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터넷쇼핑몰 ‘택배 백마진’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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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호주머니서 나가는 배송비 중 일부가 쇼핑몰에 리베이트로 변칙 지급

인터넷 쇼핑몰이 택배비에서 백마진을 떼어 택배비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택배비에서 백마진을 떼어 택배비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 사는 회사원 김미정씨(여·25). 그는 평소 단골로 이용하는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서 4만 원짜리 재킷을 주문한 후 물건 값은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배송비 2500원은 착불로 냈다. 김씨 등 고객은 배송비가 배송업자인 택배사에 모두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부는 쇼핑몰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예컨대 택배사는 김씨가 지불한 배송비 2500원 중 30%에 달하는 700원을 판매 장려금 명목으로 쇼핑몰에 지급한다. 이른바 ‘백마진’으로 불리는 은밀한 거래다. 실제 택배단가는 1800원인데 고객에게 700원을 더 청구한 후 쇼핑몰에 리베이트로 주는 방식이다. 택배사가 화주에게 지급해야 할 영업 리베이트를 고객이 대신 내주는 셈이다. 인터넷 쇼핑몰 판매업자들이 이중으로 소비자들에게 이득을 챙기는 불법 상거래가 판치고 있다.

백마진 관행은 일반 화주한테도 방생하지만 90% 이상은 인터넷쇼핑몰에서 행해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기업 택배사를 비롯한 중소형 규모의 택배사까지 백마진 영업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백마진 영업 경쟁이 심화돼 평균 10%의 리베이트 규모가 40%대까지 치솟고 있다. 백마진은 또 창고임대료와 프린터기, 전산송장, 인력지원 등의 옵션까지 따라붙고 있다. 보통 5000만 원 한도 내에서 사무실 임대보증금과 창고임대료를 지원하는 게 택배업계의 관례처럼 돼 있다. 리베이트 금액은 대리점주나 영업소장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착불배송 건당 700~900원 백마진

중견 택배사인 ㄹ사의 경우 ○○민트와 배송계약을 맺고 착불단가 2500원 중 900원을 백마진으로 주고 있다. ○○민트의 월간 물량은 1만 개 정도. 월 매출액은 약 1600만 원(부가세 포함)이다. 이중 50%만 착불배송으로 쳐도 ㄹ택배는 ○○민트에 월간 450만 원을 백마진으로 주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간으로 따지면 5000만 원 규모다.

여성복 전문 쇼핑몰인 파○는 중견 택배사인 ㅇ사와 배송계약을 맺으면서 경기도 파주의 물류센터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건당 백마진 800원 외에 옵션으로 창고임대료와 작업인건비 등까지 제공받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파○의 월 추정물량은 약 20만 개. 월 매출액이 3억 원에 달한다.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10만 개를 백마진으로 봐도 월 8000만 원의 리베이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약 10억 원에 달한다. 모두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백마진은 현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존 착불에만 적용되던 것이 최근에는 신용(선불)거래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서 ‘신용거래’는 쇼핑몰과 택배사가 배송계약을 맺고 물건 주문 시 쇼핑몰이 선불로 배송비를 받고 월말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중소 택배사인 ㅌ사와 배송계약을 맺고 있는 ○○구두의 경우 건당 신용발송 400원, 착불발송 800원을 백마진으로 받고 있으며, 더불어 창고임대료와 포장 아르바이트도 지원받아 운영 중이다. ○○구두는 월 1만5000건 정도의 물량 규모를 갖고 있다.

백마진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백마진 외에 보너스 백마진까지 주는 곳도 있다. 중소 택배사인 ㅇ사는 대기업 ㅈ택배사가 배송하고 있던 옐○○에 기본 백마진 외에 보너스 백마진까지 제시하며 물량을 가져왔다. ㅇ사는 신용발송 400원, 착불발송 800원을 기본 백마진으로 주고, 여기에 1만 건당 1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옐○○의 월 평균 물량이 2만~2만5000건임을 감안하면 월간 200만 원의 보너스 백마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택배사인 ㅈ사는 올해 10~11월 사이 단골 화주 4개를 경쟁사에 빼앗겼다. ○○쎌, ○버, ○○플레이, ○○기 등 4개사는 초창기부터 ㅎ사가 배송을 맡아왔으나 경쟁사인 ㅎ사와 중견 ㄹ사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재계약에 실패했다. 4개사의 물량 규모는 월 평균 6만3000개 정도. 매출액 1억2000여 만 원에 달한다.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이 도가 넘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백마진 리베이트가 시작된 것은 대기업 택배사인 ㅎ사가 택배사업을 시작한 1993년부터다. ㅎ사는 택배 시스템에 프랜차이즈 방식을 도입해 영업소를 대리점화했다. 이른바 ‘택배 프랜차이즈’를 처음 도입한 것이다. 경쟁사인 ㅈ사·ㄷ사와는 달리 대리점을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면서 물량확보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 백마진이 탄생한 계기다. ㅎ사는 백마진 영업에 힘입어 단숨에 전자상거래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결국 택배 패권을 차지했다.

