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반기문·박태환·비보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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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선정 올해의 인물 10인… 정치 오세훈·이명박, 경제 황창규
문화계 이준기, 학계 신영복, 사회계 서병길 소방관·국과수 유전자분석과

다사다난했던 병술년 한 해. 수많은 인물이 인연의 고삐를 서로 부여잡고 돌고 도는 세상살이를 만들어왔다. 이들 중에는 유독 세간의 관심과 눈길을 집중해 받던 사람도 있다. 뉴스메이커는 2006년 한 해를 빛낸 인물 10명을 선정했다. 세상살이에 근심보다 기쁨을 더 많이 제공한 사람들이다.

뉴스메이커가 꼽은 올해 최고 인물은 단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62). 37년 간 외교공무원으로 봉직했고 2004년 1월부터는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80년대 이후 최장수 장관이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그가 올 2월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아무도 당선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했다.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다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진가가 드러났다.

반기문 총장 한반도 역할 기대

반기문

반기문

네 차례에 걸친 유엔 안보리 예비선거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했고, 사퇴후보들의 지지도 받았다. 결국 그의 ‘꿈’은 지난 11월 유엔총회 인준으로 달성됐다. 대한민국은 더불어 ‘세계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게 된다. 반 총장은 ‘아시아지역 분단국가’ 후보라는 불리함을 딛고 이례적으로 당선돼 국민에게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OECD가입국 중에서 처음으로 나온 유엔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내년 1월 공식 취임하면 북 핵실험과 인권문제가 해결되도록 역량을 발휘하겠다”고 말해 한반도를 둘러싼 그의 역할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45)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65)이 나란히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권 잠정은퇴를 선언했던 오 시장은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화려하게 컴백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강풍’을 앞세운 열린우리당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확실한 한나라당의 ‘카드’로 지목받은 것이다.

결과도 화려했다.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압도적 우위를 보이며 거머쥔 승리는 달콤했다. 당내 경선에선 홍준표, 맹형규 같은 중진과 경쟁해 이기며 “나라와 정치가 바로 서려면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던 자신의 용단을 증명했다. 이어 ‘개혁과 변화’의 이미지로 유권자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취임 이후 이렇다 할 정책 비전과 성과를 내놓고 있지 못해 주변에선 ‘정체성과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솔솔 일고 있기 때문에 “험난한 여로가 예상된다”는 주위 평가도 있다 .

이명박 전 시장 대권후보로 상한가

이명박(왼쪽), 오세훈

이명박(왼쪽), 오세훈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유력 대권후보로 상한가를 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지지율 선두 굳히기에 나서려는 분위기다. 라이벌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최근 한 자릿수까지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지만 이 전 시장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전망. 연달아 ‘정치형 대통령’이 집권하며 국가경제와 민생에 불만을 지녔던 유권자층이 ‘CEO형 대통령’이란 그의 이미지에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슈 선점 능력은 올 한 해 그가 보여준 정치력의 대표적인 사례. ‘한반도 대운하’에 이어 최근 논란을 불러왔던 ‘신혼부부 1가구 1주택’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용적률 상향 조정과 고도제한 완화법을 제시하며 내놓은 것이란 점에선 박 전 대표 캠프의 ‘한·중 열차페리’ ‘U자형 국토개발’보다 앞서나가는 듯한 분위기다. 내년 초까지 분위기가 유지되느냐가 관건.

더불어 이 전 서울시장은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류’ ‘과도한 부동산정책’이란 비난을 받으며 ‘뚜렷한 정체성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내년 중반까지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선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창규

황창규

재계에선 유일하게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이 꼽혔다. 지난 12월 중순 동양계 기업인으로선 최초로 세계 반도체 최고 권위의 ‘2006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앤디그로브상’을 수상한 황 사장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그룹 오너들을 제치고 이름을 올린 것이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3학년 때(75년),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의 저서(Phisics of Semiconductor)를 읽고 반도체 전문가의 길을 선택한 뒤 30년 만에 ‘세계 최고 반도체 권위자’로 우뚝 올라섰다. 올 한 해만 해도 ‘세계 최초 32GB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 개발’(3월) ‘세계 최초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및 CTF 기술 개발’(9월) ‘세계 최초 50나노 1기가 D램 개발’(10월) ‘원D램 발표’(12월) 등으로 세계 반도체업계를 주도했다. 이미 세계 반도체업계에선 ‘황의 법칙’으로 불리는 황 사장만의 룰이 존재할 정도다.

