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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대책 ‘이종석 소신’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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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론 비등했으나 뒤늦게 대북 포용론으로 선회한 내막

10월 12일 열린 열린우리당 북핵대책특위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왼쪽)이 회의 도중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권호욱 기자>

10월 12일 열린 열린우리당 북핵대책특위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왼쪽)이 회의 도중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평화의 지킴이’가 될 수 있을까.

북한 핵실험은 한국의 안보 패러다임을 바꿀 중대한 안보위협인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핵을 가진 북한과 악수할 나라는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자 규범이 되고 있다. 6·25전쟁 이후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결의안이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북한은 “로마군의 승리는 병참에서 나왔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핵개발선언쭻미사일 발사쭻핵실험쭻추가적인 핵실험 예고까지 위험수위를 단계적으로 올리고 있다. 사실 핵실험 성공은 북한 핵무장의 극적인 ‘마무리’를 뜻한다. 북한은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작 북한 핵문제의 당사국인 미국은 “핵개발 비용이 한국의 경협자금에서 충당되고 있다”고 한국의 외교라인을 압박하고 있다. 거기다 남한의 보수세력도 “지금은 협력이 아니라 제재가 필요할 때”라며 대북포용정책의 전면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런 대내외의 공세를 한 몸으로 버티고 있는 ‘주인공’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북한 핵 실험과 포용정책은 무관하다”면서 “포용정책의 버팀목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은 대북제재 범위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북한의 돌발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 남북대화와 경협이라는 지금까지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북대화·경협 원칙 포기할 수 없다”

이 장관의 이런 논리는 이미 한국 정부의 방침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10월 19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은 금강산관광·개성공단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는 어렵다는 입장을 미국에 설명하는 자리가 됐다. 한국의 대북제재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10월 18일 “국제사회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나라는 자기 문제를 절대로 국제화·다자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유엔 결의안 이행을 거부하는 듯한 인식을 국제사회에 줄 소지까지 있는 아슬아슬한 발언이다.

10월 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청와대 접견실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10월 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청와대 접견실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그러나 북한 핵실험 직후부터 정부의 방침이 일관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0월 9일에는 이종석 장관의 입지는 찾기 어려웠다. 핵실험 당일 발표된 7개항의 정부 성명에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언급은 한 글자도 없다. 북핵실험 이후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강경 움직임에 공조를 맞춰가는 분위기였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기꺼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우리 정부로서는 안보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안보리에서 결의가 채택되면 우리 정부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충분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윤광웅 국방장관도 국회에 출석해 “PSI의 참여 여부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의 결과에 따라 조치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두 강경 일색이고 이 때문에 정부 대응책 마련 과정에서 통일부, 이종석 라인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다.

그러나 사흘 만에 기류는 바뀌었다. PSI 참여 확대를 상정했다가 당정 간 갈등이 불거지자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유지라는 원칙론으로 회귀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화와 제재 병행’이라는 지침이 나왔다. 이 장관의 역할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장관은 “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고 밖으로 나올 나라가 아니다. 대북정책을 보완 수정할 필요가 있지만 원칙과 기조는 유지하겠다”(10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고 말했다. 유엔 조치 동참 필요성도 밝혔으나 제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날까지 외교 당국자들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에 대한 정책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께서 주신 지침이 있으니…”라며 대북 강경대응 입장을 견지했다. 청와대 안보라인까지 “검토가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장관은 PSI에 정식 참여하는 문제에 일관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PSI 정식 참여 문제도 일관되게 반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20일 “추가적인 핵실험은 없다”면서 “유예가 아니라 계획이 없다는 뜻” 이라고 밝혔다. 일단 긴장속에 있던 국제관계는 화해분위기로 바꾸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단 이장관이 바라던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닦친 셈이다.

어떻든 이 장관의 주장 기저에는 북한핵실험의 1차적 책임이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명숙 총리가 10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북한 핵실험 사태의 한 원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통일부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 정부는 지난해 북·미, 북·일 정상화를 포괄적 의제로 다뤘던 지난해 9월 19일 6자회담이 북한핵 해결의 분수령으로 기대했다. 미국이 북한의 위폐 제조를 이유로 대북 금융제재에 들어갔고 북한은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금융제재 해소를 들고 나왔다. 결국 핵과 미사일 협상당사자인 북·미 사이의 적대감은 더 커졌다.

북한 외무성이 이 한국의 제의를 수용했다. 지난 4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회동을 추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불발로 끝났다. 이것이 북한 외무성이나 대남파트인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사실상 무력화된 계기가됐다. 한국은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 중심으로 미국과 ‘공동포괄방안’을 마련하고 미국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재개되기 직전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한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핵과 미사일은 근본적으로 북·미간 사안”이라며 “모든 나라가 미국과 북한이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은 북한과 다자문제라고 얘기해 6자회담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의 대응이 북핵사태를 불렀다는 인식을 깔고 있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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