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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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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사건으로 자존심 상한 전·현직 검사들이 쏟아내는 회한과 자기반성

[포커스]“왜 우리가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나”

검찰 수난 시대다. 외국인들도 주목하는 론스타 사건과 관련, 유회원씨를 비롯한 론스타측 인사 세 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신청이 4차례나 기각되면서 세계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쳤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얄미운 존재’로 등장했고, 경찰과 수사권 문제로 대립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같은 검찰 출신으로 검찰에 3번 구속당했다가 3번 풀려난 박주선씨 등으로부터도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란 비난을 받았다. 검찰만 다녀오면 자살을 하는 이가 줄을 이어 가혹한 수사에 대한 의혹을 자아내더니 이젠 대법원장으로부터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란 무시까지 당했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의 외환은행 사건 수뢰 등이 검찰측이 퍼뜨린 것이란 소문도 떠돈다. 언론에서는 연일 ‘추잡한 싸움’ ‘자해성 저질 공방’ 등으로 욕을 먹고 있다. 대중들의 반응도 차갑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검찰이 너무 오만하고 독선적이었다” “같은 비리를 저질러도 경찰, 법관은 구속되지만 검사는 그저 옷만 벗는 것으로 끝나는 등 제식구만 감쌌다” 등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물론 검찰측은 정상명 검찰총장의 ‘함구령’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어떤 비난과 지적도 달게 받아들이며 오로지 엄정수사와 공소장으로만 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감추기는 힘든 것 같다. 법원의 영장 기각 후에 ‘한마디로 코미디’ ‘남 장사하는 데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격한 표현을 쓰기도 했고 거의 ‘사법 쿠데타 수준’이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욕을 하도 먹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검찰. 전현직 검사들로부터 ‘왜 우리가 이렇게 욕을 먹는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그래도 너무 억울하다’는 속마음을 들어봤다.

조관행 판사의 구속이 촉매?

검찰 출신을 비롯한 다른 법조인들은 ‘김홍수 사건에 연루된 조관행 고법 부장판사의 ‘구속’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비롯, 영장기각에 불을 붙인 것으로 판단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최초로 판사가 후배판사에게 재판받는 ‘치욕’을 겪고 가장 청렴하고 권위있는 법원의 도덕성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조 전판사는 진술 도중에 “내가 몸담아온 법원에서 자살을 할까 생각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윤상림으로부터 100만 원을 받은 황모 검사장은 ‘관련 진술이 번복되는 등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해 ‘검찰이 제 식구만 감싼다’는 의혹을 받았다. 법원은 수사 당시 조 전판사의 5년치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자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시점의 2년치로 제한했으나 검찰이 재청구하자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다시 5년치 수색을 허용하는 ‘수모’를 당했다. 경찰이건 판사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수사의 중심’에 있는 검찰이 담당하므로 검찰만 보호받는다는 피해의식도 가질 만하다.

이와 관련,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조관행 전판사를 안 감싼 게 죄냐”며 “조 전판사는 수뢰액수나 브로커 김홍수와의 관계가 판사는 물론 공인으로서 도를 지나쳤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 전 판사가 담배공익소송을 담당한 배금자 변호사로부터 대법원에 징계요구를 받은 바 있음도 전했다. 조 전 판사가 기자들에게 서울대 의대에서 나온, ‘흡연이 폐암과 직접 인과 관계가 없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돌린 것에 항의해 대법원에 징계요구를 했으나 묵살당했으며 고등법원 판사로 승진까지 한 것은 법원이 결코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전직 검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돈보다 명예를 중시한다’ ‘1원이라도 탈세를 했다면 직을 그만두겠다’고 호언한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떻게 5년간 변호사 생활로 60억 원을 벌 수 있었는지, 또 외환은행 소송을 담당하다가 대법원장에 지명되면서 수임료 2억2000만 원 중 1억6500만 원만 돌려줬는데 한 일도 없이 5000만 원을 받은 것은 그야말로 ‘이름값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그가 사고를 당해 그 사건을 맡지 못하게 됐어도 5000만 원을 남기고 돌려주었겠냐고 반문했다. 외환은행 사건을 잘 아는 변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맡겼고 그런 연유로 론스타 관련 인사들의 영장도 계속 기각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검찰측 인사들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증여 사건 항소심 선고가 늦어지는 것도 이 대법원장과 관계 있다고 본다. 이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취임 전 1년 7개월 남짓 에버랜드 사건의 변호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영장기각 파동의 와중에 ‘법·검 4인 회동’으로 구설에 오른 서울중앙지법 이상훈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지난 7월 고법부장판사 시절 에버랜드 사건 공판중에 석명권을 행사한 것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모 검사는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도 영장을 제깍제깍 발부하면서 국익과 관련된 이 사건만 계속 기각하는 것은 인권 보호 차원이 아니라 ‘감정’이 개입된 것”이라면서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고 취임 일성을 발표하고도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세금을 포탈한 기업에는 솜방망이 판결을 내려 국민들로부터도 신뢰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공판중심주의가 해결책일까