이준기

이준기

문화계에선 영화배우 이준기(24)의 독주가 눈부시다. 영화 ‘왕의 남자’(관객 1230만 명)에서 공길 역을 맡으며 한국영화 흥행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쓰게 했다.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와 몸놀림이 강점. 스타덤에 오른 직후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란 CF로 다시 한 번 신드롬을 불러왔다.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연말 영화제에선 신인남우상을 독차지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한·일 합작영화 ‘첫눈’에도 캐스팅돼 촬영이 한창이며 2007년 봄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개봉된다. 그의 등장은 단순히 스크린의 새 얼굴 득세를 의미하진 않는다. 조선시대 연산군과 궁중 광대를 소재로 한 영화 ‘왕의 남자’란 제목이 풍기듯 우리 사회에 ‘동성애 코드 확산’이란 영향을 미쳤다. 올 한 해 10·20대에 미친 ‘예쁜 남자’ 신드롬을 주도한 이준기가 하나의 문화상품이자 현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신영복 교수 시대정신의 ‘지주’

신영복

신영복

문화계에 이준기가 있다면 학계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65)가 자리한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사 교관을 지낸 그는 70·80년대 사상범으로 긴 투옥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 기간 경험은 그에게 이 시대 최고 지성인이란 타이틀을 선사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을 쏟아냈던 신 교수는 올 한 해도 변함없이 시대정신의 ‘지주’였다. 좋은 책, 좋은 강의를 통해 세상 속 따스한 삶의 방법을 전달했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자본논리에 맞설 수 있는 인문학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 메신저였던 셈이다.

올 8월에는 교수 정년퇴임 ‘여럿이 함께’를 성공회대 일만광장에서 치르며 가수 윤도현· 안치환·강산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노회찬 민노당 의원 등을 축하객으로 맞아 폭넓은 우리 사회 인적 네트워크를 과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소주 ‘처음처럼’은 술자리에서 뭇남성들의 입에 꾸준히 오르내리며 회자됐다. ‘처음’의 신비감과 설렘을 담은 이 소주는 서울시장에서만 점유율 20%대에 육박하며 히트했다. 특히 소주의 로고는 ‘신영복체’로 불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서병길

서병길

따스한 이웃의 모습을 떠올릴 때, 올 한 해 잊을 수 없는 대표적 인물이 고(故) 서병길 소방관(57). 지난 11월 14일 부산 금정구 가스폭발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서 소방관은 인명구조를 위해 스스로 무너지는 건물 속에 뛰어들어 유명을 달리했다. 전 국민을 숙연케 한 그는 지난 33년 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1만9500여 차례 화재 현장에 출동해 1052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1973년 결혼 이후 여지껏 신혼여행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 그가 순직 3개월 전 부인과 함께 연말 신혼여행을 기약해 생애 첫 여권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국민들은 한 차례 더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매일 생사를 넘나들며 희생·봉사하는 소방관. 진정한 의인인 이들에게 국민 모두 감사하고 또 존경심을 표해야 하는 이유를 서 소방관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음지에서 고생한 또 다른 이들도 있다. 미궁에 빠진 프랑스 영아 살해사건의 유전자 과학수사를 담당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15명의 팀원이 주인공. 막무가내 수사가 아니라 유전자분석이란 과학적 뒷받침을 통해 밝혀낸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개가로 꼽힐 만하다. 프랑스 언론도 “한국 수사결과를 인정했어야 했다”며 이들을 인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서래마을(서울 반포동 프랑스인 마을) 영아 유기 사건은 올 한 해 최고의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프랑스인 장-루이 크루조씨 부부 집에서 나온 여성의 유전자(DNA)와 영아들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일대 전기를 맞았다. 귀이개·칫솔 등의 분석에 매달려 이뤄낸 결과다. 유전자분석팀은 “며칠 밤샘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산모의 DNA를 확인하는 순간 느꼈던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고 당시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비보이 신드롬 일으킨 ‘라스트 포 원’

라스트 포 원

라스트 포 원

국위선양은 비단 과학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인공은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대한민국’ 브랜드를 널리 알린 뒤 여세를 몰아 문화관광사절로 활약한 비보이 댄스팀 ‘라스트 포 원’(Last4one). 남자 12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해 독일 세계 비보이(브레이크댄스) 배틀에서 우승하며 한국 춤실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어 한국관광공사 주최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패션대전’에 나가 한국관광과 패션을 알리는 등 문화사절단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 가야금 연주와 비트박스, 비보이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D산업의 광고에 출연, 비보이 신드롬에 일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갬블러·익스프레션 등 이들과 같은 비보이들이 세계 주요대회를 석권하며 비보이 강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박태환

박태환

올 한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 주인공은 2006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인 ‘마린보이’ 박태환(17). 한국 수영의 역사를 다시 쓰며 중흥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1982년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배영 100m·200m·개인혼영 200m에서 우승한 뒤 무려 24년 만에 달성된 경영 3관왕이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세계무대 제패를 노리는 박태환은 타고난 부력과 유연성, 지구력을 겸비한 ‘연습벌레’.

박태환의 밝은 미소처럼 다사다난했던 2006년도 모든 아픔을 뒤로 한 채 밝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상도 기자 sdo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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