는 현재 여성운용 매니저들이 인력구성면이나 상품성과면에서 남성매니저 못지않은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10여 개 자산운용사 펀드운용에 여성 펀드매니저가 1~2명씩 포진되어 있는 상태다. 섬세한 분석력이 필수로 꼽히는 채권분야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여성 펀드매니저 1호로 꼽히던 랜드마크자산운용의 채권운용팀 김정숙 차장을 비롯한 최근의 여성 펀드매니저들은 기존 채권 뿐만 아닌 주식이나 AI·해외투자, 부동산, 인덱스 등 다양한 스타일 펀드에도 골고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여성 특유의 분석력을 십분 발휘, 펀드운용 성과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왼쪽부터 SH자산운용 조나영 대리, 삼성투신운용 홍인숙 과장, 한국투신운용 조정남 대리.

왼쪽부터 SH자산운용 조나영 대리, 삼성투신운용 홍인숙 과장, 한국투신운용 조정남 대리.

현재 입사 7년, 운용 4년차에 접어든 SH자산운용 시스템운용팀의 조나영 대리는 “매니저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만 해도 기관들이 여자매니저를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사실이지만 성과가 차츰 두각을 나타내자 최근엔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대리가 운용 중인 공모형 인덱스펀드 ‘인덱스플러스 알파 펀드’는 2005년 설정 이후 벤치마크 대비 9.95%수익률을 시현중이고 누적수익률은 55.33%에 이른다.

‘삼성파워 한-중 인덱스 플러스 파생펀드’를 운용 중인 삼성투신운용 글로벌운용팀 홍인숙 과장도 지난해 5월 설정일 이후 11.66%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홍 과장은 우수한 성과에 대해 “상품특성상 세밀한 부분에 신경이 집중되는 구조라 꼼꼼한 분석력이 필수다”라면서 “처음 상품을 설정할 당시 구조적 리스크나 향후 어떠한 위험요인이 부각될지 철저히 분석한 면이 성과를 높이는데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여성매니저 등용문 개방

한국투신운용에서 현재 5000억 규모의 전통 채권형 사모펀드를 운용, 2005년과 2006년 연이어 사모채권운용펀드 운용 수익률 상위권에 랭크된 채권운용 2팀 조정남 대리는 펀드운용시의 강점에 대해, “무엇보다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유연한 사고와 어느 순간 예상될 수 있는 시장의 변동성에 대해 다방면으로 분석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 대리는 “채권운용의 경우 실제 이론적 지식을 실무에 접목시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 이론을 접목해 준비하면 시장의 변화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운용상 매력”이라면서 “더욱이 여타 섹터 대비 정밀하고 세밀한 분석이 필수로 요구되고 있어 여성의 섬세함과 꼼꼼함 등이 강점으로 작용하기 알맞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2500억 규모의 국내외 부동산펀드를 운용 중인 KB자산운용의 한미숙 차장과 5000억 규모의 AI펀드를 운용, 여기서 한 단계 더 구조화된 1400억 규모의 델타펀드를 선보인 동부자산운용의 이경희 차장 역시 베테랑 펀드매니저로 손꼽힌다.

왼쪽부터 KB자산운용 한미숙 차장, 동부자산운용 이경희 차장, 우리CS자산 양진희 과장.

왼쪽부터 KB자산운용 한미숙 차장, 동부자산운용 이경희 차장, 우리CS자산 양진희 과장.

KB자산운용 부동산투자운용팀 한미숙 차장은 그동안 투자한 펀드성과와 관련해서 “현재 여의도와 중구 오피스빌딩 2개와 부천 오피스텔 1개, 수원물류센터 1개 등 총 6개의 국내 부동산펀드와 더불어 지난해에는 투자 대안국 1순위로 떠오른 베트남에 510억 규모를 투자했다”면서 “올해는 기존 빌딩이나 물류센터 운용보다 해외투자 대상 규모가 다각화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전담부서 계획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펀드매니저는 아직까지 비주류에 불과하다. 여성펀드매니저의 숫자는 10%도 안 된다. 한국자산운용협회에 등록된 여성 펀드매니저의 수는 2002년말 35명에서 지난 2월2일 기준 105명으로 4년여 만에 200%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 펀드매니저 1198명의 8.8%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비중이 크게 낮은 편이다. 특히 전반적인 펀드매니저업계 분위기는 아직까지 여성들이 운용수익률 등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낼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한 여성 펀드매니저도 “언론에 나올 정도는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즉 여성이 펀드매니저업계에서 ‘당당할 정도’는 아니란 얘기다. 이 여성펀드매니저의 말에는 펀드매니저업계에 금녀의 벽이 무너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여성이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 펀드매니저들의 업무범위는 현재보다 향후에 더욱 넓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펀드매니저의 순간적인 타이밍에 다소 의존돼 왔다던 지적을 받아온 펀드운용이 차츰 전문적인 분석 툴과 시스템 강화 위주로 재편 중이고, 이에 따라 전문적인 분석력에서 강점을 지닌 여성 펀드매니저들의 역할도 점차 증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여성들의 선호를 반영한 여성기업선호 섹터나 럭셔리펀드 등 섬세한 투자자들의 니즈를 접목한 관련 상품 출시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 펀드매니저들이 입문 뿐만 아닌 운용성과에서도 본격적인 성과를 시현하려면, 운용사 자체적으로 전문펀드매니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리서치 애널리스트 양성과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를 육성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전문 운용펀드매니저로 발돋움하려면 기업의 재무상태나 향후 전망을 아울러 분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리서치 조사역 애널리스트들부터 순차적으로 키우는 것이 제1의 목표”라며 “그동안 숫자가 다소 적었던 조사역 애널리스트들이 분석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기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력과 안목을 가질 때 전문 운용펀드매니저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35명서 지금은 105명으로

그 중요성에 동감한 듯 실제로 교보투신운용·한화투신운용·한국밸류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은 앞으로 신규 운용인력 채용시 향후 업무가 기대될 수 있는 운용부문에 대한 여성펀드매니저 등용문을 개방하는데 적극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한화투신운용 마케팅팀 남상열 과장은 “금융업 전반으로 그동안 다소 적었던 우수여성인력의 채용이 내부적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자산운용업계 내부에서도 각 부분에 꼼꼼하고 섬세한 분석을 요구하는 운용노하우가 대두하고 있어 여기에 강한 전문 여성인력들에 대한 수요는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 역시 “최근 진행된 신입공채의 경우 예비 펀드매니저를 남성과 여성 비율 동등하게 채용했다”면서 “앞으로 신규 공채뿐만 아닌 경력직 펀드매니저 채용에도 전문성과 능력있는 여성 펀드매니저들이 있다면 적극 영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아 한국금융신문 증권팀 기자 kakim@fntimes.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