백마진은 대기업 ㅎ사가 물량경쟁을 벌이면서 탄생했다. <서성일 기자>

백마진은 대기업 ㅎ사가 물량경쟁을 벌이면서 탄생했다. <서성일 기자>

견적서에 명목은 ‘작업지원비’

이후 1999년 택배사업에 진출한 대기업 후발주자 ㅅ사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저가운임 정책을 펴면서 백마진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ㅅ사는 백마진의 폐해를 심화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ㅅ사는 지난해 말 저가운임 업체들을 정리하면서 한때 ‘택배운임 제값받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매출이 급감하고 경쟁사에 밀리자 다시 저가경쟁에 뛰어들면서 가격정책을 원점으로 돌렸다. ㅅ사는 자사와 배송계약을 맺은 ○○내샵과 ○○코리아에 착불 건당 700원의 백마진을 주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신규로 물량을 수주한 ○사이즈와 ○오에도 300~800원의 백마진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올 들어서는 ㅅ사의 동대문 의류상권내 영업소장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선불 1700원, 착불 2500원에 500원의 백마진을 제공하고 있다. ㅅ사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와 계약하면서 약 20~25%의 백마진 리베이트를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시장점유율이 낮아진 중소 택배사들이 백마진 관행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택배사의 백마진 영업은 본사 직영체제보다는 대리점(개인사업자)이나 영업소 체제에서 주로 발생했다.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다 보니 물량을 수주하기 위한 저가경쟁과 백마진 영업이 일반화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본사 직영체제의 택배사에서도 백마진 영업을 부추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메이커가 입수한 대기업 ㄷ사의 견적서를 보면 백마진 실태가 적나라하다. 이 견적서는 ㄷ사의 서울동부택배지점이 인터넷 쇼핑몰 업체 ‘○○○친구’에 보낸 문건이다. 여기에는 택배운임으로 ‘신용 1700원’ ‘착불 2500원’을 제시하고 있으며, 비고란에 작업지원비 명목으로 착불 건당 800원을 주겠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백마진 리베이트를 ‘작업지원비’로 둔갑시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ㄷ사의 관계자는 “본사는 알지 못했다”면서 “일선 지점에 영업의 재량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지점 자체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택배사와 쇼핑몰이 배송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요즘은 동대문 지역에 중소형 집하전담 대리점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새로운 계약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즉, 집하대리점이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물량을 확보한 후 다시 택배사와 배송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업체가 ○○네트로 월간 약 50만 개의 집하 규모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택배사와 배송계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백마진은 주로 중·대형 의류쇼핑몰에 집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오픈마켓인 옥션이나 G마켓 등에 입점해 있는 업체들에서 많이 발생한다. 고정물량은 가지고 있으나 물류창고나 시설이 없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유명 오픈마켓에서 ‘손해 보는 장사’라며 판매 중인 3900원짜리 티셔츠 등 대부분의 저가형 상품도 알고 보면 알짜배기 장사다. 먼저 3900원짜리 티셔츠의 원가계산을 해보자. 중국에서 제작한 상품들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제작단가와 물류비를 포함하면 약 2000원 정도. 반면 국내 제작단가는 인건비 등을 포함해 500원 정도 높다. 그 때문에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저가상품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다. 중국 제작단가를 기준으로 보면 3900원짜리 티셔츠 장당 원가는 2000원. 여기에 택배비 2500원을 받는다. 이럴 경우 거래수수료 8%를 제외하고도 티셔츠 장당 1588원이 순수익으로 남는다. 여기에 택배 백마진으로 장당 500원을 받으면 쇼핑몰은 총 2088원을 챙길 수 있다. 즉, 50% 이상의 마진이 남는 고수익성 장사가 되는 것이다.

