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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단축은 대선 ‘비장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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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파괴력 커 선거에 결정적 변수… 야권서 찬반 표시하기 곤란한 ‘묘수’

국군의 날 행사를 마치고 도열한 군 지휘관들과 악수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국군의 날 행사를 마치고 도열한 군 지휘관들과 악수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 대통령의 군복무 단축 발언이 정가의 핫이슈로 등장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연패에는 아들 병역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군복무, 또는 병역’이라는 말처럼 두렵고 떨리는 키워드가 없다. 정치공학적으로만 판단하면 군복무 단축 카드는 허를 찌르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야권이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도, 또 함부로 찬성할 수도 없는 난감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군대’와 연결된 그 모든 사안은 공직자의 품성을 좌우하는 도덕성의 결정적인 잣대다. 군대를 가지 않은 자에 대한 혐오는 대한민국 군대생활이 그만큼 힘겹고 고통스런 과정이란 점을 웅변으로 반증하고 있다. 군대의 사안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면서 양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케 한다는 점에서 민감하고 또 민감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투표권 가진 입영대상자 130만명

복무 단축 카드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여야 정치권의 판단이다. 우선 표계산부터 해보자. 투표권을 갖는 19세에서 22세까지의 입영대상자들의 숫자는 130만 명에 달한다. 당장 매년 군대에 가야 하는 장정의 숫자만도 30만 명이다. 이들의 가족과 친지, 애인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수백만에 달한다는 것이 최근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계산이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각각 39만 표, 56만 표 차이로 패배한 것을 감안할 때 이 카드의 파괴력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내년 상반기 단축 방침이 결정되면 선거 분위기는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이 야권의 우려다. 열린우리당 한 친노계 초선의원은 “복무 단축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야권이 대통령의 결정을 비난하면 할수록 여권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복무 단축 카드가 선거를 앞두고 ‘모병제 공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여기서 ‘모병제’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세 가지다. 첫째 모병제는 공약으로만 내세워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둘째 모병제는 이념적 지형 때문에 야권의 공약이 되기 힘들다는 점, 셋째 모병제는 첨단·전문군 육성이라는 당위와 평화체제, 군축의 명분과도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모병제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모을 수 있는 표의 범위는 더욱 광범위해진다. 최근 징병제를 완전 폐지한 프랑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모병제 실시는 단번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후 10년 20년을 두고 단계적으로 이뤄질 경우 미래에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현재 학부모들의 표심에까지 호소할 수 있다.

물론 현 여권이 모병제 카드를 ‘날 것 그대로’ 내놓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예산 문제, 남북 대치 문제, 첨단군 육성 문제, 군복무 양극화 문제 등 여러 가지 걸림돌에 대한 정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인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는 2020국방분야 개혁안을 내놓고 지난 수년 간 치열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현행 10개 군단을 6개 군단으로, 47개 사단을 20여 개 사단으로 축소하는 틀 안에서 상비병력을 68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감축하고 예비전력을 300여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대폭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대선과정에서 모병제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복무형태가 패키지로 제시될 가능성이다.

현재 여권 일각에서는 대체 복무제의 확대, 사병 봉급의 획기적 인상, 유급병사제의 조기 도입과 확대 등 군 복무 시스템 전반을 확연하게 개선할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여권에 정권을 다시 맡기면 그간 젊은이들의 ‘인생을 압박했던’ 군복무 문제가 현저하게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반한나라당 세력 결집시킬 카드

현재 야권의 유력 후보들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복무 단축, 또는 모병제 카드가 단순히 ‘표계산’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반한나라당, 반이회창 세력의 결집이 군복무 카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한반도기를 앞세운 광란의 ‘평화’ 물결이 골목골목을 누리게 되고 ‘전쟁반대, 평화만세’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을 뒤엎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비장의 카드’가 바로 ‘징병제 폐지’ 공약일 것이란 주장이다.

열린우리당 신당파의 한 재선의원은 군 복무 단축 카드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경우의 이해득실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와 달리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미 군대를 갔다온 장·노년층에게 오히려 강한 반감을 조장하고 선거용이란 야권의 대응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민감한 이슈에 대한 한 네티즌의 생각은 다르다. 한나라당 집권을 반대한다는 이 네티즌은 이런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능수능란하게 수를 읽고 있는 범 보수권의 이슈 파이팅에 맞설 극적 카드로는 무엇이 있을까. 혁신적으로 판세를 뒤집고 피아를 새로이 가르며, 현재 적대적인 세력들을 잠재적 우군으로 줄세울 수 있는 이슈…. 범 보수권의 정체성으로는 차마 뒤따를 수 없어 완벽한 이슈 파이팅이 될 수 있는 카드, 나는 오늘 범 여권의 대마로 ‘모병제’를 주목한다.”

그러나 모병제 카드가 유력한 대선공약이 되기에는 현 여권의 사정이 너무도 복잡하다. 노 대통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것은 최대 6개월 간의 병역 단축이다. 야권 후보들이 이 단축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 조치로는 대선 카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카드는 안상수 의원의 주장처럼 ‘징병제 폐지’가 될 것인가. 여권의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이 ‘비장의 카드’는 밀실 속에서 첨삭과 연마를 거듭할 수 있으리라는 우려와 기대가 정치권에서 교차하고 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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