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갈때까지 가자” 대책없는 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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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나면 대충 때우기식… 우리나라 한해 발생 50만건 추정

‘500000건’

한 의료시민단체가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는 의료사고 건수다. 또 상당수 의료사고가 무마되거나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단체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의료계 등은 한 해 동안 많아야 수천여 건의 의료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다. 더욱이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의료사고는 진료도중 발생하는 불가항력인 일이 적지 않으며 명칭도 ‘의료사고’가 아니라 ‘의료분쟁’이 맞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쪽간에 큰 견해차를 보이는 것은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없는 데다 의료사고를 전담할 공식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의료사고(분쟁)를 공식적으로 집계·공개하는 전담기관이 우리나라엔 없다. 공식적으로 통계를 내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미국·영국 등 외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미국의 경우 질병통제센터를 중심으로 병원감염 등 의료사고를 매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영국도 독립적인 의료서비스 조사기관인 ‘닥터포스터’를 통해 해마다 공식적인 의료사고 통계를 발표한다. 특히 영국은 국립환자안전청이 통계를 토대로 연간 의료사고 발생 건수를 공식 발표한다. 영국은 최근 의사나 의료기관의 실수로 연간 90만 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공식 통계자료·전담기관 없어

외국의 경우 이렇게 공식통계가 나오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분쟁이 이해 당사자 간 해결로 마무리된다. 의료사고로 사회적 논란을 빚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의료분쟁은 이런 이유로 그들만의 전쟁으로 끝나고 만다.

한 의료시민단체 관계자가 의료 사고자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한 의료시민단체 관계자가 의료 사고자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갈수록 의료사고가 늘고 있지만 정작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뾰족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더욱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와 의사 간 마찰은 끊이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결국 의료분쟁으로 환자와 의사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한 지방에서 발생한 의료분쟁은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1월 17일 한 지방도시에서 협심증을 앓던 50대 신모씨가 병원에서 검사도중 숨져 유족들이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병원이 무리한 검사를 진행해 신씨가 숨졌다는 유족들의 주장에 따라 경찰이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리기 위한 부검을 실시했지만 명확한 사인이 규명되지 않아 소송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물론 의료진도 이 사고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사고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표준화되지 않은 업무절차와 수많은 인수·인계 절차, 긴 근무시간 등이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전자의무기록을 만들어 병원 간 교류를 통해 절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진은 환자측에 사고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정서적인 사과와 물질적인 보상을 병행하는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의료분쟁조정법의 국회 표류 등 의사가 소신껏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 자체가 확보되지 않고 있다”며 “비일비재하는 의료분쟁 현실에 비추어볼 때 공제회를 통한 손해보험 제도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 방지 요령

1.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하라
2. 진료비는 항상 여유있게 가져가라
3. 소신진료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되 궁금한 것은 철저히 묻는다
4. 산모의 경우 목걸이나 인식표를 항상 준비한다
5. 가족 주치의를 준비하라. 늘 상담해주는 가족주치의가 있다면 의료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6. 가능하면 월요일이나 금요일엔 수술을 피한다.
7. 각종 검사 CT, MRI, 내시경 검사 시 보호자가 반드시 동행한다
8. 수술실, 분만실, 중환자실 등 사고의 대부분은 밀실에서 일어난다
9. 임신 중 산전검사가 이루어지던 병원은 옮기지 말고 분만 시까지 담당의사를 바꾸지 않는다
10. 환자관리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시 즉시 지정진료(특진)를 신청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의료사고 대처 요령

1. 의료사고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건 환자(신고자) 진료기록 확보이다
2. 현장(증인·물증)을 최대한 확보한다
3. 폭력행사는 금물이며 섣부른 합의는 삼간다
4. 사망사고가 아닌 경우 환자의 가족이 잘 아는 병원이나 원하는 병원을 선택해 환자를 옮겨야 한다
5. 사고 경위서를 작성해둔다
6. 민·형사상 소송을 자제해야 한다
7. 사망사고의 경우 부검이 필요할 수 있어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8. 소멸시효에 주의한다
9. 의료사고 소송 시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기지 말고 직접 진행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한다
10. 참된 피해자 단체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자료제공=의료소비자시민연대>


인터뷰/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

“의료인이 ‘과실 없음’ 입증해야”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

- 의료사고가 늘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의료사고는 교통사고와 달리 사고에 대한 ‘제3’의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 당시를 입증할 객관적인 정황을 모두 병원이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 소비자의 알 권리와 안전을 위해 입원·수술실 등에 CCTV를 설치하고 의료사고의 원인제공 행위를 한 의료인이 자신의 ‘과실 없음’을 입증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 피해보상제도는 어떤가.

“가장 큰 문제가 의료사고 통계가 전무한 데다 이를 해결할 전담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예산이 뒤따르고 철저히 준비하면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이 줄 것이다. 현실적인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 의료사고 통계조차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연간 수십만 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수치를 아는 사람이 없다. 더욱이 의료사고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사고나 분쟁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통계기관조차 없어 정확한 실태파악이 전무한 실정이다.”

- 외국의 경우 어떤가.

“예를 들어 미국은 1960년대 의료사고 소송이 급증하자 일찌감치 ‘의료과오 개혁법’을 제정했다. 소송 전에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의사에게는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주(州)마다 분쟁조정 과정에 강제심사제도나 조정제도를 두어 쓸데없는 소송으로 인한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덜게 했다. 책임보험의 형태와 운영 주체도 다양하게 해 의사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의사와 환자가 안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이제는 마련되어야 한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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