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길, 산 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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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과 파주의 무덤들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에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박두진 ‘묘지송’

[내 마음의 길]죽은 자의 길, 산 자의 길

고양으로 들어서면 들머리부터 무덤으로 가득하다. 서울 서북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을 기점으로, 서삼릉과 고려공양왕릉, 월산대군묘, 공순영릉 같은 크고 작은 음택들과, 용미리 언덕바지에 지천으로 누워 있는 백성들의 묘가 즐비하다. 벽제화장장을 비롯하여 속속 들어서고 있는 공원묘원들 역시 가루로라도 망자의 세상을 거든다. 그 숱한 무덤들 속에 누가 누워 있는가.

장희빈의 무덤. 남성권력에 의지해 신분상승을 꾀했으나 결국 그 권력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받은 한 여인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망주석이 소슬하다.

장희빈의 무덤. 남성권력에 의지해 신분상승을 꾀했으나 결국 그 권력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받은 한 여인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망주석이 소슬하다.

서오릉에서는 특히 조선 궁중여인네들의 한 많은 삶을 만난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가 누워 있는 수경원이 그러하고, 손자인 연산군의 학정을 나무라다 그의 머리에 받혀 죽은 소혜왕후가 잠든 경릉이 그러하고, 장희빈에 밀려 폐위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복위되었으나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만 인현왕후가 묻혀 있는 명릉 또한 그러하다. 그 처연한 무덤들 중 가장 압권은 아무래도 장희빈이 묻혀 있는 대빈묘다.

모든 권력을 남성들이 틀어쥐고 있던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이루었으나, 다시 남성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만 한 여인의 주검은 애초 광주군의 산야에 버려진 듯 묻혀 있다가 1969년이 되어서야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말이 왕릉으로의 이장이지, 그녀의 무덤은 왕릉의 본역을 구획하는 울타리 밖에 초라하고 옹색한 몰골로(다른 능역에 비하면) 겨우 왕릉에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그녀가 누운 곳의 반대편 능역인 명릉에는 그녀의 지아비였던 숙종과, 그녀의 라이벌이던 인현왕후가 나란히 있고, 그 한쪽에는 제2계비였던 인원왕후의 묘마저 자리하고 있으니, 멀찍이 그 꼴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폐빈의 심기는 과연 어떠할까. 그렇게 해서라도 연을 잇게 해준 후인들의 처사를 잘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키도 어렵고, 왕비에 계비까지 삼각을 이룬 채 능역 곁다리에 매달린 옛 여인의 처지를 짐짓 모르는 척 돌아누운 왕의 심사 또한 헤아릴 길이 없다.

월산대군신도비의 비명. 달과 산은 풍류의 상형이 아니다. 허망한 세상을 드러내는 비극의 문자이다.

월산대군신도비의 비명. 달과 산은 풍류의 상형이 아니다. 허망한 세상을 드러내는 비극의 문자이다.

민망하게도 망자와 종마가 공존하는 서삼릉과 원당종마목장을 지나, 서민의 무덤과 별 다를 바 없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초라한 무덤을 돌아, 새로 뚫린 길 밑에 어렵사리 버티고 있는 월산대군묘에 이르면, 아연실색 말조차 잃게 된다. 그래도 대군의 묘라고 제법 널찍이 자리 잡은 월산대군묘 앞에 서면, 얼핏 한 기의 무덤으로 보이나, 봉분 뒤편을 돌아들면 놀랍게도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무덤이 나지막이 숨어 있다.

바로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 대부인 박씨의 무덤이다. 월산대군은 추존왕(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뒤 왕위에 추대된 왕) 덕종의 맏아들로, 할아버지인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왕재로 자라났으나, 친동생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의 책략으로 왕위를 아우에게 내준 뒤 은둔생활로 여생을 마쳐야 했다. 월산대군이 죽은 후 왕실에서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 홀로 살던 큰어머니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범하여 끝내 자결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월산대군의 묘는 특이하게도 북향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궁궐을 마주하기조차 싫었던 까닭일 것이며, 자신의 무덤 뒤로 부인의 무덤을 감춰두고 있는 것도 치욕으로 죽은 지어미의 주검을 안간힘으로 막아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망자의 원(怨)이 아니라 망자를 바라보는 산 자의 원(願)일 뿐이다.

서오릉 대빈묘 가는 길 핏빛 노을로 물든 소나무들, 잠시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튼다.

서오릉 대빈묘 가는 길 핏빛 노을로 물든 소나무들, 잠시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튼다.

죽은 자의 길을 지나 마저 북향하면 이내 산 자의 길이 열리는 듯 싶지만, 용주골에서 만나는 산 자의 길은 턱없이 영락할 따름이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유곽은 이제 영판 없이 시들었지만,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삶의 길은 여전히 그렇게 지워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단하니, 나는 진정 산 자의 길이 어디인지 너무도 아득하여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 돌아서면 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귀소가 지척이니, 새삼 길을 헤맬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길이여 안녕!

*연재를 마칩니다.

<글·사진/유성문 여행작가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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