수뇌부까지 나서서 정면충돌하자 법조계에서는 ‘영장실질 심사 제도의 보완’과 ‘공판중심주의’가 해결책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법조크로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관행 전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김문석 기자>

법조크로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관행 전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김문석 기자>

1997년부터 시행돼 10년째인 영장실질심사제 및 체포영장제는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심문한 뒤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피의자의 방어권이 강화돼 인권신장에 기여해왔다는 평가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 론스타 경영진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고 검찰은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곧바로 영장을 재청구한 사례는 이 제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나왔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면 억울한 피해자도 줄고 법원과 검찰의 갈등도 해결될까. 전문가들의 시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현직 검사는 “지금도 부분적으로 공판중심주의가 실행되고 있다”고 한다.

장웅성 서경대 법대 교수는 “대법원장의 발언대로라면 수사 절차가 무시되고 아예 처음부터 법정에서 다시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법정에서만 진실을 추구한다고 할 경우 현재의 법원 인원과 조직으로 과연 재판 진행이 가능할지 그 현실성에 의문이 가고 지금까지 수사활동을 재판기능에서 분리해 검사와 그 지휘를 받는 경찰에 맡긴 현행제도의 근간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검찰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한 변호사는 “현재도 검사와 판사의 업무가 너무 많고 절차가 복잡한데 공판중심이 되면 더더욱 격무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또 “검찰의 과거 잘못도 인정하지만 업무특성상 주임검사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장, 부장 심지어 대검까지 중복되어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소신과 결정이 충돌할 때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며 “거기에 승진과 보직, 잦은 인사이동 등 검사의 자부심만으로 버티기엔 요즘 검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버거울 것”이라고 전직 동료들을 대변했다.

하지만 전직 검찰이 더더욱 검찰을 비난하기도 한다. 검찰 중수부로부터 3번이나 구속당했다가 3번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박주선 전의원은 물론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와 관련 불구속기소된 김학재 전 대검차장도 ‘검찰이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김 전 차장은 최후진술서에서 “검찰이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증거 없이 기소를 강행했는데 만약 유죄의 증거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소를 강행했다면 이는 엄청난 인권유린이며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면서 “터무니없는 증거를 만들어 기소를 강행한 검찰의 부도덕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고, 검찰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본질은 밥그릇 싸움

론스타 사건이 해결되면 법원과 검찰의 갈등도 끝날까.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며 앞으로 숱한 갈등이 수시로 드러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미 신성하고 고결한 이미지가 실추당해 자존심을 상한 법원과 권력이 무너지기 시작한 검찰이 주도권을 찾기 위해 다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결국 밥그릇 싸움은 계속 이어지리라는 판단이다.

이미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잃었다는 위기감에, 신비한 베일에 싸여 ‘연말에 국군장병 위문할 때만 뉴스에 나오던’ 대법원장이 뉴스메이커로 등장했고 원만하고 갈등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검찰총장 역시 법원에 대해서만 강경 발언을 계속하는 것 역시 수사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라는 분석이다.

사실 그동안 검찰은 ‘오만과 독선’으로 상징될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고 법원은 ‘성역’으로까지 여겨지며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검찰이나 법원을 떠나도 변호사로 전관예우를 받으며 권력 대신 부를 축적해왔다. 또 어지간한 사건에 연루되어도 살짝 옷을 벗어 변호사로 변신하면 그만이었다.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양 기둥인 법원과 검찰의 싸움은 각자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손해지만 서로 갈등하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박 모씨는 “검사들이 너무 무례해서 자존심도 상하고 억울했지만 정말 잠도 안 자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은 인정한다”며 “권력과 오기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길 바란다”고 했다.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줄기세포 등 과학공부를 하고,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재테크 공부를 시키더니 이젠 법검 싸움으로 ‘공판중심주의’ ‘영장실질 심사’ 등 법 공부도 시켜주는 대한민국. 그래서 국민들만 자꾸 똑똑해지는 것 같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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