‘사은품 무료’ 배송비로 이속 챙겨

본기자 입수한 한 택배사의 견적서. 백마진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본기자 입수한 한 택배사의 견적서. 백마진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내세우고 있는 ‘사은품 무료 증정, 배송비 고객 부담‘ 등도 대부분 눈속임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가 1000원짜리 사은품을 무료로 주면서 택배비는 4000원을 청구해 배송비에 물건 값을 포함하는 형식이다. 쇼핑몰과 택배사의 배송계약 단가가 2500원이라면 판매자는 500원이 순이익으로 남는다. 더불어 택배사에서 백마진으로 건당 500원을 받으면 1000원짜리 물건 팔아서 물건 값을 빼고도 1000원이 고스란히 남는다. 봉이 김선달식 판매기법이 아닐 수 없다. 싸구려 물건 가져다가 사은품이나 증정품을 무료로 준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내는 수법이다. 이럴 경우 택배사는 물건을 인수하는 현장에서 고객에게 직접 돈을 받는 COD(Cash On Demand) 방식을 채택한다.

대학생 한세린씨(22)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쥬얼리 전문 쇼핑몰에서 실시하는 무료 증정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배송비 60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는 것. 한씨는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쇼핑몰에서 연락이 왔고 며칠 후 택배사원에게 착불로 배송비를 지불했다”며 “물건 포장을 뜯어보니 조잡해 사용하지 못하고 사기당한 기분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백마진은 탈세와 비자금 조성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게 마련이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닌 비정상적인 무자료 거래여서 영수증 처리도 편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화주인 쇼핑몰 업체가 세금계산서 발행 등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불법·탈법 등의 방법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택배사의 회계처리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이 영업소 수수료, 업무추진비, 상품구입비, 아르바이트비, 식대, 유류비 등 갖은 명목으로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방법이다. 또한 이른바 ‘검은돈 해결사’들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 종로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령업체들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들 업체는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후 회사를 없애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택배사는 이들 업체에 돈을 주고 세금계산서를 구입해서 회계처리에 이용하는 것이다. 백마진의 명목도 ‘화물처리비’ ‘’작업관리비’ ‘물류관리비’ 등 만들기 나름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백마진은 탈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쇼핑몰의 매출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업주의 비자금이나 고스란히 개인호주머니로 들어가 치부의 수단이 되고 있다.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연간 기준으로 1개의 쇼핑몰 업체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 규모다. 전체적으로는 수천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검은돈’이 택배사와 쇼핑몰의 은밀한 거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택배업체 출혈경쟁으로 경영난 심각

택배사의 백마진 영업은 택배사들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업체들끼리 백마진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택배단가 하락과 수익성 저하가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택배업체 상자당 단가는 1500원대를 형성,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저단가가 다시 저단가를 낳고 백마진이 또 다른 백마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격’이다. 또 화주인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계약을 체결할 때 기본적으로 백마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 때문에 일부 택배사들이 가격정상화를 외치며 저단가 영업을 지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저가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

대기업 택배사의 한 택배담당 임원은 “택배단가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게 문제”라면서 “경쟁사들이 경쟁적으로 저단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단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이 임원은 “화주들의 노골적인 백마진 요구가 도를 넘는 수준”이라고 증언했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은 백마진을 택배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중소 택배사인 ㅋ사에서 프린터기를 제공받고 백마진 계약을 체결한 한 인터넷 쇼핑몰 업주는 “백마진은 어느 정도 물량을 가지고 있는 쇼핑몰 모두가 받고 있다. 아무리 백마진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만 안 받을 수 없지 않느냐”며 “택배사가 배송견적서를 낼 때 백마진을 명시하기 때문에 싫다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현재 국내 택배시장은 매년 20% 이상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업체 간 출혈경쟁으로 택배단가가 떨어지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위기상황으로 불릴 만큼 심각하다. 택배사들은 현 상황을 “절박하다”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올해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40%가량 증가한 12조 원대로 추산된다. 그 때문에 택배사들은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에 대한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 실정. 문제는 저가 위주의 비정상적인 거래다. 고객부담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택배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택배사의 대리점과 영업소가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기존 2~3일 정도 걸리던 배송기간이 5~6일로 늦춰지고 있다. 택배사의 대리점이나 영업소의 경영수지가 악화되자 집하와 배송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한 후 받아보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서울 중구 서린동의 윤성희씨(여·28)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택배비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겉으로는 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검은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돼 불쾌하다”고 강조했다.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결국 택배서비스 저하로 낮아지고 있다. 택배사나 쇼핑몰 업체 모두 저단가 영업과 은밀한 거래로 결국 제살깎기 영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고객이 ‘왕’이 아닌 ‘봉’이 되는 현실,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락인〈객원기자〉 press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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