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혈맹보다 외교적 실리 선택하는 중국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북 핵실험 이후 투자 중단·경제제재 심화… 미 패권주의 협력 대신 무엇을 얻을까

‘미·중빅딜설’은 김정일 체제의 붕괴 이후를 두고 상정한 것이다. 곧 북한 체제 붕괴 이후 북한을 어느 나라가 수습하느냐의 문제이다. 미·중빅딜설은 그 수습을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담당한다는 의미다. 중국 대북정책의 변화도 ‘미·중빅딜설’을 뒷받침하는 징후 중의 하나다.

북한은 중국의 중요한 주변국가다. 당연히 중국은 북한과 ‘순치(脣齒)관계’에 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제3세계보다 높은 수준의 ‘관리 대상국가’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핵실험을 한 ‘군사강국’이라는 점에서 관리가 쉽지 않다. 중국에 의존하는 ‘자립생존형 경제(Auturky Economy)’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북핵이 본질적으로 북·미 갈등구조에서 비롯됐지만 중국의 개입 여지가 중국 의존형 경제라는 데 있다.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 일시 중단

북·중간 지난해 교역액은 15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북한에서 쓰이는 소비재의 80%가 중국산이다. 에너지 의존도는 70%에 달한다. 최근 2∼3년 사이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북한의 광산, 항만 등에 대한 투자가 크게 증대했고 물류·유통 분야에 대한 투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의 대북투자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무산광산개발사업 투자는 유보됐다. 평양백화점도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중국은 불법적 변경무역을 사실상 묵인해왔으나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크게 교역량을 급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동북아의 외교전선이 분명히 구분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을 잠재적 패권경쟁국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이 일시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즉 비핵화 질서(NPT) 체제에 도전해온 북한에 대한 통제역할을 일부 중국에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장성민 전 의원은 “9·11테러와 북한 핵실험이 아니었으면 미·중 양국은 긴장상황에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세계 초강국 미국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지 않도록 하는 완충지역(북한) 때문에 얻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이익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김종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중국은 1980년대 미국이 소련을 군비경쟁에 끌어들여 망하게 했던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퍼주는 비용이 차라리 더 싸게 먹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물론 북핵이 중국을 위협하고 중국의 생존과 직결됐다는 인식은 과장된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중국 주변국 중에 북한이 유일한 핵보유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핵 위협 그 자체보다는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중국이 감당해야 할 전력분산이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협력과 물류혁명에 기폭제가 될 경제·지리적 요충지다. 북핵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킴으로써 중국의 가속적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제동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핵의 해결사로 소매를 걷고 나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유일 패권국인 미국의 질서유지 요구에 협력하는 대신 중국 본국의 시장 잠재력 확대라는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양국의 이해일치와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원칙에 동의하는 중국이 북한과 최소한의 관계 재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장성민 전 의원은 “북한 핵실험이 없었다면 미·중 양국의 외교적·경제적 파트너십이 지금처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중국이 북핵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핵실험 계기로 파트너십 공고

실제로 북한의 김정일 체제의 존속을 적극 지원하면서 북·중 갈등을 조정하려는 기존의 대북 외교태도에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핵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대북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북 접근방식에서 두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면서 “그것은 6자회담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것과 유엔 제재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중관계가 과거의 혈맹관계가 아니다”라면서 “외교적 실리가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을 통해 중국의 안보를 자극해서 미국을 움직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시 이를 동아시아의 미래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탕자슈안 외무담당 국무위원을 대북특사로 파견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두드러진 차이가 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월 중국을 방문, 북한과 중국 사이의 정치·경제적 교류와 협력 확대 약속을 얻어냈다. 중국은 ‘후진타오 체제’ 출범 이후 대북 경제관여 정책을 통해 대형 투자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북한 진출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뜻을 확인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대북 경제원조 3원칙이 이를 상징한다. ▲정부 인도(주도) ▲시장경제 원칙 도입 ▲기업참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북핵실험 이후 경제원조 3원칙 중 ‘정부 인도’가 ‘정부 유도’로 경제협력 단계를 ‘강등’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인도’와 ‘정부 유도’의 차이는 상당한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김흥규 교수는 “사실상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 인도’ 원칙 아래서는 중국 국영기업의 대북진출도 가능케 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이 개성공단과 같은 자유무역지구를 만들 경우 적극적인 투자를 할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무상지원을 줄이는 대신 유상지원을 늘리겠다는 중국의 속내가 숨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경제원조 원칙 조정 조치 이외에 정부 차원에서 중국이 양국 교역에 개입한 흔적은 거의 없다. 김흥규 교수는 “중국 정부가 대북교역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투자는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핵실험 이후 민간 차원의 대북투자는 사실상 전면적으로 중단되어 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북한 체제가 불안해지자 기업들이 알아서 철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행, 중국공산당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중국 4대은행도 금융제재에 돌입했다. 김흥규 교수는 “이런 금융조치는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고 기업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계좌개설을 차단하고 외환송금도 중단시킨 것”이라면서도 “중국 민간기업들도 아직까지 정부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민간차원 대북투자 전면적으로 중단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엔 대북제재 범위를 보면 사실상 중국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면서 “중국 대북투자 등 경제지원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투자환경 등 경제원리의 문제이지 북핵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대북 지원사업은 여태까지 논의단계에 있었고 실제로 진행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어떻든 대북 교역 축소는 결국 북한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다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김흥규 교수는 “분명한 것은 중국 정부가 북한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도에서 북한이 충분히 아파할 정도의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탕자슈안 국무위원은 이미 “북한의 목숨줄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지원 중단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보내고 있다. 물론 이는 ‘경고를 위한 경고’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연초만 해도 북한이 더이상 중국에 ‘예속’되어서는 남북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왔던 상황과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중국의 변화에 대해 홍관희 소장은 “중국은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미국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중 양국의 공동목표인 비핵화에 일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안보실장도 “중국 정부는 나서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북한 경제를 압박하는 것”이라면서 “중국은 북한이 당장 핵포기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중장기적인 핵관리에 들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중국의 대북 경제제재는 상징성을 갖고 있으나 매우 소극적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북·중관계와 중·미관계 그리고 중국 내부의 사정까지 고려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외곽때리기는 하지만 미국과 북한 모두에 유연성 있는 대응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는 마치 1980년대 중국의 외교목표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재연하는 듯하다. 도광양회란 빛을 감추고 드러나지 않게 한 뒤,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1980년대 덩샤오핑의 중국 외교전략 지침이다. 중국이 다시 20여 년 전의 외교전략을 들고 나온 것은 외국의 견제를 최대한 줄이면서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동용승 연구위원은 “마치 도광양회로 회귀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세계국가화라는 중국의 거대한 목표를 놓고 그 틀 안에서 북한을 요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