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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가 한미연합사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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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이후 미군의 군사활동… 국내 보수·진보 간 분쟁의 씨앗 가능성

바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바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루한 공방은 일단 마무리가 됐다. 한미 양국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확정한 것이다. 10월20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2009년 10월 15일에서 2012년 3월 15일 사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키로 결정했다.

이날 미국은 유사시 전술핵무기뿐 아니라 전략핵무기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확장된 억지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에 핵우산을 확실하게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한국이 충분한 독자적 방위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국이 상당한 전력을 계속 지원할 것임을 확인, 그간 국내 보수 세력이 제기한 우려와 논란을 상당 부분 불식했다.

‘확장된 억지력’이란 표현은 핵우산 제공의 확실한 담보를 요구한 한국측의 기대에는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북한이 전술급 수준의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한다고 해도 미국의 전략핵무기의 보복 공격을 받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어졌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결정으로 향후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기정사실이 됐다. 연합사가 해체된다면 미군의 한반도 군사 활동의 핵심 포스트는 소멸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한반도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금까지 미미한 역할에 머물던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가 일본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미군 군사 작전의 ‘콘트롤 타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동안 계속 한미연합사 해체와는 별도로 유엔사의 지위와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지난 9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벨 사령관은 미8군사령부의 해체 또는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유엔군사령부는 미래 분쟁 시 중요한 역할을 분명히 수행할 것”이라며 “미래 억지력 유지와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신속히 한반도에 전개하고 신속한 승리를 위해 반드시 유엔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웰 벨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오면서 “유엔군사령부를 항구적인 다국적연합군기구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한국전쟁 참전국의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군사안보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대한 보장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유엔사 문제는 작전통제권 문제 못지 않게 보수-진보 세력 간 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보 진영은 미국이 전작권을 환수한 뒤에도 유엔사령부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통제를 지속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넘겨주더라도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닥칠 경우 주한미군은 유엔 깃발을 앞세우고 독자적인 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우려다.

먼 장래의 이야기지만 미국은 한반도 통일 뒤 한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버웰 웰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부의 중요성을 한반도 안보는 물론 동북아 안정과 연관시킨 것은 앞으로 유엔사 강화를 단지 남북충돌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가 개입되는 분쟁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은 이미 지난해부터 주한 유엔군사령부의 기능을 강화해왔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국가들을 상대로 현역 군 장교 등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궁극적인 평화가 달성되지 않는 한 유엔사가 한쪽 당사자인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군 장교들이 미군 유해송환을 논의하기 위해 유엔사 대표와 만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북한군 장교들이 미군 유해송환을 논의하기 위해 유엔사 대표와 만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유엔사는 미군의 고유 영역?

참여정부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상지대 서동만 교수는 “한국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사는 ‘정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이 유엔사 재정비에 나선 것은 앞으로 한국군이 전시작통권을 행사하더라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DJ 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면 전쟁억지가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연합사 해체는 곧바로 유엔사 해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북한이 연합사 해체와 아울러 유엔사의 해체나 개편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전차관은 또한 “만일 유엔사가 해체되면 북방한계선(NLL)의 선포 주체가 소멸되기 때문에 북한군은 이를 구실로 NLL 폐기를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하여 NLL의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시 작통권을 이양한 이후에도 한반도 내에서 단독 군사작전을 벌일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이 심각하게 논의되는 배경에도 유엔사가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KIDA) 남만권 박사는 “한미연합사 해체로 작전계획 5027이 폐기되더라도 나머지 작전계획을 독자적으로 행사해 유사시 한반도에서 단독작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군은 독자적인 ‘작계 5026’과 ‘5031’ 하에서 북한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남박사의 견해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수립한 작전계획 5026과 5030에 따라 일본에 있는 태평양사령부 예하의 7함대와 5공군 전력이 주로 이들 작전계획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미 태평양사령부는 북핵 문제로 북미간 긴장이 고조되던 1993년 북한의 핵 시설을 정밀 공습하는 작계 5026을 만들어 행동에 옮기려다 한국 정부 반대로 중지한 바 있다. 반면 작계 5030은 해·공군력으로 북한을 봉쇄해 고립시킨다는 작전계획이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작전계획과는 별도로 유엔사가 다국적군의 지휘부가 될 것이란 견해도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최근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은 “만약 북한문제와 관련해 한미간 이견이 있게 되면 미국은 한국과는 무관하게 유엔군사령부 아래 편성된 다국적군을 북한에 투입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작전 의도가 한미동맹의 강력한 한미연합사 체제 하에서 자제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각자 별도의 지휘본부가 설치될 경우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임의적 행동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보수 진영의 논리다.

일본 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

국내 진보 진영은 유엔사의 권한은 축소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용대 민노당 정책위의장은 “1978년에 이미 유엔에서 해체 결의안이 채택되었으며, 현재 미군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엔사가 한반도에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엔사에 한국전쟁 참전국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미국의 발상은 강대국의 침략성과 패권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과 임무를 재조정하는 문제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에 대비한 유엔사의 역할은 이미 자명해졌다. 한반도 유사시 ‘증원군을 포함한 군수지원’이 그 역할이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한일 양국의 유엔사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전초기지 내지 보루’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진보진영의 우려는 보수 진영에는 커다란 위안이 되고 있다. 전시 작통권을 한국군이 단독행사하게 되면 미군 증원전력의 한반도 전개가 보장될 수 없으리라는 우려가 불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한 작통권 문제는 유엔사 존폐 문제로 확산돼 또 한번의 ‘국가적 격론’을 불러올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 내정자와 유엔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관은 모자가 세 개다.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유엔군사령관 모자는 거의 쓸 일이 없다. 아직까지 유엔사의 역할이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휴전협장 체결 후 유엔사는 정전협정 준수 및 감독 활동에만 몰두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 작전통제권을 넘겼기 때문에 그 활동은 극히 미미했다. 매일 유엔기를 올리고 내리는 일만 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다.

유엔사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참전 15개국이 모두 병력을 철수했다. 1972년 6월 태국군 1개 중대가 철수하면서 이름만의 사령부로 남아 있다. 현재 영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필리핀, 태국 등이 참모진에 장교를 파견할 뿐, 나머지 국가는 주한대사관 무관이 연락장교로 참여하고 있는 정도다.

정전협정 관련 임무도 크게 축소됐다. 1991년부터 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이 맡았고 2004년 1월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계임무까지 한국군으로 넘어왔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북한은 실체가 없는 유엔사의 해체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유엔군의 모자를 쓰면 유사시 유엔안보리의 추가 결의 없이도 유엔군의 북한 진주가 훨씬 용이해진다. 북한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정자가 취임 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상지대 서동만 교수는 “반 내정자가 유엔사 문제를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 내정자가 유엔사의 해체 내지는 축소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신임 사무총장이 이 문제를 독자적인 안목과 철학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더 힘을 얻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역할을 완전 부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도 배치된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미국의 암묵적 동의와 지지 속에 사무총장에 당선된 그가 미국의 극동 군사정책을 정면으로 치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이 유엔사를 중심으로 구체화될 경우, 결국 유엔사를 대체할 새로운 군사동맹 기구가 탄생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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